고조선과 여러 나라 총정리 — 청동기·철기부터 부여·삼한까지

비파형동검과 세형동검, 8조법과 위만조선, 그리고 부여·고구려·옥저·동예·삼한의 제천행사와 풍습. 매 회 2~3문항이 걸린 구간을 '나라마다 표지 낱말 하나'로 갈라 정리했습니다.

한능검에서 이 구간은 매 회 2~3문항입니다. 그런데 배점에 비해 준비가 쉽습니다. 출제 방식이 거의 고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나라 이름은 가려 놓고 풍습 하나를 던진 뒤 "이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 을 묻습니다.

그러니까 부여·고구려·옥저·동예·삼한 다섯 나라의 특징을 줄줄 외울 필요가 없습니다. 나라마다 표지 낱말 하나씩, 다섯 개만 정확히 붙들면 됩니다.

청동기 — 계급이 생긴 순간

청동기의 핵심은 도구가 아니라 사회 변화입니다. 농업 생산력이 늘면서 남는 것이 생기고, 남는 것이 생기니 사유 재산이 생기고, 사유 재산이 생기니 계급이 갈라집니다. 그 꼭대기에 앉은 사람이 군장(족장) 입니다.

계급이 생겼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고인돌입니다. 수십 톤짜리 덮개돌을 옮기려면 수백 명을 동원해야 합니다. 그런 힘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유물 성격
비파형동검 만주~한반도에 분포. 고조선의 세력 범위를 보여주는 지표
미송리식 토기 비파형동검·고인돌과 함께 고조선 범위의 지표
민무늬토기 청동기의 대표 토기. 빗살무늬토기(신석기)와 짝으로 출제
반달 돌칼 곡식 이삭을 자르는 도구. 농경 발달의 증거
거친무늬 거울 군장의 권위를 상징하는 의기(儀器)

농경도 달라집니다. 벼농사가 시작되고, 마을은 방어에 유리한 곳에 자리를 잡습니다. 배산임수 지형에 울타리와 도랑을 두른 취락이 나타나는 것이 이때입니다.

놓치기 쉬운 포인트: 청동기 시대에도 농기구는 여전히 돌입니다. 청동은 귀해서 무기와 제사용 도구에만 썼습니다. "청동 농기구로 밭을 갈았다"는 선지는 언제나 오답입니다.

철기 — 우리 손으로 만들기 시작하다

철기 시대의 표지는 세형동검입니다. 이름은 청동검인데 철기 시대 유물이라 헷갈리기 쉽습니다. 비파형동검이 만주까지 넓게 퍼진 형태라면, 세형동검은 한반도에서 독자적으로 만든 좁고 날렵한 검이라 '한국식 동검'이라고도 합니다.

표지 의미
세형동검 · 잔무늬 거울 한반도 독자 양식
거푸집 국내에서 직접 청동기를 제작했다는 결정적 증거
명도전 · 반량전 · 오수전 중국과 활발히 교역했다는 증거
창원 다호리 이 무렵 한자를 사용했다는 증거
널무덤 · 독무덤 철기 시대의 대표 무덤 양식

철제 농기구가 보급되면서 생산력이 크게 늘고, 철제 무기로 정복 전쟁이 본격화됩니다. 여러 나라가 이 힘을 바탕으로 성장합니다.

고조선 — 단군에서 위만까지

우리 역사 최초의 국가입니다. 시험에서는 단군조선 → 위만조선 → 멸망의 세 토막으로 나옵니다.

단군왕검이라는 이름 자체가 제정일치를 보여줍니다. '단군'은 제사장, '왕검'은 정치적 지배자를 뜻합니다. 건국 이야기는 『삼국유사』(일연)에 실려 전합니다.

사회의 성격은 8조법(범금 8조) 에서 드러납니다. 여덟 조항 중 세 개가 『한서』 지리지에 남아 있습니다.

  •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죽인다 → 생명 존중
  • 남을 다치게 한 자는 곡식으로 갚는다 → 농경 사회, 사유 재산
  • 도둑질한 자는 노비로 삼는다 → 계급 사회, 노비의 존재

기원전 194년, 중국에서 무리를 이끌고 온 위만이 준왕을 몰아내고 왕이 됩니다 (위만조선). 이때부터 철기를 본격 수용하고, 한과 남쪽 진(辰) 사이에서 중계무역으로 이익을 챙깁니다. 이 중계무역이 한과의 충돌을 부릅니다.

