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총정리 — 두 번의 전쟁, 무엇이 달랐나

옥포에서 노량까지 이순신의 해전, 3대 대첩과 의병, 광해군의 중립외교, 그리고 남한산성과 삼전도. 조선을 갈라놓은 두 전쟁을 연표와 표로 정리했습니다.

조선 전기와 후기를 가르는 기준은 양 난, 곧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입니다. 조선 전기 총정리가 사화에서 끝나고 조선 후기 총정리가 대동법에서 시작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 사이 45년이 이 글의 범위입니다.

두 전쟁은 성격이 정반대입니다. 임진왜란은 7년을 끌며 전국이 싸운 전쟁이고, 병자호란은 두 달 만에 끝난 항복입니다. 그래서 시험에서 묻는 것도 다릅니다. 임진왜란은 "전투와 인물", 병자호란은 "주장과 결과"를 묻습니다.

임진왜란 — 7년 연표

시기 사건
1592.4 부산진(정발) · 동래성(송상현) 함락 → 신립탄금대 패배 → 선조 의주 파천, 명에 원병 요청
1592.5~ 이순신 옥포 해전(첫 승리) · 사천(거북선 첫 사용) · 한산도 대첩(학익진)
1592.10 진주 대첩김시민
1593.1 조·명 연합군 평양성 탈환
1593.2 행주 대첩권율
1593 훈련도감 설치, 휴전 회담 시작
1597 회담 결렬, 정유재란 — 칠천량에서 원균 패배
1597.9 명량 대첩 — 13척으로 왜 수군 격파
1598.11 노량 해전 — 이순신 전사, 전쟁 종결

바다 — 이순신의 해전

  • 옥포(1592.5) — 임진왜란 최초의 승리.
  • 사천(1592.5) — 거북선을 처음 실전에 투입.
  • 한산도 대첩(1592.7) — 학익진으로 대승. 남해의 제해권을 확보해 일본군의 서해 북상 보급로를 끊은 것이 진짜 의미입니다.
  • 명량(1597.9) — 울돌목의 좁은 물길에서 13척으로 대승.
  • 노량(1598.11) — 철수하는 일본군을 추격하다 전사.

해전은 "옥포=첫 승, 사천=거북선, 한산도=학익진, 명량=13척, 노량=전사"처럼 한 낱말씩 붙여 두면 선지에서 바로 갈립니다. 『난중일기』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입니다 → 유네스코 유산 총정리

육지 — 3대 대첩과 의병

3대 대첩은 한산도(이순신) · 진주(김시민) · 행주(권율) 입니다. 진주와 행주는 모두 육지의 성을 지킨 싸움이라는 점에서 짝으로 묶입니다.

의병은 지역과 이름을 함께 외웁니다.

  • 곽재우 — 의령. 붉은 옷을 입어 홍의장군.
  • 조헌 · 영규 — 금산에서 700 의병과 함께 전사.
  • 고경명 — 담양에서 봉기, 금산에서 전사.
  • 정문부 — 함경도 북관대첩(북관대첩비).
  • 휴정(서산대사) · 유정(사명대사) — 승병. 승려 정리는 빈출 승려 총정리에 있습니다.

전쟁이 바꾼 것

  • 군사훈련도감 설치(포수·사수·살수의 삼수병, 직업 군인). 지방군은 속오군 체제로 재편(양반부터 노비까지 편성).
  • 재정·신분 — 인구와 경작지 급감, 공명첩 발급으로 신분제가 흔들립니다.
  • 문화재 피해 — 경복궁·불국사 소실, 실록을 보관하던 사고가 전주 사고만 남음.
  • 동아시아 — 일본은 에도 막부 성립, 명은 쇠퇴하고 여진(후금) 이 성장합니다.
  • 국교 재개기유약조(1609)로 일본과 국교를 다시 열고 초량 왜관을 통해 교역, 통신사를 파견합니다.

광해군 — 두 전쟁 사이의 15년

  • 중립 외교 — 명이 후금 정벌을 위해 원병을 요구하자 강홍립을 보내되 상황을 보아 대응하게 합니다(사르후 전투, 1619).
  • 전후 복구 — 양전과 호적 정리, 대동법을 경기도에 처음 시행(1608), 『동의보감』 편찬(허준), 5대 사고 재정비.
  • 폐모살제와 인조반정(1623) — 서인이 "명에 대한 의리를 저버렸다"는 명분까지 더해 광해군을 몰아냅니다. 이 반정이 두 번째 전쟁의 씨앗이 됩니다.

병자호란 — 두 달 만의 항복

시기 사건
1627 정묘호란 — 후금 침입. 정봉수(용골산성) · 이립의 항전, 형제 관계 화약
1636 후금이 국호를 으로 바꾸고 군신 관계 요구 → 조정이 주화 ↔ 척화로 갈림
1636.12 병자호란 —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해 45일 항전
1637.1 삼전도에서 항복(삼전도의 굴욕) → 소현세자 · 봉림대군 인질

주화와 척화의 대립은 인물까지 함께 묻습니다.

입장 대표 인물 논리
주화론 최명길 나라를 보존한 뒤에 뒷일을 도모하자
척화론 김상헌, 삼학사(홍익한·윤집·오달제) 오랑캐에게 무릎 꿇을 수 없다

전쟁이 끝난 뒤 봉림대군이 효종으로 즉위해 북벌을 추진합니다. 송시열 · 이완을 등용하고 어영청을 강화했지만 실행되지는 못했고, 도리어 청의 요청으로 나선 정벌(1654 · 1658)에 조총 부대를 보냅니다. 18세기에는 청의 문물을 배우자는 북학론이 나오는데, 이 전환은 조선 후기 총정리에서 이어집니다.

시험에는 이렇게 나온다

  • "밑줄 그은 전쟁 중에 있었던 사실" — 훈련도감·공명첩·의병은 임진왜란, 남한산성·삼전도·삼학사는 병자호란입니다.
  • 순서 배열 — 탄금대(1592.4) → 한산도(1592.7) → 진주(1592.10) → 행주(1593.2) → 명량(1597.9) → 노량(1598.11) → 정묘호란(1627) → 병자호란(1636).
  • 인물 매칭 — 김시민=진주, 권율=행주, 곽재우=의령, 정발=부산진, 송상현=동래성, 최명길=주화, 김상헌=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