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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이 발생한 시대를 대표하는 무덤인 고인돌이 나오므로 (가)는 청동기 시대입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벼농사가 보급되어 반달 돌칼로 이삭을 수확했습니다.
- ①반달 돌칼로 벼를 수확한 것이 청동기 시대의 모습입니다.
- ②소를 이용한 깊이갈이(우경)가 널리 퍼진 것은 고려 시대입니다.
- ③동굴이나 강가의 막집 생활은 구석기 시대입니다.
- ④오수전·화천 등 중국 화폐로 교역한 것은 철기 시대입니다.
- ⑤가락바퀴와 뼈바늘로 옷을 지어 입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 시대입니다.
국경 수비를 맡았다가 준왕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으며 왕검성을 중심으로 기반을 정비했다는 인물은 위만입니다. 위만 조선은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진번과 임둔을 복속시켜 영토를 넓혔습니다.
- ①율령 반포는 삼국의 체제 정비 과정에서 나온 일입니다.
- ②화랑도의 국가 조직 개편은 신라 진흥왕입니다.
- ③내신 좌평 등 6좌평제를 둔 나라는 백제입니다.
- ④진번과 임둔을 복속해 영토를 넓힌 것이 위만 조선입니다.
- ⑤욕살·처려근지를 지방 성에 둔 나라는 고구려입니다.
넓고 평탄한 땅, 은력 정월의 제천 행사 영고가 나오므로 부여입니다. 부여는 왕 아래 마가·우가·저가·구가 등 여러 가(加)가 각각 사출도를 다스리는 연맹 왕국이었습니다.
- ①신성 지역 소도가 있던 나라는 삼한입니다.
- ②민며느리제는 옥저의 혼인 풍습입니다.
- ③여러 가들이 각각 사출도를 주관한 것이 부여입니다.
- ④단궁·과하마·반어피가 특산물인 나라는 동예입니다.
- ⑤상가·대로·패자 등의 관직을 둔 나라는 고구려입니다.
'적절하지 않은 것'을 고르는 문항입니다. 성왕이 전사한 곳은 신라와 맞붙은 관산성(충북 옥천)이지 부여의 부소산성이 아닙니다. 부소산성은 사비 도읍기의 도성 배후 산성입니다.
- ①공산성은 웅진 도읍기의 산성으로 웅진성이라고도 불렸습니다.
- ②무령왕릉은 벽돌무덤 양식으로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 ③성왕이 전사한 곳은 부소산성이 아니라 관산성이므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 ④능산리 고분군에서는 사신도 벽화가 그려진 굴식 돌방무덤이 확인되었습니다.
- ⑤익산 왕궁리 유적에서는 '수부(首府)'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었습니다.
(가)는 대야성 패전 뒤 김춘추가 고구려에 군사를 청한 642년, (나)는 김춘추가 당 태종에게 파병을 얻어낸 648년 나당 동맹입니다. 그 사이인 645년에 고구려가 안시성에서 당 태종의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 ①문무왕의 안승 보덕국왕 책봉은 674년으로 (나) 이후입니다.
- ②안시성 싸움에서 당군을 물리친 것은 645년으로 (가)와 (나) 사이입니다.
- ③복신·도침의 부여풍 추대는 660년 백제 멸망 뒤의 부흥 운동입니다.
- ④계백의 황산벌 항전은 660년으로 (나) 이후입니다.
- ⑤진흥왕의 대가야 정복은 562년으로 (가) 이전입니다.
6번신라 하대 진성여왕 대의 혼란
정답 ③ · 2점해인사 묘길상탑기에 담긴 전란과 굶주림은 진성여왕(887~897) 대의 사회상입니다. 이 시기 889년에 원종과 애노가 사벌주에서 봉기해 신라 하대 농민 봉기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 ①원광의 세속 5계 제시는 진평왕 대의 일입니다.
- ②이차돈의 순교로 불교가 공인된 것은 법흥왕 대(527)입니다.
- ③원종과 애노가 사벌주에서 봉기한 것이 진성여왕 대(889)입니다.
- ④거칠부의 국사 편찬은 진흥왕 대(545)입니다.
- ⑤자장의 건의로 황룡사 구층 목탑이 세워진 것은 선덕여왕 대입니다.
