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는 한능검에서 매 회 8~10문항이 걸린 최대 구간입니다. 500년이라 사건도 많고, 거란·여진·몽골·홍건적·왜구까지 외침도 끊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려사를 관통하는 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누가 권력을 쥐고 있었는가, 지배 세력의 교체 순서입니다.
호족 → 문벌 귀족 → 무신 → 권문세족 → 신진사대부
사건이 나오면 먼저 이 다섯 칸 중 어디인지 확인하세요. 그러면 앞뒤 맥락이 저절로 붙습니다.
초기 — 호족을 다루는 법
태조 왕건의 과제는 하나였습니다. 자기를 왕으로 만들어 준 호족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그는 양손을 다 썼습니다.
- 회유 — 혼인 정책(29명의 부인), 왕씨 성 하사, 역분전 지급
- 견제 — 사심관 제도(중앙 관리에게 출신 지방을 책임지게 함), 기인 제도(호족 자제를 수도에 볼모로 둠)
여기에 민생 안정을 위해 세율을 1/10로 낮추고 흑창을 두어 빈민을 구제했습니다. 북진 정책으로 서경(평양)을 중시했고, 후대 왕을 위해 훈요 10조를 남겼습니다.
광종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갑니다. 호족을 아예 무너뜨립니다.
- 노비안검법 — 호족이 불법으로 차지한 노비를 양인으로 되돌립니다. 호족의 경제·군사 기반을 직접 깎는 조치입니다.
- 과거제 도입(쌍기의 건의) — 능력으로 뽑은 관리를 왕의 사람으로 삼습니다.
- 공복 제정, 칭제건원(광덕·준풍 연호)
성종은 체제를 완성합니다.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받아들여 유교 정치를 표방하고, 2성 6부를 정비하고, 12목에 지방관을 파견했습니다.
세 왕을 한 줄로: 태조는 달래고, 광종은 꺾고, 성종은 제도로 굳혔다.
문벌 귀족의 시대와 균열
과거와 음서로 대를 이어 관직에 오른 가문이 문벌 귀족이 됩니다. 이들이 쌓은 모순이 12세기에 두 번 터집니다.
- 이자겸의 난(1126) — 최고 문벌 경원 이씨가 왕권까지 넘봅니다.
-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1135) — 서경 세력이 칭제건원과 금국 정벌을 내세웠으나 김부식의 관군에게 진압됩니다.
그리고 1170년, 무신정변이 일어납니다. 무신정권 100년의 전개는 인물 순서가 복잡해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고려 무신정변 — 배경부터 몰락까지에서 이어 보세요.
외침 — 거란·여진·몽골
고려사 문항의 큰 덩어리입니다. 침입한 나라별로 묶어야 헷갈리지 않습니다.
거란 (10~11세기)
| 침입 | 대응 |
|---|---|
| 1차(993) | 서희의 외교 담판 → 강동 6주 획득 |
| 2차(1010) | 개경 함락, 양규의 분전 |
| 3차(1018) | 강감찬의 귀주대첩(1019) |
이후 개경에 나성을 쌓고, 국경에 천리장성(압록강~도련포)을 쌓았습니다.
여진 (12세기)
윤관이 별무반(신기군·신보군·항마군)을 편성해 여진을 몰아내고 동북 9성을 쌓았습니다. 다만 관리가 어려워 곧 돌려주었습니다. 이후 여진은 금을 세우고 오히려 고려에 사대를 요구합니다.
