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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전곡리에서 출토된 주먹도끼와 찍개·찌르개는 구석기 시대의 대표 유물입니다. 구석기인은 사냥과 채집을 하며 이동 생활을 했기 때문에 동굴이나 강가의 막집에 머물렀습니다.
- ①민무늬 토기에 식량을 저장한 것은 청동기 시대입니다.
- ②가락바퀴로 실을 만든 것은 신석기 시대입니다.
- ③명도전·반량전 사용은 철기 시대의 모습입니다.
- ④철제 농기구 사용은 철기 시대 이후입니다.
- ⑤동굴이나 강가의 막집 거주가 구석기 시대의 모습입니다.
5부 중 계루부에서 왕이 나오고, 상가·대로·패자 등의 관직을 두었으며 서옥제라는 혼인 풍습이 있던 나라는 고구려입니다. 고구려는 10월에 동맹이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습니다.
- ①소도는 삼한의 신성 구역입니다.
- ②10월 동맹을 연 나라가 고구려입니다.
- ③책화는 동예의 풍습입니다.
- ④범금 8조는 고조선의 법입니다.
- ⑤화백 회의는 신라의 귀족 회의입니다.
(나)는 근초고왕이 평양성을 공격해 고국원왕(사유)이 전사한 371년, (가)는 장수왕(거련)이 한성을 함락하고 개로왕(경)이 죽은 475년, (다)는 성왕(명농)이 전사한 554년 관산성 전투입니다. 따라서 (나) → (가) → (다) 순입니다.
- ①(나)가 가장 앞섭니다.
- ②(다) 관산성 전투가 가장 나중입니다.
- ③371년 → 475년 → 554년 순으로 맞습니다.
- ④(가) 한성 함락이 (다) 관산성 전투보다 앞섭니다.
- ⑤(다)가 가장 앞설 수 없습니다.
부여 능산리에서 발견된 금동 대향로는 백제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입니다. 백제의 또 다른 대표 유물로는 부여에서 출토된 산수무늬 벽돌(①)이 있으며, 도교적 이상 세계를 표현한 점이 금동 대향로와 통합니다.
- ①산수와 나무를 새긴 산수무늬 벽돌로 백제의 문화유산입니다.
- ②나뭇가지 모양 세움 장식이 달린 금관으로 신라의 문화유산입니다.
- ③경주 호우총에서 나온 뚜껑 달린 청동 그릇(호우명 그릇)으로 신라의 유물입니다.
- ④철제 갑옷으로 가야의 문화유산입니다.
- ⑤두 부처가 나란히 앉은 이불병좌상으로 발해의 문화유산입니다.
일본 도다이사 쇼소인에서 발견된 신라 촌락 문서(민정 문서)로 서원경 부근 4개 촌락을 기록했으므로 (가)는 통일 신라입니다. 통일 신라 때는 장보고가 완도에 세운 청해진을 중심으로 해상 무역이 번성했습니다.
- ①경성·경원의 무역소는 조선 세종 때 여진과의 교역을 위해 설치되었습니다.
- ②솔빈부의 말은 발해의 특산품입니다.
- ③서적점·다점 등 관영 상점은 고려의 것입니다.
- ④청해진을 중심으로 한 해상 무역이 통일 신라의 경제 상황입니다.
- ⑤특수 행정 구역 소에서 물품을 생산한 것은 고려입니다.
국학 설치, 9주 정비, 고구려·백제·말갈인을 포함한 9서당 편성은 모두 신문왕의 정책입니다. 신문왕은 관리에게 관료전을 지급하고 귀족의 경제 기반이던 녹읍을 폐지해 왕권을 강화했습니다.
- ①병부 설치와 율령 반포는 신라 법흥왕의 업적입니다.
- ②관료전 지급과 녹읍 폐지가 신문왕의 정책입니다.
- ③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개편한 왕은 진흥왕입니다.
- ④독서삼품과를 시행한 왕은 원성왕입니다.
- ⑤국호를 마진으로 바꾼 인물은 궁예입니다.
진골 출신으로 당에 유학했고 「백화도량발원문」을 지었으며 낙산사와 부석사를 창건한 인물은 의상입니다. 의상은 화엄 사상을 210자로 요약한 화엄일승법계도를 지었습니다.
