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는 한능검에서 매 회 8~10문항이 나옵니다. 그중 절반 가까이가 같은 형태입니다. "밑줄 그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 — 즉 1910년대인지 1920년대인지 1930년대 이후인지를 가르는 문제입니다.
이 시기 구분만 정확하면 문항의 상당수가 정리됩니다. 독립운동 단체는 워낙 양이 많아 별도의 글에 정리해 두었고, 이 글은 통치 방식과 수탈 정책에 집중합니다.
세 시기, 세 낱말
1910년대 무단통치 → 1920년대 문화통치 → 1930년대 이후 민족말살통치
각 시기의 경계에는 사건이 하나씩 있습니다.
- 1919년 3·1운동 →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 민족말살통치로
1910년대 — 무단통치
이름 그대로 힘으로 누른 시기입니다. 표지 낱말은 헌병경찰입니다.
- 헌병경찰제 — 군인인 헌병이 일반 경찰 업무까지 맡습니다. 재판 없이 처벌하는 즉결처분권을 가졌습니다.
- 조선태형령 — 한국인에게만 태형을 적용했습니다.
- 교원도 제복을 입고 칼을 찼습니다.
- 언론·집회·결사의 자유 박탈, 안악사건·105인 사건으로 민족운동 탄압
- 제1차 조선교육령 — 보통학교 수업 연한 4년, 실업 교육 중심
경제 수탈의 핵심은 토지조사사업(1910~1918)입니다.
명분은 근대적 토지 소유권 확립이었지만, 실제로는 기한부 신고제였습니다. 정해진 기간에 복잡한 서류를 갖춰 직접 신고해야 소유권을 인정받았습니다. 신고하지 못한 토지, 문중·마을 공동 소유지, 궁방전·역둔토는 총독부가 차지했고, 이는 동양척식주식회사를 통해 일본인에게 넘어갔습니다. 농민은 관습적으로 인정받던 경작권을 잃고 기한부 소작농으로 전락합니다.
회사령(1910)도 이 시기입니다. 회사를 세우려면 총독의 허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한국인의 기업 활동을 억누르려는 조치입니다.
1920년대 — 문화통치
3·1운동으로 무단통치가 한계에 부딪히자 일제는 방식을 바꿉니다. 그러나 본질은 같고 방법만 교묘해진 것입니다. 시험은 이 '기만성'을 묻습니다.
| 표방한 것 | 실제 |
|---|---|
| 문관도 총독이 될 수 있다 | 광복까지 단 한 명도 임명되지 않음 |
| 헌병경찰 → 보통경찰 | 경찰서·경찰 수와 예산이 오히려 증가 |
| 조선일보·동아일보 발행 허용 | 검열·삭제·정간·폐간 상시 시행 |
| 조선인 참정권(도평의회·부면협의회) | 자문 기구에 불과, 친일 인사 중심 |
| 제2차 조선교육령(수업 연한 6년) | 한국인 취학률은 여전히 낮음 |
여기에 치안유지법(1925)이 만들어집니다. 사회주의와 독립운동을 탄압하는 근거가 됐습니다.
경제 수탈은 산미증식계획(1920~1934)입니다. 일본 본토의 쌀 부족을 메우려고 조선에서 쌀 생산을 늘리는 계획이었습니다. 문제는 증산량보다 반출량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조선인 1인당 쌀 소비는 오히려 줄었고, 부족분은 만주에서 들여온 잡곡으로 메웠습니다. 수리조합비·비료대 부담까지 농민에게 전가되어 몰락하는 농가가 늘었습니다.
회사령이 신고제로 바뀐 것(1920)도 이 시기입니다. 일본 자본의 조선 진출을 쉽게 하려는 조치였습니다. 이에 맞서 물산장려운동(조만식, 평양, "내 살림 내 것으로")이 일어납니다.
1930년대 이후 — 민족말살통치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으로 일제가 전시 체제로 들어가면서, 조선을 전쟁 동원 기지로 삼습니다. 표지 낱말은 황국신민화입니다.
