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대외 항쟁 총정리 — 거란·여진·몽골, 세 번의 전쟁

서희의 외교 담판과 귀주 대첩, 윤관의 별무반과 동북 9성, 그리고 40년 대몽 항쟁과 삼별초까지. 고려가 치른 세 번의 전쟁을 상대별로 끊어 정리했습니다.

고려사에서 한능검이 가장 좋아하는 구간은 대외 항쟁입니다. 그런데 거란·여진·몽골이 차례로 밀려오는 데다 인물과 지명이 비슷하게 생겨서, 서희와 강감찬을 바꿔 쓰거나 윤관의 9성과 강동 6주를 뒤섞는 실수가 자주 나옵니다.

이 글은 상대 → 침입 차수 → 누가 무엇으로 막았나 → 무엇이 남았나 순서로 끊어 정리합니다. 고려 전체 흐름은 고려시대 총정리에, 무신정권 내부 사정은 무신정변 글에 있습니다.

거란(요) — 세 번 오고, 세 번 다르게 막았다

거란은 926년 발해를 멸망시킨 뒤 고려와 국경을 맞댑니다. 고려는 태조 때부터 거란을 적대해(만부교 사건) 송과 손을 잡았고, 거란은 송을 치기 전에 배후의 고려를 먼저 정리하려 했습니다. 세 번의 침입은 명분도 결과도 전부 다릅니다.

차수 시기 침입 명분 고려의 대응 결과
1차 993, 성종 고려가 송과 친하다 서희가 소손녕과 외교 담판 강동 6주 획득(압록강까지 진출)
2차 1010, 현종 강조의 정변을 문제 삼음 양규의 흥화진 항전, 현종 나주 피난 개경 함락, 현종 친조 약속으로 철수
3차 1018~1019, 현종 강동 6주 반환 거부 강감찬귀주 대첩(1019) 거란군 궤멸, 이후 100년 평화

가장 자주 나오는 함정이 서희 ↔ 강감찬입니다. "외교 담판·강동 6주"면 서희, "귀주에서 크게 이겼다"면 강감찬으로 곧장 갈라야 합니다. 둘은 26년 차이나는 다른 전쟁입니다.

전쟁이 끝난 뒤 고려가 한 일도 시험에 나옵니다.

  • 개경 나성 축조 — 강감찬의 건의로 도성 외곽을 둘렀습니다(1029).
  • 천리장성 축조 — 압록강 어귀에서 동해안 도련포까지(1033~1044). 거란과 여진을 함께 막는 방어선입니다.
  • 초조대장경 조판 — 부처의 힘으로 거란을 물리치겠다는 뜻으로 현종 때 시작. 뒷날 몽골 침입 때 대구 부인사에서 불타 없어집니다.

여진 — 별무반과 동북 9성

여진은 원래 고려에 말과 모피를 바치던 세력이었습니다. 12세기 들어 완옌부가 통합에 나서면서 국경이 시끄러워졌고, 기병 중심의 여진에게 고려의 보병은 번번이 밀렸습니다.

  • 별무반 편성(1104, 숙종) — 윤관의 건의. 신기군(기병) · 신보군(보병) · 항마군(승병) 세 부대로, 기병에 맞설 군대를 따로 만든 것이 핵심입니다.
  • 동북 9성 축조(1107, 예종) — 윤관이 여진을 몰아내고 함흥평야 일대에 9성을 쌓았습니다.
  • 9성 반환(1109) — 방어 부담이 크고 여진이 조공을 약속하면서 1년 남짓 만에 돌려줍니다.
  • 그 뒤 여진은 을 세우고(1115) 거란을 멸망시킨 뒤 고려에 군신 관계를 요구합니다. 이자겸이 정권 유지를 위해 이를 수용(1126)하면서 북진 정책은 사실상 끝납니다.

"별무반 = 숙종 때 편성, 동북 9성 = 예종 때 축조"로 왕이 다르다는 점까지 눌러 두세요. 선지에서 왕만 바꿔 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몽골 — 40년 항쟁과 강화 천도

몽골은 1231년부터 30년 가까이 여섯 차례 넘게 침입합니다. 이 시기 고려의 정권은 최씨 무신정권이었고, 정권의 선택백성의 항전이 어긋난 것이 이 전쟁의 성격입니다.

시기 사건 기억할 이름
1231 1차 침입 귀주성 박서의 항전
1232 강화 천도(최우) · 2차 침입 처인성에서 김윤후가 적장 살리타 사살
1235~ 3차 침입 황룡사 9층 목탑 소실, 초조대장경 소실
1236~1251 팔만대장경(재조대장경) 조판
1253 5차 침입 김윤후충주성 방어(노비 문서를 불태워 사기를 올림)
1259 강화 성립 최씨 정권 붕괴(1258) 후 태자 입조
1270 개경 환도 삼별초가 반발해 봉기

삼별초 항쟁(1270~1273) 은 따로 묶어 외우는 편이 낫습니다.

  1. 강화도 — 배중손이 승화후 온을 왕으로 추대하고 개경 정부에 맞섭니다.
  2. 진도 용장성 — 남해안 해상권을 장악하고 일본에 국서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3. 제주 항파두리 — 김통정이 이끌었고, 1273년 여·몽 연합군에게 진압됩니다.

전쟁이 남긴 것 — 원 간섭기의 시작

강화 이후 고려는 나라를 유지했지만, 영토와 제도는 깊이 잠식됩니다.

  • 쌍성총관부(1258, 화주) · 동녕부(1270, 서경) · 탐라총관부(1273, 제주) 설치
  • 일본 원정에 동원되며 정동행성 설치(1280), 이후 내정 간섭 기구로 남음
  • 관제 격하(2성 6부 → 첨의부·4사), 왕실 호칭 격하(조·종 → 충○왕)
  • 응방을 통한 매 징발, 결혼도감을 통한 공녀 징발
  • 변발·호복 등 몽골풍 유행, 반대로 몽골에는 고려양

이 잠식을 되돌리려 한 왕이 공민왕입니다. 1356년 유인우를 보내 쌍성총관부를 공격해 철령 이북을 되찾고,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하며 기철 등 친원 세력을 숙청합니다. 이 대목은 고려시대 총정리의 원 간섭기 부분과 이어서 보면 좋습니다.

시험에는 이렇게 나온다

  • "(가) 인물의 활동으로 옳은 것" — 소손녕과의 담판이 보이면 서희, 귀주가 보이면 강감찬, 별무반이 보이면 윤관, 처인성·충주성이 보이면 김윤후입니다.
  • "(가) 시기에 있었던 사실" — 강화 천도(1232)와 개경 환도(1270) 사이인지가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팔만대장경 조판은 이 사이에 들어갑니다.
  • 순서 배열 — 서희 담판(993) → 귀주 대첩(1019) → 천리장성(1044) → 별무반(1104) → 동북 9성(1107) → 강화 천도(1232) → 개경 환도(1270) → 쌍성총관부 수복(1356). 이 여덟 개만 순서대로 외워도 배열 문제는 거의 정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