- ①보현십원가를 지은 인물은 균여입니다.
- ②세속 5계를 제시한 인물은 원광입니다.
- ③대승기신론소를 저술한 인물은 원효입니다.
- ④화엄일승법계도를 작성한 인물이 의상입니다.
- ⑤신편제종교장총록을 편찬한 인물은 의천입니다.
최치원이 쓴 표문에 나오는 왕자 대봉예의 쟁장 사건(발해가 신라보다 윗자리를 요구한 일)이므로 (가)는 발해입니다. 발해는 선왕 때 5경 15부 62주의 지방 행정 제도를 갖추었습니다.
- ①유기와 신집을 편찬한 나라는 고구려입니다.
- ②6좌평을 둔 나라는 백제입니다.
- ③5경 15부 62주를 갖춘 나라가 발해입니다.
- ④도병마사는 고려의 회의 기구입니다.
- ⑤골품제는 신라의 신분 제도입니다.
앞은 김지정의 난으로 혜공왕이 시해된 780년, 뒤는 사벌주에서 원종이 일으킨 원종·애노의 난(889)입니다. 그 사이인 822년 웅천주 도독 김헌창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 ①비담과 염종의 난은 647년으로 이전의 일입니다.
- ②김헌창의 웅천주 반란(822)이 (가) 시기의 사실입니다.
- ③연개소문의 정변은 642년으로 이전의 일입니다.
- ④만적의 난은 고려 무신 집권기의 일입니다.
- ⑤김춘추의 대당 군사 요청은 648년으로 이전의 일입니다.
금산사에 유폐되었던 견훤이 고려로 귀순한 것은 935년입니다. 이듬해인 936년 신검이 이끄는 후백제군이 일리천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후삼국이 통일되었습니다.
- ①신숭겸이 전사한 공산 전투는 927년으로 이전의 일입니다.
- ②일리천 전투(936)가 이 상황 이후의 사실입니다.
- ③궁예의 나주 점령은 903년 무렵으로 이전의 일입니다.
- ④고창 전투는 930년으로 이전의 일입니다.
- ⑤경애왕의 사망은 927년으로 이전의 일입니다.
청연각·보문각을 세우고 양현고를 둔 왕은 예종입니다. 예종은 국자감에 7재라는 전문 강좌를 개설해 관학을 진흥하고 사학의 융성에 대응했습니다.
- ①국자감에 7재를 개설한 왕이 예종입니다.
- ②12목에 경학 박사를 파견한 왕은 성종입니다.
- ③서적포를 설치한 왕은 숙종입니다.
- ④만권당을 세운 인물은 충선왕입니다.
- ⑤통문관을 설치한 왕은 충렬왕입니다.
야별초를 좌별초와 우별초로 나누어 편성한 (가)는 최우입니다. 최우는 자기 집에 인사 행정을 담당하는 정방을 두어 관리 임명권을 장악했습니다.
- ①원종을 폐위하고 안경공 창을 세운 인물은 임연입니다.
- ②9재 학당을 세운 인물은 최충입니다.
- ③정방을 설치한 인물이 최우입니다.
- ④전민변정도감의 책임자는 신돈입니다.
- ⑤오월에 사신을 보낸 인물은 견훤입니다.
황비창천 명 거울과 송·일본·아라비아 상인과의 교역이 나오므로 (가)는 고려입니다. 고려 숙종은 주전도감을 설치해 해동통보 등의 화폐를 발행했습니다.
- ①초량 왜관을 통한 대일 무역은 조선 후기입니다.
- ②덕대의 광산 경영은 조선 후기입니다.
- ③당항성·영암의 번성은 통일 신라입니다.
- ④거란도·영주도는 발해의 교역로입니다.
- ⑤주전도감을 두어 해동통보를 발행한 나라가 고려입니다.
14번고려 초·중기 정변의 순서
정답 ④ · 2점(나)는 왕규가 광주원군을 세우려다 실패한 945년, (다)는 강조가 목종을 폐하고 현종(대량원군)을 세운 1009년 강조의 정변, (가)는 1126년 이자겸의 난입니다. 따라서 (나) → (다) → (가) 순입니다.