몽골 (13세기)
- 1231년 1차 침입 → 최씨 정권이 강화도로 천도(1232)
- 처인성 전투 — 김윤후가 적장 살리타를 사살
- 충주성 전투 — 김윤후가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항전
- 문화재 피해 — 황룡사 9층 목탑, 초조대장경 소실
- 팔만대장경 조판(강화도, 현재 합천 해인사 보관)
- 삼별초 항쟁 — 강화도 → 진도(배중손) → 제주도(김통정)
원 간섭기 — 무엇이 바뀌었나
몽골과 강화한 뒤 고려는 약 80년간 원의 간섭을 받습니다. 시험은 무엇이 격하되었는지를 묻습니다.
| 이전 | 원 간섭기 |
|---|---|
| 폐하 · 태자 | 전하 · 세자 |
| 조 · 종 (묘호) | 충○왕 (충렬왕·충선왕…) |
| 2성 6부 | 첨의부 · 4사 |
| 중추원 | 밀직사 |
여기에 정동행성(내정 간섭 기구), 쌍성총관부·동녕부·탐라총관부(영토 직할), 다루가치(감찰관), 공녀·응방 같은 수탈이 더해집니다.
이 시기에 권력을 잡은 세력이 권문세족입니다. 원과의 관계를 배경으로 대농장을 소유하고 음서로 관직을 세습했습니다.
공민왕이 여기에 정면으로 맞섭니다.
- 반원 자주 — 기철 등 친원 세력 숙청, 정동행성 이문소 폐지, 쌍성총관부 수복(철령 이북 회복), 몽골식 풍습 금지
- 왕권 강화 — 정방 폐지, 전민변정도감 설치(신돈 등용)
신진사대부와 고려의 끝
공민왕의 개혁 과정에서 성장한 세력이 신진사대부입니다. 성리학을 공부하고 과거로 진출한 이들입니다. 여기에 홍건적·왜구를 막아 이름을 얻은 신흥 무인 세력(최영·이성계)이 결합합니다.
1388년 위화도 회군으로 이성계가 실권을 잡고, 1391년 과전법으로 경제 기반을 바꾼 뒤, 1392년 조선이 세워집니다.
제도 — 표로 눌러두기
| 구분 | 내용 |
|---|---|
| 중앙 | 2성(중서문하성·상서성) 6부, 중추원, 어사대, 삼사(회계) |
| 회의 기구 | 도병마사(국방) · 식목도감(법제) — 고려의 독자 기구 |
| 대간 | 어사대 + 중서문하성 낭사 → 서경·간쟁·봉박 |
| 토지 | 역분전 → 전시과(경종 시정 → 목종 개정 → 문종 경정) → 과전법 |
| 교육 | 국자감, 최충의 9재 학당(사학 12도) |
| 사회 제도 | 의창, 상평창, 동·서 대비원, 혜민국, 구제도감 |
전시과는 시정 · 개정 · 경정 세 단계의 차이가 자주 출제됩니다. 시정은 인품과 관품을 함께, 개정은 관직만, 경정은 현직 관리에게만 지급합니다.
여기서 틀립니다
| 선지 | 실제 주인공 |
|---|---|
| 노비안검법을 실시하였다 | 광종 |
| 시무 28조를 받아들여 12목에 지방관을 파견하였다 | 성종 |
| 별무반을 편성하였다 | 윤관(숙종) |
| 강동 6주를 확보하였다 | 서희(성종) |
|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였다 | 공민왕(신돈) |
| 쌍성총관부를 수복하였다 | 공민왕 |
| 삼별초를 이끌고 진도에서 항전하였다 | 배중손 |
| 국호를 남부여로 고쳤다 | 백제 성왕 |
| 경국대전을 완성하였다 | 조선 성종 |
마지막 두 줄처럼 다른 시대 왕의 업적이 오답으로 섞여 들어오는 것이 이 구간의 전형적인 함정입니다. 특히 고려 성종과 조선 성종은 이름이 같아 매번 서로의 오답 자리에 앉습니다.
이렇게 연습하세요
고려는 사건이 많아 연표 암기로 접근하면 지칩니다. 대신 외침은 나라별로, 제도는 표로, 왕은 개혁 방향으로 세 덩어리를 나눠 보세요.
무신정권은 별도의 글에서 더 자세히 다뤘고, 불교와 승려는 빈출 승려 총정리, 청자와 문화재는 빈출 유물 총정리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전체 흐름은 시대별 요약 정리에서, 실전은 기출 문제풀이에서 이어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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