김해 봉황동 유적과 김수로왕 건국 설화가 나오므로 (가)는 금관가야입니다. 낙동강 하류의 철을 바탕으로 낙랑과 왜에 철을 수출했고 덩이쇠를 화폐처럼 썼습니다.
- ①집사부 등 14부를 둔 나라는 통일 신라입니다.
- ②집집마다 부경이라는 창고를 둔 나라는 고구려입니다.
- ③대가들이 사자·조의·선인을 거느린 나라는 고구려입니다.
- ④철이 많이 나 낙랑·왜에 수출한 것이 금관가야입니다.
- ⑤부여씨와 8성 귀족이 지배층을 이룬 나라는 백제입니다.
이름이 구부이고 고국원왕의 아들이며 전진 왕 부견이 순도를 보내 불교를 전한 왕은 소수림왕입니다. 소수림왕은 372년 태학을 세워 인재를 기르고 이듬해 율령을 반포했습니다.
- ①태학을 세워 인재를 기른 것이 소수림왕입니다.
- ②평양 천도는 장수왕(427)입니다.
- ③서안평 점령은 미천왕(311)입니다.
- ④영락 연호 사용은 광개토 대왕입니다.
- ⑤을파소 등용과 진대법 시행은 고국천왕입니다.
상평창을 개경·서경과 12목에 설치했다는 교서이므로 성종(재위 981~997) 대입니다. 성종은 국자감을 정비해 유학 교육을 국가가 맡도록 했으므로 국자감 박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①서적포 설치는 숙종 대의 일입니다.
- ②국자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박사는 성종 대에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 ③양현고는 예종이 둔 장학 재단입니다.
- ④9재 학당은 문종 대 최충이 세운 사학입니다.
- ⑤청연각은 예종이 둔 학문 기관입니다.
중국 지린성에 있는 벽돌 전탑 영광탑이 (가)의 탑으로 확정되었다고 했으므로 (가)는 발해입니다. 보기 가운데 발해의 유물은 두 부처가 나란히 앉은 이불병좌상(①)으로, 고구려 양식을 이은 발해 불상의 대표작입니다.
- ①두 부처가 나란히 앉은 이불병좌상으로 발해의 불상입니다.
- ②화염 무늬 광배를 두른 금동 여래 좌상으로 발해의 유물이 아닙니다.
- ③배 모양 광배를 갖춘 금동 불상으로 발해의 유물이 아닙니다.
- ④화강암으로 만든 석조 여래 좌상으로 통일 신라의 불상입니다.
- ⑤한쪽 다리를 올리고 생각에 잠긴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으로 삼국 시대의 불상입니다.
노비안검법을 실시하고 쌍기·채인범 등 귀화인을 적극 등용한 왕은 광종입니다. 광종은 광덕·준풍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써서 황제국의 위상을 드러냈습니다.
- ①최승로의 시무 28조 건의는 성종 대입니다.
- ②과전법 실시는 고려 말 공양왕 대(1391)입니다.
- ③신돈의 전민변정도감 판사 임명은 공민왕 대입니다.
- ④빈민 구제 기관 흑창을 처음 설치한 것은 태조 왕건입니다.
- ⑤광덕·준풍 등 독자적 연호를 쓴 것이 광종입니다.
개경 외에 남경·동경이 설치되었다는 설명에서 (가)는 고려입니다. 고려는 일반 군현과 달리 세금·역 부담이 무거운 특수 행정 구역으로 향·부곡·소를 두었습니다.
- ①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한 나라는 백제입니다.
- ②9주 5소경은 통일 신라의 지방 제도입니다.
- ③향·부곡·소라는 특수 행정 구역을 둔 것이 고려입니다.
- ④지방관 감찰을 위한 외사정은 통일 신라가 두었습니다.
- ⑤8도를 23부로 개편한 것은 1895년 제2차 갑오개혁입니다.
13번고려 중기 여진·금 관계의 전개
정답 ③ · 3점(나) 윤관의 동북 9성 축조(1107) → (가) 금 태조 아구다의 형제 관계 요구(1117) → (다) 정지상 등의 금 정벌 주장(1135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순입니다.
- ①(가)-(나)-(다) 순은 아닙니다.
- ②(가)-(다)-(나) 순은 아닙니다.
- ③(나) 동북 9성 축조 → (가) 금의 형제 관계 요구 → (다) 묘청 세력의 금 정벌 주장 순이 맞습니다.
