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초 100년은 왕이 셋만 중요합니다. 태조 왕건이 나라를 세우고, 광종이 호족을 눌렀고, 성종이 통치 제도를 완성했습니다. 문제는 그 앞에 궁예와 견훤이 있고, 세 왕이 각각 다른 제도를 여러 개씩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이 글은 후삼국의 성립 → 통일 과정 → 태조·광종·성종의 제도 순서로 갑니다. 이후 거란·여진·몽골과의 전쟁은 고려 대외 항쟁 총정리로 이어집니다.
신라 하대와 후삼국의 성립
9세기 신라는 진골 귀족의 왕위 다툼(김헌창의 난, 장보고의 청해진), 지방 통제력 상실, 조세 독촉에 대한 농민 봉기(원종·애노의 난, 889)로 무너져 갑니다. 그 빈자리를 호족과 6두품, 선종과 풍수지리설이 채웁니다.
| 나라 | 건국 | 세운 사람 | 특징 |
|---|---|---|---|
| 후백제 | 900, 완산주(전주) | 견훤 — 신라 서남해 방수군 출신 | 중국과 외교, 신라에 적대적(경애왕 살해) |
| 후고구려 | 901, 송악 | 궁예 — 신라 왕족 출신 승려 | 국호·도읍을 계속 바꿈 |
궁예는 904년 국호를 마진, 연호를 무태로 고치고 광평성 등 관제를 정비합니다. 905년 철원 천도, 911년 국호를 태봉으로 다시 바꿉니다. 그러나 미륵 신앙을 앞세운 전제 정치와 관심법으로 신하와 호족의 지지를 잃고 918년 축출됩니다.
"광평성을 두었다", "철원으로 도읍을 옮겼다"는 궁예, "완산주에 도읍했다", "후당·오월에 사신을 보냈다"는 견훤입니다. 두 사람은 선지에서 자리를 바꿔 다는 대표적인 짝입니다.
통일 과정 — 진 곳, 이긴 곳, 항복받은 곳
918년 왕건이 고려를 세우고(도읍 철원 → 919년 송악으로 옮김) 통일까지 18년이 걸립니다. 전투는 세 개만 기억하면 됩니다.
| 연도 | 사건 | 결과 |
|---|---|---|
| 927 | 공산 전투 | 후백제 승리. 신숭겸 · 김락 전사 |
| 930 | 고창 전투(안동) | 고려 승리. 경상도 호족이 왕건에게 기움 |
| 935 | 신라 경순왕 항복 | 김부를 경주의 사심관으로 삼음 |
| 936 | 일리천 전투 | 후백제 신검군 격파 → 후삼국 통일 |
후백제는 밖이 아니라 안에서 무너졌습니다. 견훤이 넷째 아들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장남 신검이 아버지를 금산사에 가두었고, 탈출한 견훤이 왕건에게 투항하면서 승부가 갈립니다.
태조 왕건 — 호족을 다루는 세 가지 방법
통일했다고 왕권이 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고려는 호족 연합 정권으로 출발했고, 태조의 정책은 전부 "호족을 어떻게 끌어안고 동시에 묶어 둘 것인가" 입니다.
- 포섭 — 혼인 정책(왕비 29명), 왕씨 성 하사, 역분전 지급.
- 견제 — 사심관 제도(중앙 관리에게 출신 지역을 관리하게 함), 기인 제도(호족의 자제를 개경에 머물게 함).
- 민생 — 취민유도(세율을 1/10로), 흑창 설치(빈민 구제).
- 북진 — 서경(평양)을 중시하고 거란을 배척(만부교 사건).
- 훈요 10조 · 정계 · 계백료서 — 후대 왕과 관리에게 남긴 지침.
태조 사후 왕규의 난 등 혼란이 이어지고, 정종은 거란에 대비해 광군을 조직합니다(947).
광종 — 호족을 눌러 왕권을 세우다
광종의 정책은 하나로 꿰입니다. 호족의 힘을 빼고 왕에게 붙은 관료를 만든다.
| 연도 | 정책 | 노린 것 |
|---|---|---|
| 956 | 노비안검법 | 호족이 불법으로 차지한 노비를 양인으로 → 호족의 경제·군사 기반 약화, 국가의 세원 확대 |
| 958 | 과거제(쌍기의 건의) | 시험으로 뽑은 신진 인사로 호족 출신 공신 대체 |
| 960 | 백관의 공복 제정 | 관료의 서열을 왕 아래로 시각화 |
| — | 칭제건원(광덕 · 준풍) | 황제국 체제를 표방 |
| — | 주현공부법, 제위보 | 재정 확보와 빈민 구제 |
경종 때는 인품과 관품을 함께 따진 시정 전시과(976)가 마련됩니다.
성종 — 유교로 통치 제도를 짜다
성종은 최승로의 시무 28조(982)를 받아들여 불교 행사를 줄이고 유교 정치 이념을 세웁니다.
- 12목 설치와 지방관 파견(983) — 처음으로 중앙이 지방을 직접 관리.
- 2성 6부 중앙 관제 정비, 중추원·삼사 설치.
- 국자감 설치(992), 지방에 향교, 유학 진흥.
- 의창 · 상평창 설치 — 구휼과 물가 조절.
- 건원중보 주조(996) — 우리나라 최초의 금속 화폐.
이후 현종 때 지방 제도가 5도 양계로 정비되고, 숙종 때 주전도감에서 해동통보 · 은병(활구) 이 발행되는 흐름은 고려시대 총정리에서 이어 보세요.
시험에는 이렇게 나온다
- 인물 매칭 — 광평성·철원=궁예, 완산주=견훤, 사심관·기인·훈요 10조=태조, 노비안검법·쌍기=광종, 시무 28조·12목=성종.
- 순서 배열 — 후백제 건국(900) → 후고구려 건국(901) → 고려 건국(918) → 공산(927) → 고창(930) → 신라 항복(935) → 후삼국 통일(936) → 노비안검법(956) → 과거제(958) → 12목(983).
- "(가) 왕의 정책" — 광종과 성종의 정책은 서로 바꿔 놓기 딱 좋습니다. "노비를 조사해 양인으로 삼았다"면 광종, "12목에 지방관을 파견했다"면 성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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