- ①(가) 이자겸의 난이 가장 나중입니다.
- ②(다)가 (나)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 ③(가)가 (다)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 ④왕규의 난(945) → 강조의 정변(1009) → 이자겸의 난(1126) 순으로 맞습니다.
- ⑤(다)가 가장 앞설 수 없습니다.
15번개경(개성) 지역의 역사
정답 ③ · 3점만월대, 국자감을 계승한 성균관, 태조 왕건의 무덤 현릉, 만부교, 숭양서원은 모두 고려의 도읍 개경(개성)에 있습니다. 거란의 침입 이후 강감찬의 건의로 개경에 나성이 축조되었습니다.
- ①저고여가 피살된 곳은 고려와 몽골의 국경 부근입니다.
- ②서희가 얻은 강동 6주는 압록강 동쪽 지역입니다.
- ③강감찬의 건의로 나성이 축조된 곳이 개경입니다.
- ④김보당이 봉기한 곳은 동북면(강원·함경 방면)입니다.
- ⑤최무선이 화포로 왜구를 물리친 곳은 진포(금강 하구)입니다.
16번몽골의 침입과 고려의 대응
정답 ① · 2점방호별감 김윤후가 충주산성에서 승리한 1253년의 상대이므로 (가)는 몽골입니다. 고려는 1232년 최우의 주도로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 장기 항전에 들어갔습니다.
- ①강화도 천도가 몽골 침입에 대한 고려의 대응입니다.
- ②광군 조직은 거란에 대비한 조치입니다.
- ③훈련도감 신설은 조선 임진왜란 때의 일입니다.
- ④별무반과 동북 9성은 여진에 대한 대응입니다.
- ⑤요동 정벌은 명의 철령위 설치에 반발한 것입니다.
상형자기는 동물·인물 등의 형상을 본떠 만든 자기로, 비색을 띠는 고려청자가 대표적입니다. 동물 모양으로 빚은 고려 청자 주전자(①)가 특별전에 알맞습니다.
- ①동물 머리 모양으로 빚은 고려 청자 주전자로, 상형자기에 해당합니다.
- ②푸른 안료로 그림을 그린 조선의 청화 백자로 고려 상형자기가 아닙니다.
- ③표면에 검은 안료로 넝쿨무늬를 그린 도자기로 고려 상형 청자가 아닙니다.
- ④뿔잔 두 개에 수레바퀴를 붙인 도기 바퀴장식 뿔잔으로 가야의 토기입니다.
- ⑤짐승 모양으로 빚은 삼국 시대의 토기로 고려 상형 청자가 아닙니다.
세자 시절 원의 황녀와 혼인하고 변발을 한 국왕은 충렬왕이며, 겁령구는 원 공주를 따라온 사속인입니다. 원 간섭기에 원에 바칠 매를 기르고 훈련시키는 응방이 설치되었습니다.
- ①과거제 도입은 고려 광종 때입니다.
- ②흑창 설립은 고려 태조 때입니다.
- ③응방 설치가 이 뉴스 이후의 사실입니다.
- ④의천의 천태종 개창은 고려 중기(숙종 무렵)의 일입니다.
- ⑤망이·망소이의 봉기는 무신 집권기의 일입니다.
남양에서 나온 경석으로 박연이 편경을 만들고 아악을 정비한 것은 세종 때의 일입니다. 세종 때 유교 윤리 보급을 위해 삼강행실도가 편찬되었습니다.
- ①무예도보통지는 정조 때 간행되었습니다.
- ②동의보감은 광해군 때 완성되었습니다.
- ③악학궤범은 성종 때 완성되었습니다.
- ④삼강행실도 편찬이 세종 때의 일입니다.
- ⑤만기요람은 순조 때 만들어졌습니다.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을 빌미로 신하들을 숙청하고 흥청을 두었으며 반정으로 폐위되어 교동도로 유배된 (가)는 연산군입니다. 연산군 때인 1498년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발단이 되어 김일손 등이 화를 입은 무오사화가 일어났습니다.
- ①남이의 처형은 예종 때의 일입니다.