- ④(나)-(다)-(가) 순은 아닙니다.
- ⑤(다)-(나)-(가) 순은 아닙니다.
14번우리 역사 속 천문 관측
정답 ④ · 2점천문과 관련된 사례를 묻는데 '옳지 않은 것'을 고르는 문항입니다. 선조 때 이장손이 만든 비격진천뢰는 시한 폭탄식 화약 무기로 천문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 ①고구려 무용총 등 고분 벽화에는 별자리 그림이 남아 있습니다.
- ②삼국사기에는 일식·월식 등 천문 관측 기록이 많이 실려 있습니다.
- ③서운관은 고려의 천문 관측 기구로 충선왕 대에도 운영되었습니다.
- ④비격진천뢰는 화약 무기라 천문 사례로 볼 수 없으므로 옳지 않습니다.
- ⑤홍대용은 의산문답에서 지전설과 무한 우주론을 주장했습니다.
최씨 무신 정권이 조직했고 좌별초·우별초로 나뉜 (가)는 삼별초입니다. 개경 환도에 반발한 삼별초는 배중손의 지휘 아래 진도로 옮겨 용장성을 쌓고 몽골에 맞섰습니다.
- ①후금의 침입에 대비해 창설된 부대는 총융청·수어청 등 조선 후기 군영입니다.
- ②원의 요청으로 일본 원정에 동원된 것은 고려 정부군입니다.
- ③신기군·신보군·항마군으로 편성된 것은 별무반입니다.
- ④진도에서 용장성을 쌓고 몽골에 대항한 것이 삼별초입니다.
- ⑤응양군·용호군으로 구성된 국왕 친위 부대는 2군입니다.
응방, 몽골어 역관 유청신, 기철 등 부원 세력이 나오므로 원 간섭기(충렬왕~공민왕 초)입니다. 이 시기 지배층 사이에서는 변발과 호복 같은 몽골풍이 유행했습니다.
- ①정감록 유포는 조선 후기의 일입니다.
- ②의천의 해동 천태종 개창은 고려 중기 숙종 대입니다.
- ③지배층을 중심으로 변발·호복이 유행한 것이 원 간섭기입니다.
- ④망이·망소이의 봉기는 무신 집권기(1176)입니다.
- ⑤납속·공명첩을 통한 신분 상승은 조선 후기의 모습입니다.
승려 백운이 엮어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찍었고 하권만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남아 있는 (가)는 직지심체요절입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 활자 인쇄본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입니다.
- ①신미양요 때 미군이 탈취한 것은 어재연 장군기입니다.
- ②현존 최고(最古)의 금속 활자본인 것이 직지심체요절입니다.
- ③거란의 침입을 물리치려 만든 것은 초조대장경입니다.
- ④장영실·이천이 만든 활자로 찍은 것은 조선 전기의 갑인자 인쇄본입니다.
- ⑤불국사 삼층 석탑 보수 중 발견된 것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입니다.
불씨잡변을 지어 불교를 비판하고 경복궁의 이름을 지었으며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한 인물은 정도전입니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을 지어 통치 제도의 뼈대를 세웠습니다.
- ①백운동 서원을 세운 인물은 주세붕입니다.
- ②해동제국기를 편찬한 인물은 신숙주입니다.
- ③성학십도를 지은 인물은 이황입니다.
- ④조선경국전을 지어 통치 제도 정비에 기여한 것이 정도전입니다.
- ⑤경세유표를 집필한 인물은 정약용입니다.
호패법 재실시 등 중앙 집권 강화에 반발해 이시애가 함길도에서 난을 일으킨 것은 1467년 세조 대입니다. 세조는 과전이 부족해지자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권을 주는 직전법을 시행했습니다.
- ①주자소 설치와 계미자 주조는 태종입니다.
- ②현직 관리에게만 수조권을 준 직전법 실시가 세조입니다.
- ③경국대전을 완성해 반포한 것은 성종입니다.
- ④기유약조 체결은 광해군 대(1609)입니다.
- ⑤갑자사화를 일으킨 것은 연산군입니다.
항왜 김충선(사야가)과 명의 장수 천만리가 참전한 (가) 전쟁은 임진왜란입니다. 정유재란 때 이순신이 울돌목의 좁은 물길과 조류를 이용해 승리한 명량 해전이 이 전쟁의 대표적 전투입니다.