한 무제가 침공하고, 우거왕이 1년 넘게 버텼으나 기원전 108년 왕검성이 함락되며 멸망합니다. 한은 그 자리에 군현을 두었습니다.

시험에 나오는 표지: 섭하 살해 사건, 우거왕, 왕검성이 보이면 고조선입니다.

여러 나라 — 표지 낱말 하나씩

여기가 이 구간의 본론입니다. 다섯 나라를 표로 먼저 보시고, 아래에서 표지만 따로 정리하겠습니다.

나라 정치 제천행사 대표 풍습
부여 5부족 연맹, 사출도(마가·우가·저가·구가) 영고(12월) 순장, 형사취수제, 1책 12법
고구려 5부족 연맹, 제가회의 동맹(10월) 서옥제(데릴사위제), 형사취수제
옥저 왕 없음. 읍군·삼로 없음 민며느리제, 가족 공동 무덤
동예 왕 없음. 읍군·삼로 무천(10월) 책화, 족외혼
삼한 제정 분리. 신지·읍차 + 천군 5월·10월 계절제 소도, 벼농사, 변한의 철

표지만 뽑으면

  • 사출도 → 부여. 여러 가(加)가 각각 별도의 행정 구역을 다스렸습니다.
  • 서옥제 → 고구려. 사위가 처가에 지은 집(서옥)에서 살다 돌아가는 혼인 풍습.
  • 민며느리제 → 옥저. 어린 여자아이를 데려와 기른 뒤 며느리로 삼는 풍습.
  • 책화 → 동예. 다른 부족의 경계를 침범하면 노비나 소·말로 배상하게 한 제도.
  • 소도 → 삼한. 천군이 다스리는 신성 구역으로, 죄인이 도망쳐도 잡아가지 못했습니다.

특산물도 함께 나옵니다. 동예의 단궁·과하마·반어피는 거의 매번 등장하는 표지입니다. 변한은 철이 많이 나서 낙랑과 왜에 수출했습니다.

제정 분리가 왜 중요한가: 고조선의 단군왕검은 제사장이자 정치 지배자였습니다 (제정일치). 삼한에 오면 정치는 신지·읍차가, 제사는 천군이 따로 맡습니다. 사회가 그만큼 복잡해졌다는 뜻이고, 시험에서는 "제정이 분리되었다"는 선지로 삼한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틀립니다 — 서로 자리를 바꿔 다는 선지

이 구간의 오답은 다른 나라의 풍습을 가져다 붙이는 방식입니다. 실제 기출에서 반복되는 짝을 모았습니다.

선지 실제 나라
여러 가(加)가 사출도를 주관하였다 부여
제가회의에서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였다 고구려
민며느리제라는 혼인 풍습이 있었다 옥저
책화라 하여 경계 침범을 배상하게 하였다 동예
소도라는 신성 구역이 있었다 삼한
범금 8조로 사회 질서를 유지하였다 고조선
정사암에 모여 재상을 뽑았다 백제
화백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다 신라
욕살·처려근지를 지방관으로 파견하였다 고구려(삼국시대)
진대법으로 빈민을 구제하였다 고구려 고국천왕

마지막 다섯 줄이 특히 함정입니다. 삼국시대 내용이 여러 나라 문항의 오답으로 섞여 들어옵니다. 백제의 정사암, 신라의 화백은 이 구간 문제에서 거의 항상 오답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이렇게 연습하세요

이 구간은 표를 만들어 놓고 가로가 아니라 세로로 읽는 연습이 효과적입니다. "부여는 무엇무엇이다"가 아니라 "제천행사만 다섯 나라를 쭉" 훑는 식입니다. 영고-동맹-무천이 한 줄로 붙으면 헷갈릴 일이 없습니다.

시대 전체를 다시 보려면 시대별 요약 정리를, 앞뒤로 이어 읽으려면 선사시대 정리삼국시대 전성기 정리를 함께 보세요. 실제 출제 형태는 기출 문제풀이에서 2~3번 문항만 모아 보시면 금방 감이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