- ②기사환국은 숙종 때의 일입니다.
- ③윤임 제거(을사사화)는 명종 때의 일입니다.
- ④조광조 일파 축출(기묘사화)은 중종 때의 일입니다.
- ⑤조의제문이 발단이 된 무오사화가 연산군 때의 사실입니다.
권율과 황진이 이치에서 일본군의 진격을 막아 전라도 곡창 지대를 지킨 것은 임진왜란 초기(1592)의 일입니다. 같은 전쟁 중 함경도에서는 정문부가 의병을 일으켜 북관대첩을 이끌었습니다.
- ①정문부의 북관대첩이 임진왜란 중의 사실입니다.
- ②정봉수의 용골산성 항쟁은 정묘호란 때입니다.
- ③최윤덕의 이만주 부대 정벌은 세종 때의 4군 개척입니다.
- ④강홍립의 사르후 전투 참전은 광해군 때(1619)입니다.
- ⑤김준룡의 광교산 전투는 병자호란 때입니다.
옥당이라 불리며 궁중 도서를 관리하고 문한과 왕의 자문을 담당한 (가)는 홍문관입니다. 홍문관은 사헌부·사간원과 함께 언론 기능을 맡아 3사로 불렸습니다.
- ①수도의 행정과 치안을 담당한 곳은 한성부입니다.
- ②사헌부·사간원과 함께 3사로 불린 기구가 홍문관입니다.
- ③대사성·좨주·직강이 있던 곳은 성균관입니다.
- ④왕명 출납을 맡은 곳은 승정원입니다.
- ⑤실록을 편찬한 곳은 춘추관입니다.
방납의 폐단을 없애고자 영의정 김육이 충청도(호서)에서 먼저 시행하기를 청한 (가)는 대동법입니다. 대동법 시행 이후 정부에 물품을 조달하는 어용상인인 공인이 등장했습니다.
- ①전시과의 전지 지급 기준 변화는 고려의 토지 제도입니다.
- ②선무군관포는 균역법의 재정 보완책입니다.
- ③과전 지급 대상을 현직으로 제한한 것은 직전법입니다.
- ④전세 부담액을 고정한 것은 영정법입니다.
- ⑤공인이 등장한 배경을 조사하는 것이 대동법에 알맞습니다.
『곽우록』을 짓고 영업전을 설정해 매매를 금지하는 한전론을 주장한 '이 인물'은 이익입니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나라를 좀먹는 여섯 가지 폐단(노비·과거·양반 문벌·기교·승려·게으름)을 지적했습니다.
- ①의산문답에서 무한 우주론을 주장한 인물은 홍대용입니다.
- ②북학의에서 적절한 소비를 권장한 인물은 박제가입니다.
- ③열하일기를 쓴 인물은 박지원입니다.
- ④성호사설에서 여섯 가지 좀을 제시한 인물이 이익입니다.
- ⑤우서를 쓴 인물은 유수원입니다.
준천사를 설치해 청계천을 준설하고 폐지되었던 신문고를 복구한 왕은 영조입니다. 영조는 경국대전 이후의 법령을 정리한 속대전을 편찬했습니다.
- ①나선 정벌에 조총 부대를 보낸 왕은 효종입니다.
- ②속대전을 편찬한 왕이 영조입니다.
- ③백두산정계비를 건립한 왕은 숙종입니다.
- ④초계문신제를 시행한 왕은 정조입니다.
- ⑤총융청·수어청을 창설한 왕은 인조입니다.
26번신유박해 무렵의 모습 — 적절하지 않은 것 고르기
정답 ③ · 2점대왕대비(정순 왕후)의 사학 단속 강화와 이승훈·정약종의 희생은 1801년 신유박해입니다. 계미자 주조는 조선 태종 때(1403)의 일이므로 이 시기의 모습으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 ①상평통보 거래는 조선 후기의 모습입니다.
- ②송상의 인삼 무역은 조선 후기의 모습입니다.
- ③계미자 주조는 태종 때(1403)의 일입니다.
- ④고추·담배 등 상품 작물 재배는 조선 후기의 모습입니다.
- ⑤전기수의 한글 소설 낭독은 조선 후기의 모습입니다.