- ①나선 정벌은 효종 대 러시아와 싸운 일입니다.
- ②북학론은 조선 후기 청의 문물 수용을 주장한 사상입니다.
- ③명량 해전의 승리 요인을 분석하는 것이 임진왜란 탐구로 적절합니다.
- ④삼정이정청은 1862년 임술 농민 봉기 뒤에 설치되었습니다.
- ⑤4군 6진 개척은 세종 대 여진에 대한 북방 개척입니다.
호가 남명이고 지리산 기슭 산천재에서 제자를 가르쳤으며 경(敬)과 의(義)를 강조한 인물은 조식입니다. 그의 문하에서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곽재우·정인홍 등이 배출되었습니다.
- ①곽재우·정인홍 등 의병장을 제자로 길러낸 것이 조식입니다.
- ②기기도설을 참고해 거중기를 설계한 인물은 정약용입니다.
- ③위훈 삭제를 주장하다 훈구의 반발을 산 인물은 조광조입니다.
- ④북학의를 지어 수레·배의 이용을 권장한 인물은 박제가입니다.
- ⑤양명학을 연구해 강화 학파를 이룬 인물은 정제두입니다.
공법 시행을 두고 17만여 명에게 찬반을 물은 전국적 여론 조사는 세종 대(1430)의 일입니다. 세종 때에는 우리 풍토에 맞는 농법을 정리한 농사직설이 간행되었습니다.
- ①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제작은 태종 대(1402)입니다.
- ②각지의 농법을 정리한 농사직설 간행이 세종 대입니다.
- ③초계문신제 시행은 정조 대입니다.
- ④동의보감 완성은 광해군 대(1610)입니다.
- ⑤동국여지승람 편찬은 성종 대입니다.
송파장, 산대놀이, 상평통보가 나오므로 조선 후기입니다. '적절하지 않은 것'을 고르는 문항으로, 벽란도에서 송 상인과 거래하는 모습은 고려 시대의 장면입니다.
- ①벽란도에서 송 상인과 인삼을 거래하는 모습은 고려 시대이므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 ②호랑이를 소재로 한 민화는 조선 후기에 유행했습니다.
- ③덕대가 광산 노동자를 고용해 경영한 것은 조선 후기의 모습입니다.
- ④여러 장시를 도는 보부상은 조선 후기 상업 발달을 보여줍니다.
- ⑤전기수가 소설을 읽어 주는 모습도 조선 후기의 풍경입니다.
연잉군 시절의 초상, 탕평 교서와 탕평비, 준천사 신설, 신문고 부활이 나오므로 영조입니다. 영조는 균역법을 시행해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여 백성의 군역 부담을 덜어 주었습니다.
- ①대전회통 편찬은 흥선 대원군 집권기입니다.
- ②장용영 설치는 정조입니다.
- ③공노비 6만여 명 해방은 순조 대(1801)입니다.
- ④어영청 중심의 북벌 추진은 효종입니다.
- ⑤균역법으로 군역 부담을 줄여 준 것이 영조입니다.
은대(銀臺)라는 별칭을 쓰고 도승지가 총괄하는 (가) 관서는 승정원입니다. 승정원은 왕의 비서 기관으로 왕명의 출납을 담당했고 그 기록이 승정원일기입니다.
- ①수도의 행정과 치안을 맡은 기구는 한성부입니다.
- ②재상들이 모여 국정을 총괄한 기구는 의정부입니다.
- ③반역죄·강상죄 등 중죄인을 다스린 기구는 의금부입니다.
- ④왕명 출납을 담당한 왕의 비서 기관이 승정원입니다.
- ⑤외적 침입에 대비한 임시 기구로 설치된 것은 비변사입니다.
효종과 효종비의 국상 때 자의 대비의 복상 기간을 두고 송준길·허목 등이 맞선 예송은 현종 대(1659 기해예송, 1674 갑인예송)의 일입니다. 연표에서 인조반정(1623)과 경신환국(1680) 사이인 (라)에 해당합니다.
- ①계유정난(1453)~중종반정(1506) 사이입니다.
- ②중종반정(1506)~을사사화(1545) 사이입니다.
- ③을사사화(1545)~인조반정(1623) 사이입니다.
- ④인조반정(1623)~경신환국(1680) 사이로, 현종 대 예송이 여기에 들어갑니다.