- 황국신민서사 암송, 궁성요배, 신사참배 강요
- 창씨개명, 조선어·조선사 교육 금지(제3·4차 조선교육령)
- 조선일보·동아일보 폐간(1940)
- 국가총동원법(1938) — 인력과 물자를 법으로 동원
동원의 실제는 이렇습니다.
| 구분 | 내용 |
|---|---|
| 인력 | 지원병제(1938) → 학도지원병(1943) → 징병제(1944) |
| 노동력 | 국민징용령(1939), 여자정신근로령(1944) |
| 물자 | 공출(쌀·놋그릇·숟가락까지), 배급제 |
| 농촌 | 농촌진흥운동(1932) — 소작쟁의 무마용 |
경제 정책으로는 남면북양(남부에 면화, 북부에 양)과 병참기지화가 있습니다. 남면북양은 일본 방직 자본의 원료를 조선에서 확보하려는 정책으로, 1930년대를 가리키는 표지로 자주 출제됩니다.
시기 판별 표 — 이것만 보면 됩니다
| 표지 낱말 | 시기 |
|---|---|
| 헌병경찰, 조선태형령, 즉결처분 | 1910년대 |
| 토지조사사업, 회사령(허가제) | 1910년대 |
| 보통경찰, 치안유지법 | 1920년대 |
| 산미증식계획, 회사령 폐지(신고제) | 1920년대 |
| 물산장려운동, 민립대학설립운동 | 1920년대 |
| 황국신민서사, 창씨개명, 신사참배 | 1930년대 이후 |
| 국가총동원법, 공출, 징병제, 정신대 | 1930년대 이후 |
| 남면북양, 병참기지화 | 1930년대 |
3·1운동과 그 이후
3·1운동(1919)은 이 시대의 분수령입니다.
- 배경 —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2·8 독립선언(도쿄 유학생), 고종의 승하
- 전개 —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 → 학생·시민 → 전국·농촌으로 확산
- 탄압 — 화성 제암리 학살
- 결과 —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상하이), 통치 방식 전환, 중국 5·4운동 등 해외에 영향
임시정부는 삼권분립에 기초한 최초의 민주 공화제 정부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연통제·교통국이라는 비밀 행정·통신망을 두었고, 독립공채를 발행했으며, 파리강화회의에 김규식을 파견했습니다. 1923년 국민대표회의에서 창조파와 개조파가 대립하며 침체에 빠졌다가, 1940년 충칭에서 한국광복군을 창설합니다.
1920년대 국내 운동
- 6·10 만세운동(1926) — 순종 인산일. 준비 과정에서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세력이 협력한 경험이 됩니다.
- 신간회(1927) — 비타협적 민족주의 + 사회주의의 민족유일당.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진상조사단을 파견했습니다.
- 광주학생항일운동(1929) — 3·1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학생 운동.
- 형평운동(1923, 진주) — 백정에 대한 차별 철폐 운동.
- 암태도 소작쟁의(1923), 원산 노동자 총파업(1929)
여기서 틀립니다
| 선지 | 실제 시기 |
|---|---|
|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하였다 | 1910년대 |
| 산미증식계획을 실시하였다 | 1920년대 |
|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하였다 | 1938 (1930년대) |
| 치안유지법을 공포하였다 | 1925 (1920년대) |
| 조선태형령을 시행하였다 | 1910년대 |
| 신간회가 창립되었다 | 1927 |
| 국채보상운동이 전개되었다 | 1907, 개항기 |
| 헌의 6조를 채택하였다 | 1898, 독립협회 |
| 회사령을 공포하였다 | 1910 |
국채보상운동(1907) 과 물산장려운동(1920년대) 은 성격이 비슷해 서로의 오답으로 자주 붙습니다. 국채보상은 개항기, 물산장려는 일제강점기입니다.
이렇게 연습하세요
이 구간은 표 하나를 통째로 외우는 것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위의 '시기 판별 표'를 종이에 옮겨 적고, 기출 문항의 선지를 하나씩 그 표에 대입해 보세요. 세 칸 중 어디에 들어가는지만 맞히면 정답이 나옵니다.
단체·인물·전투는 독립운동 단체 총정리에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이어지는 시대는 현대사 정리에서 다룹니다. 전체 흐름은 시대별 요약 정리, 실전은 기출 문제풀이에서 확인하세요.
📖 이 글의 시대 흐름을 한눈에 보려면 요약 정리 · 일제강점기 (1910 ~ 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