'연소답청'을 그린 혜원은 신윤복입니다. 신윤복은 양반과 여인의 풍류를 즐겨 그렸으며, 달빛 아래 남녀의 만남을 그린 '월하정인'(③)이 대표작입니다.
- ①고양이가 병아리를 채가는 장면을 그린 김득신의 야묘도추(파적도)입니다.
- ②여러 인물이 실내에 모인 장면을 그린 조선 후기 풍속화로 신윤복의 작품이 아닙니다.
- ③달빛 아래 남녀의 만남을 그린 신윤복의 월하정인입니다.
- ④나귀를 탄 인물과 서민들을 그린 김홍도 계열의 조선 후기 풍속화입니다.
- ⑤바위와 나무를 먹으로 그린 조선 후기 수묵화로 풍속화가 아닙니다.
28번최익현의 왜양일체론 상소
정답 ② · 3점이항로·기정진의 척화 상소를 언급하며 왜인이 양적의 앞잡이가 되었으니 강화할 수 없다는 최익현의 상소는 강화도 조약 체결 직전인 1876년의 지부복궐척화의소입니다. 연표에서 신미양요(1871)와 갑신정변(1884) 사이인 (나)에 해당합니다.
- ①고종 즉위(1863)~신미양요(1871) 사이입니다.
- ②신미양요(1871)~갑신정변(1884) 사이로, 1876년 상소가 여기에 들어갑니다.
- ③갑신정변(1884)~을미사변(1895) 사이입니다.
- ④을미사변(1895)~러일 전쟁 발발(1904) 사이입니다.
- ⑤러일 전쟁 발발(1904)~국권 피탈(1910) 사이입니다.
원납전을 걷어 경복궁을 중건한 것은 흥선 대원군 집권기(1865~1868)의 일입니다. 이 시기인 1866년 병인양요 때 한성근 부대가 문수산성에서 프랑스군에 맞서 싸웠습니다.
- ①청일 전쟁 발발은 1894년입니다.
- ②삼정이정청 설치는 1862년입니다.
- ③영국의 거문도 점령은 1885년입니다.
- ④김기수의 수신사 파견은 1876년입니다.
- ⑤한성근의 문수산성 항전(1866)이 중건 시기의 사실입니다.
30번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정답 ① · 2점청 상인이 양화진과 한성에 점포를 열 수 있게 되어 청·일 상인의 경쟁이 치열해진 계기는 1882년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입니다. 이 장정은 임오군란을 진압한 청이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며 체결되었습니다.
- ①임오군란을 계기로 체결된 것이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입니다.
- ②거중 조정 조항은 조미 수호 통상 조약에 있습니다.
- ③방곡령 조건을 명시한 것은 조일 통상 장정(1883)입니다.
- ④부산·원산 개항은 강화도 조약의 결과입니다.
- ⑤외국인 재정 고문을 두게 한 것은 제1차 한일 협약입니다.
전봉준 공초, 갑오군정실기, 사발통문은 모두 동학 농민 운동 기록물로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농민군은 전주 화약 이후 전라도 각지에 집강소를 설치해 폐정 개혁안을 실천했습니다.
- ①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저지한 단체는 보안회입니다.
- ②조선 총독부의 탄압으로 중단된 것은 민립 대학 설립 운동 등입니다.
- ③집강소를 중심으로 폐정 개혁안을 실천한 것이 동학 농민 운동입니다.
- ④남한 대토벌 작전으로 피해를 입은 것은 의병 부대입니다.
- ⑤박규수가 안핵사로 파견된 것은 임술 농민 봉기입니다.
1897년 독립관에서 토론회를 열고 이상재가 위원으로 참여한 (가)는 독립 협회입니다. 독립 협회는 1898년 관민 공동회를 열어 헌의 6조를 결의하고 고종의 재가를 받았습니다.
- ①고종 강제 퇴위 반대 운동을 주도한 단체는 대한 자강회입니다.
- ②만세보를 발행한 곳은 천도교입니다.
- ③파리 강화 회의에 청원서를 낸 곳은 신한청년당입니다.
- ④관민 공동회를 열어 헌의 6조를 결의한 단체가 독립 협회입니다.