- ⑤경신환국(1680)~이인좌의 난(1728) 사이입니다.
태조 이성계가 개경에 처음 세웠다가 한양 천도 후 지금 자리에 지었고 사직과 더불어 왕조 국가를 상징한 (가)는 종묘입니다. 종묘 정전에는 역대 국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셔져 있습니다.
- ①경내에 조선 총독부 청사가 세워진 곳은 경복궁입니다.
- ②역대 국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곳이 종묘입니다.
- ③대성전과 명륜당으로 구성된 곳은 성균관(향교)입니다.
- ④일제 강점기에 창경원으로 격하된 곳은 창경궁입니다.
- ⑤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공간은 사직단입니다.
연행사를 수행해 통역을 맡고 변승업처럼 교역으로 큰 부를 쌓기도 한 신분은 중인인 역관입니다. 역관은 사역원에서 노걸대언해 같은 외국어 교재로 교육받고 시험을 거쳐 뽑혔습니다.
- ①사간원에서 간쟁을 담당한 것은 양반 관료입니다.
- ②매매·상속·증여의 대상이 된 신분은 노비입니다.
- ③수군·봉수 등 천역에 종사한 것은 신량역천 계층입니다.
- ④수령을 보좌하며 향촌 실무를 맡은 것은 향리입니다.
- ⑤사역원에서 노걸대언해 같은 교재로 교육받은 것이 역관입니다.
송악·개주라는 옛 이름과 궁성(만월대)이 나오므로 이 도시는 개성입니다. '적절하지 않은 것'을 고르는 문항으로, 강주룡이 지붕 위에서 고공 농성을 벌인 을밀대는 평양에 있습니다.
- ①고려 태조 왕건이 도읍으로 삼은 곳이 개성입니다.
- ②원의 영향을 받은 경천사지 십층 석탑은 개성에 세워졌습니다.
- ③조선 후기 송상은 개성을 근거지로 전국에서 활동했습니다.
- ④강주룡의 을밀대 고공 농성은 평양에서 있었던 일이므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 ⑤개성은 38도선 이남이었다가 정전 협정으로 북한 지역이 되었습니다.
운요호 사건을 두고 구로다 기요타카와 신헌이 마주한 회담의 결과는 1876년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입니다. 조선의 해안 측량권을 일본에 내준 불평등 조항이 대표적입니다.
- ①천주교 포교가 허용된 것은 1886년 조프 수호 통상 조약입니다.
- ②갑신정변의 영향으로 체결된 것은 한성 조약·톈진 조약입니다.
- ③일본의 해안 측량권을 인정한 것이 강화도 조약입니다.
- ④통신사 파견은 조선 전기부터 이어진 일로 이 조약과 무관합니다.
- ⑤외국 상인의 내지 통상권을 처음 규정한 것은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입니다.
31번동학 농민 운동과 갑오개혁기의 전개
정답 ① · 2점(가) 이용태를 고부 안핵사로 임명한 1894년 2~3월 → (나) 일본의 경복궁 침범 뒤 전봉준의 재봉기 통문(1894년 9월) → (다) 시모노세키 조약 이후 독립을 내세운 선언(1895년) 순입니다.
- ①(가) 고부 안핵사 이용태 → (나) 일본의 경복궁 침범과 2차 봉기 → (다) 시모노세키 조약 이후 순이 맞습니다.
- ②(가)-(다)-(나) 순은 아닙니다.
- ③(나)-(가)-(다) 순은 아닙니다.
- ④(나)-(다)-(가) 순은 아닙니다.
- ⑤(다)-(나)-(가) 순은 아닙니다.
#고부 민란#이용태#경복궁 침범#제2차 봉기#시모노세키 조약 32번두모진 해관 수세 사건의 시기
정답 ② · 3점부산 두모진에 해관을 두고 조선 상인에게 세금을 걷다가 일본의 반발로 3개월 만에 중단된 사건은 1878년의 일입니다. 연표에서 제1차 수신사 파견(1876)과 영국의 거문도 점령(1885) 사이인 (나)에 해당합니다.
- ①척화비 건립(1871)~제1차 수신사 파견(1876) 사이입니다.
- ②제1차 수신사 파견(1876)~거문도 점령(1885) 사이로, 1878년 두모진 수세가 여기에 들어갑니다.
- ③거문도 점령(1885)~함경도 방곡령 선포(1889) 사이입니다.
- ④함경도 방곡령(1889)~청일 전쟁 발발(1894) 사이입니다.
- ⑤청일 전쟁(1894)~러일 전쟁 발발(1904) 사이입니다.
#두모진 해관#무관세 무역#조일 무역 규칙#1878년
미국 공사 부임에 대한 답례로 1883년 미국에 건너가 뉴욕·보스턴 등을 시찰한 (가) 사절단은 보빙사입니다. 전권대신 민영익을 비롯해 홍영식·서광범·유길준 등이 참여했습니다.
- ①에도 막부의 요청으로 파견된 것은 조선 전기·후기의 통신사입니다.
- ②별기군 창설을 건의한 것은 일본에 다녀온 조사 시찰단·수신사 계열의 활동입니다.
- ③조선책략을 들여온 것은 제2차 수신사 김홍집입니다.
- ④기기국에서 무기 제조 기술을 익히고 온 것은 청에 파견된 영선사입니다.
- ⑤전권대신 민영익과 홍영식·서광범 등으로 구성된 것이 보빙사입니다.
34번민족 말살 통치기의 정책
정답 ⑤ · 1점중일 전쟁(1937) 이후 실시된 식민 통치 정책을 묻습니다. 일제는 1938년 국가 총동원법을 제정하고 조선에도 적용해 인력과 물자를 전쟁에 동원했습니다.
- ①치안 유지법 제정은 1925년으로 문화 통치기입니다.
- ②조선 태형령은 1912년 무단 통치기의 법령입니다.
- ③제1차 조선 교육령은 1911년에 제정되었습니다.
- ④경성 제국 대학 설립은 1924년의 일입니다.
- ⑤국가 총동원법 제정과 조선 시행이 중일 전쟁 이후의 정책입니다.
고종의 장례식을 계기로 전국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를 보도한 자료이므로 3·1 운동입니다. '옳지 않은 것'을 고르는 문항으로, 신간회가 진상 조사단을 파견한 것은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입니다.
- ①3·1 운동은 중국의 5·4 운동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 ②3·1 운동을 계기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 ③신간회의 진상 조사단 파견은 광주 학생 항일 운동 때이므로 옳지 않습니다.
- ④필라델피아 한인 자유 대회 등 국외로도 확산되었습니다.
- ⑤시위가 이어지며 평화적 만세에서 무력 투쟁으로 번진 사례가 늘었습니다.
안창호·양기탁 등이 중심이 된 비밀 결사이고 태극 서관을 운영한 (가)는 신민회입니다. 신민회는 1911년 일제가 조작한 105인 사건으로 조직이 드러나 해체되었습니다.
- ①복벽주의를 표방한 단체는 독립 의군부입니다.
- ②13도 창의군을 결성한 것은 정미의병 세력입니다.
- ③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저지한 단체는 보안회입니다.
- ④배재 학당을 세운 것은 미국 선교사 아펜젤러입니다.
- ⑤105인 사건으로 해체된 것이 신민회입니다.
석조전을 짓게 하고 황제권 강화를 내세우다 강제 퇴위당한 고종의 개혁이므로 대한 제국의 광무개혁입니다. 상공 학교 등 실업 교육 실시(ㄷ)와 지계아문을 통한 지계 발급(ㄹ)이 이에 해당합니다.
- ①ㄱ(박문국·한성순보)은 1883년, ㄴ(통리기무아문)은 1880년으로 모두 광무개혁 이전입니다.
- ②ㄱ은 1883년의 일이라 광무개혁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 ③ㄴ 통리기무아문 설치는 1880년으로 광무개혁이 아닙니다.
- ④ㄴ은 개항 직후의 개화 정책이라 광무개혁으로 볼 수 없습니다.
- ⑤ㄷ 관립 상공 학교 설립과 ㄹ 지계아문의 지계 발급이 광무개혁의 내용입니다.
3·1 운동으로 표명된 민족의 통일을 바탕으로 독립운동의 방침을 새로 세우겠다는 선언이므로 1923년 상하이에서 열린 국민대표 회의입니다. 이 회의에서 임시 정부를 없애고 새 정부를 세우자는 창조파와 조직을 고쳐 쓰자는 개조파가 맞서 결렬되었습니다.