- ⑤태극 서관을 운영한 단체는 신민회입니다.
구본신참을 기본 방향으로 삼고 원수부·무관학교·상공학교를 세운 개혁은 대한 제국의 광무개혁입니다. 광무개혁에서는 양전 사업을 실시하고 토지 소유권을 확인해 주는 지계를 발급했습니다.
- ①군국기무처는 제1차 갑오개혁의 기구입니다.
- ②6조를 8아문으로 개편한 것은 제1차 갑오개혁입니다.
- ③기기창 설립은 1883년의 일입니다.
- ④지계 발급이 광무개혁의 내용입니다.
- ⑤홍범 14조 반포는 제2차 갑오개혁 때입니다.
ㄴ. 광혜원은 알렌의 건의로 세워진 최초의 서양식 병원(1885)이고, ㄷ. 한성 전기 회사는 서대문~청량리 전차(1899)를 운영했습니다. ㄱ. 배재 학당은 선교사 아펜젤러가 세운 사립 학교이고, ㄹ. 나운규의 아리랑(1926)은 단성사에서 상영되었습니다.
- ①ㄱ이 틀렸습니다. 배재 학당은 아펜젤러가 세운 사립 학교입니다.
- ②ㄱ이 틀렸습니다.
- ③ㄴ과 ㄷ이 옳습니다.
- ④ㄹ이 틀렸습니다. 아리랑은 단성사에서 상영되었습니다.
- ⑤ㄹ이 틀렸습니다.
35번을사늑약 이후의 국권 수호 운동
정답 ⑤ · 2점외교권을 빼앗기고 통감부가 설치된 1905년 이후의 국권 수호 노력을 묻고 있습니다. 1907년 고종은 이상설·이준·이위종을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로 보내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려 했습니다.
- ①김홍집의 조선책략 반입은 1880년의 일입니다.
- ②김옥균의 개화당 정부 수립은 1884년 갑신정변 때입니다.
- ③김윤식의 영선사 파견은 1881년의 일입니다.
- ④유길준의 조선 중립화론 건의는 1885년 무렵의 일입니다.
- ⑤이상설의 헤이그 특사 파견(1907)이 을사늑약 이후의 국권 수호 노력입니다.
조선 태형령이 시행되고 헌병 경찰이 재판 없이 태형을 가하던 '이 시기'는 1910년대 무단 통치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교사까지 제복을 입고 칼을 찬 채 수업할 만큼 위압적인 분위기였습니다.
- ①암태도 소작 쟁의는 1923~1924년의 일입니다.
- ②제복을 입고 칼을 찬 교사가 1910년대의 모습입니다.
- ③잡지 어린이는 1923년에 창간되었습니다.
- ④토월회는 1923년에 결성된 신극 단체입니다.
- ⑤경성 고무 여자 직공 조합 파업은 1931년의 일입니다.
37번제2차 조선 교육령 이후
정답 ⑤ · 3점보통학교의 수업 연한을 6년으로 하고 '내선공통'을 내세운 이 법령은 1922년 제2차 조선 교육령입니다. 이듬해인 1923년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 창립 총회가 열려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 ①해조신문 창간은 1908년의 일입니다.
- ②송죽회 결성은 1913년의 일입니다.
- ③화폐 정리 사업은 1905년의 일입니다.
- ④회사령 공포는 1910년의 일입니다.
- ⑤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 창립 총회(1923)가 이 법령 이후의 사실입니다.
1919년 지린성에서 김원봉이 윤세주 등과 함께 일제 통치 기관 파괴와 요인 처단을 목표로 조직한 (가)는 의열단입니다. 의열단은 1923년 신채호가 쓴 조선 혁명 선언을 통해 이념과 활동 방침을 밝혔습니다.
- ①신흥 강습소를 세운 곳은 신민회 계열의 서간도 이주민들입니다.
- ②구미 위원부를 설치한 곳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이승만)입니다.
- ③이봉창이 속한 단체는 한인 애국단입니다.
- ④조선 혁명 선언으로 활동 방침을 밝힌 단체가 의열단입니다.