- ①창조파와 개조파가 대립한 것이 국민대표 회의입니다.
- ②대일 선전 성명서 공표는 1941년 임시 정부의 일입니다.
- ③삼균주의에 기초한 건국 강령 발표는 1941년입니다.
- ④파리 강화 회의에 김규식을 파견한 것은 1919년 신한청년당입니다.
- ⑤한국광복군 창설은 1940년 충칭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수리 조합비와 개량 종자 구입비 부담, 만주 잡곡 유입, 소작농 전락이 나오므로 '이 계획'은 1920년부터 시행된 산미 증식 계획입니다. 일본 내 쌀 부족(쌀 소동)을 조선의 쌀로 메우려는 정책이었습니다.
- ①독립 협회 결성(1896)은 이 계획보다 훨씬 앞선 일입니다.
- ②국채 보상 운동(1907)의 배경은 일본의 차관 도입입니다.
- ③재정 고문 메가타가 주도한 것은 1905년 화폐 정리 사업입니다.
- ④토지 조사 사업(1910~1918)은 산미 증식 계획보다 먼저 시행되었습니다.
- ⑤일본의 쌀 부족을 해결하려 시행한 것이 산미 증식 계획입니다.
김좌진이 지휘했고 청산리 전투에 참가한 (가) 부대는 북로 군정서입니다. 북로 군정서는 대종교 계열의 중광단이 발전해 조직된 부대입니다.
- ①대전자령 전투를 이끈 부대는 지청천의 한국 독립군입니다.
- ②영릉가 전투에서 승리한 부대는 양세봉의 조선 혁명군입니다.
- ③동북 항일 연군으로 개편된 것은 만주의 항일 유격대입니다.
- ④중광단을 중심으로 조직된 것이 북로 군정서입니다.
- ⑤인도·미얀마 전선에 파견된 부대는 한국광복군입니다.
1925년 백정에 대한 차별 철폐를 내걸고 저울처럼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는 운동이므로 형평 운동입니다. 1923년 진주에서 조직된 조선 형평사가 주도했습니다.
- ①조선 형평사의 주도로 전개된 것이 형평 운동입니다.
- ②대한매일신보의 지원을 받은 것은 국채 보상 운동입니다.
- ③평양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퍼진 것은 물산 장려 운동입니다.
- ④순종의 인산일에 맞춰 시위를 계획한 것은 6·10 만세 운동입니다.
- ⑤라이징 선 석유 회사 사건에서 비롯된 것은 원산 총파업입니다.
42번6·25 전쟁 서울 수복 이후의 상황
정답 ④ · 2점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 이후의 일을 묻는데 '적절하지 않은 것'을 고르는 문항입니다. 인천 상륙 작전은 9월 15일로 서울 수복보다 앞선 일입니다.
- ①반공 포로 석방은 1953년 6월의 일입니다.
- ②한미 상호 방위 조약은 1953년 10월에 체결되었습니다.
- ③흥남 철수는 1950년 12월 중국군 개입 이후의 일입니다.
- ④인천 상륙 작전은 서울 수복 이전(9월 15일)이므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 ⑤발췌 개헌안 통과는 1952년 부산 정치 파동 때의 일입니다.
43번김대중 정부의 통일 정책
정답 ④ · 1점국가 인권 위원회 설립, 최초의 남북 정상 회담, 노벨 평화상 수상, 2002 한일 월드컵이 나오므로 (가)는 김대중 정부입니다. 2000년 남북 정상 회담에서 6·15 남북 공동 선언을 채택했습니다.
- ①남북 기본 합의서 서명은 노태우 정부(1991)입니다.
- ②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은 노태우 정부(1991)입니다.
- ③7·4 남북 공동 성명 발표는 박정희 정부(1972)입니다.
- ④6·15 남북 공동 선언을 채택한 것이 김대중 정부입니다.
- ⑤남북 이산가족 고향 방문 최초 실현은 전두환 정부(1985)입니다.
3·15 부정 선거에 항거해 일어나 이승만의 장기 독재를 끝낸 (가)는 4·19 혁명입니다. 이승만 하야 후 허정 과도 정부를 거쳐 내각 책임제 개헌이 이루어지고 장면 내각이 출범했습니다.
- ①긴급 조치 철폐 요구는 유신 체제에 맞선 민주화 운동입니다.