- ⑤국권 반환 요구서를 제출하려 한 단체는 독립 의군부입니다.
평양에서 조만식 등의 주도로 시작되어 '내 살림 내 것으로'를 내건 '이 운동'은 물산 장려 운동(1920~)입니다. 서울에서는 자작회, 토산 애용 부인회 등이 조직되어 이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 ①대한매일신보의 후원을 받은 것은 국채 보상 운동입니다.
- ②순종 인산일을 기회로 삼은 것은 6·10 만세 운동입니다.
- ③자작회·토산 애용 부인회가 활동한 운동이 물산 장려 운동입니다.
- ④신간회가 진상 조사단을 파견한 것은 광주 학생 항일 운동입니다.
- ⑤강주룡의 을밀대 고공 농성은 평원 고무 공장 파업 때의 일입니다.
1927년 결성되어 조선 여성의 공고한 단결과 지위 향상을 내건 (가)는 근우회입니다. 근우회는 신간회의 자매 단체로 좌우를 아우르는 민족 협동 전선의 성격을 띠었습니다.
- ①개벽·신여성을 발행한 곳은 천도교입니다.
- ②이화 학당을 세운 인물은 선교사 스크랜턴입니다.
- ③좌우를 아우르는 민족 협동 전선으로 결성된 단체가 근우회입니다.
- ④여유당전서를 간행한 것은 조선학 운동을 편 정인보·안재홍 등입니다.
- ⑤여권통문을 발표한 것은 1898년 서울 북촌의 여성들입니다.
41번대한민국 임시 정부 — 옳지 않은 것 고르기
정답 ① · 2점한국광복군을 창설하고 외무부를 둔 (가)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입니다. 경학사는 1911년 서간도에서 이회영 등 신민회 인사들이 조직한 한인 자치 기관이므로 임시 정부의 활동이 아닙니다.
- ①경학사 조직은 1911년 서간도 이주 인사들의 활동입니다.
- ②독립 공채 발행은 임시 정부의 활동입니다.
- ③삼균주의 건국 강령 발표는 임시 정부의 활동입니다.
- ④육군 주만 참의부 편성은 임시 정부 직할 부대의 활동입니다.
- ⑤한일 관계 사료집 간행은 임시 사료 편찬회를 둔 임시 정부의 활동입니다.
42번중일 전쟁 이후의 전시 동원
정답 ④ · 1점7월 13일 일기의 중일 전쟁 발발(1937)과 10월 8일 일기의 미나미 지로가 만든 황국 신민 서사(1937)가 나옵니다. 이후 일제는 1944년 여자 정신 근로령을 공포해 여성까지 강제 동원했습니다.
- ①미쓰야 협정은 1925년의 일입니다.
- ②치안 유지법 제정은 1925년의 일입니다.
- ③조선사 편수회 조직은 1925년의 일입니다.
- ④여자 정신 근로령 공표(1944)가 이 일기 이후의 사실입니다.
- ⑤동양 척식 주식회사 설립은 1908년의 일입니다.
43번일제 강점기의 문화 — 적절하지 않은 것 고르기
정답 ④ · 2점백화점·끽다점·문화 주택과 나란히 놓일 일제 강점기의 문화 주제여야 합니다. 새마을 운동은 1970년대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것이므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 ①몸뻬는 일제 강점기 말 전시 체제의 의생활입니다.
- ②라디오 방송은 1927년 경성 방송국 개국 이후 확산되었습니다.
- ③경평 축구 대회는 1929년에 시작되었습니다.
- ④새마을 운동은 1970년대의 일로 일제 강점기와 맞지 않습니다.
- ⑤모던 걸의 등장은 1920~30년대의 모습입니다.
여운형이 수반이고 엔도 정무총감에게 다섯 가지 요구를 관철한 (가)는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입니다. 건준은 미군 진주를 앞두고 조선 인민 공화국 수립을 선포한 뒤 해산했습니다.
- ①신한공사는 미군정이 설립한 기구입니다.
- ②좌우 합작 7원칙은 좌우 합작 위원회가 제시했습니다.
- ③한인 국방 경위대는 재미 한족 연합 위원회가 창설했습니다.
- ④남북 협상 공동 성명서는 1948년 남북 협상에서 발표되었습니다.
- ⑤조선 인민 공화국 수립 선포 후 해산한 조직이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입니다.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의 배경이며 남한만의 단독 선거에 반대하는 세력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제주 주민이 희생된 '이 사건'은 제주 4·3 사건(1948)입니다. 2000년 진상 규명과 희생자 명예 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었습니다.
- ①향토 예비군 창설의 계기는 1968년 1·21 사태입니다.
- ②조봉암의 사형은 1959년 진보당 사건입니다.
- ③유엔군 파병의 원인은 6·25 전쟁입니다.
- ④허정 과도 정부 구성은 4·19 혁명의 결과입니다.
- ⑤진상 규명·명예 회복 특별법이 제정된 사건이 제주 4·3 사건입니다.
46번내포 지역 답사 — 적절하지 않은 것 고르기
정답 ⑤ · 3점추사 고택은 김정희와 관련된 곳입니다. 이황과 사단칠정 논쟁을 벌인 인물은 기대승이므로 (마)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 ①남연군 묘는 오페르트 도굴 미수 사건(1868)의 현장입니다.
- ②윤봉길 생가는 한인 애국단 활동과 이어집니다.
- ③수덕사 대웅전은 고려 시대 주심포 양식 건축물입니다.
- ④임존성은 흑치상지 등이 백제 부흥 운동을 벌인 곳입니다.
- ⑤추사 고택은 김정희의 집으로, 사단칠정 논쟁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내포#남연군 묘#윤봉길#수덕사#임존성#추사 고택 (가)는 초대 대통령의 중임 제한을 없앤 1954년 사사오입 개헌, (나)는 통일 주체 국민 회의를 둔 1972년 유신 헌법, (다)는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을 규정한 1987년 9차 개헌입니다.
- ①1954년 → 1972년 → 1987년 순으로 맞습니다.
- ②(다)가 (나)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 ③(나)가 (가)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 ④(나)가 가장 앞설 수 없습니다.
- ⑤(다)가 가장 나중입니다.
경부 고속 국도 준공(1970)과 서울 최초의 개발 제한 구역 설정(1971)은 박정희 정부의 일입니다. 박정희 정부 시기인 1974년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었습니다.
- ①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1974)이 이 정부 시기의 모습입니다.
- ②반민족 행위 처벌법 통과는 1948년 이승만 정부 때입니다.
- ③한중 FTA 서명은 2015년 박근혜 정부 때입니다.
- ④금융실명제 실시는 1993년 김영삼 정부 때입니다.
- ⑤금 모으기 운동은 1998년 김대중 정부 때입니다.
#박정희 정부#경부 고속 국도#개발 제한 구역#서울 지하철 1호선 49번노태우 정부의 통일·외교
정답 ② · 2점서울 올림픽(1988) 이후 헝가리를 방문하고 7·7 선언과 북방 정책을 편 것은 노태우 정부입니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91년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했습니다.
- ①남북 조절 위원회 구성은 1972년 박정희 정부 때입니다.
- ②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1991)이 노태우 정부 시기의 통일 노력입니다.
- ③금강산 해로 관광 시작은 1998년 김대중 정부 때입니다.
- ④개성 남북 경제 협력 협의 사무소 설치는 2000년대의 일입니다.
- ⑤이산가족 고향 방문단 교환은 1985년 전두환 정부 때입니다.
50번연호를 사용한 군주들 — 옳지 않은 것 고르기
정답 ⑤ · 3점(가) 광개토 대왕(영락), (나) 법흥왕(건원), (다) 발해 무왕(인안), (라) 고려 광종(광덕·준풍), (마) 순종(융희)입니다. 대한국 국제를 반포한 것은 고종이므로 (마)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습니다.
- ①광개토 대왕이 왜를 격퇴한 것은 옳습니다.
- ②법흥왕이 금관가야를 복속한 것은 옳습니다.
- ③발해 무왕이 장문휴를 보내 산둥반도를 공격한 것은 옳습니다.
- ④광종이 노비안검법을 시행한 것은 옳습니다.
- ⑤대한국 국제(1899)를 반포한 것은 고종이지 순종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