- ②장면 내각 출범의 배경이 된 것이 4·19 혁명입니다.
- ③전남 도청에서 시민군이 계엄군과 맞선 것은 5·18 민주화 운동입니다.
- ④개헌 청원 100만인 서명 운동은 1973년 유신 반대 운동입니다.
- ⑤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낸 것은 6월 민주 항쟁입니다.
45번박정희 정부 시기의 경제
정답 ② · 3점YH 무역 여성 노동자들의 신민당사 농성과 김경숙의 사망은 1979년 박정희 정부 말기의 일입니다. 이 정부 시기인 1977년에 연간 수출액 100억 달러를 달성했습니다.
- ①금융 실명제 실시는 김영삼 정부(1993)입니다.
- ②연간 수출액 100억 달러 달성(1977)이 박정희 정부 시기의 일입니다.
- ③개성 공단 의류 생산 시작은 노무현 정부(2004)입니다.
- ④칠레와의 자유 무역 협정 체결은 노무현 정부(2004)입니다.
- ⑤3저 호황은 전두환 정부 후반기(1986~1988)의 일입니다.
46번전두환 정부 시기의 사회
정답 ④ · 2점야간 통행 금지 해제, 프로 야구·프로 축구 출범, 해외여행 자유화, 삼청 교육대가 나오므로 전두환 정부입니다. 전두환 정부는 보도 지침을 내려 언론 보도를 통제했습니다.
- ①금강산 관광 시작은 김대중 정부(1998)입니다.
- ②서울 올림픽 개최는 노태우 정부 시기인 1988년입니다.
- ③삼풍 백화점 붕괴는 김영삼 정부(1995)입니다.
- ④보도 지침으로 언론을 통제한 것이 전두환 정부입니다.
- ⑤호주제 폐지는 노무현 정부 때 결정되었습니다.
호가 몽양이고 신한 청년당을 조직했으며 1945년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를 결성한 인물은 여운형입니다. 광복 후 그는 김규식과 함께 좌우 합작 위원회를 만들어 좌우 합작 운동을 폈습니다.
- ①한국 민주당 창당은 송진우·김성수 등 우익 인사들입니다.
- ②여운형은 1947년 암살되어 5·10 총선거에 출마하지 못했습니다.
- ③단독 정부 수립을 주장한 인물은 이승만입니다.
- ④조선 혁명 선언을 쓴 인물은 신채호입니다.
- ⑤김규식과 좌우 합작 위원회를 조직한 것이 여운형입니다.
부여 쌍북리 구구단 목간처럼 삼국 시대 사람들의 학습 활동을 보여 주는 사례를 묻습니다. 고구려에서는 지방에 경당을 두어 청소년들이 글을 읽고 활쏘기를 배웠습니다.
- ①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선사 시대의 유적입니다.
- ②이제현의 만권당 교류는 고려 후기 원 간섭기의 일입니다.
- ③경당에서 책을 읽고 활쏘기를 배운 것이 삼국 시대(고구려)입니다.
- ④사개치부법은 조선 후기 개성 상인의 회계법입니다.
- ⑤정혜공주 묘지석은 발해의 유물입니다.
'옳지 않은 것'을 고르는 문항입니다. (다)는 회색 태토에 백토를 분장한 분청사기 설명인데, ③ 사진은 붉은 갈색 바탕에 검은 무늬가 그려진 토기라 분청사기로 볼 수 없습니다.
- ①(가) 백자 달항아리 사진으로, 태토와 유약이 모두 백색인 백자 설명과 맞습니다.
- ②(나) 청자 오리 모양 연적 사진으로, 비색을 말한 고려청자 설명과 맞습니다.
- ③(다) 분청사기라고 했지만 사진은 검은 무늬를 그린 토기라 연결이 옳지 않습니다.
- ④(라) 청화 백자 사진으로, 코발트 안료로 그림을 그린 자기 설명과 맞습니다.
- ⑤(마) 청자 상감 무늬 매병 사진으로, 무늬를 파고 백토·자토를 넣은 상감 청자 설명과 맞습니다.
근로 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목숨을 던진 사건은 1970년 전태일 분신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평화 시장 노동자들이 청계 피복 노동 조합을 결성하며 노동 운동이 본격화되었습니다.
- ①신한 공사 설립(1946)은 미군정기의 일입니다.
- ②조선 방직 총파업은 1951~1952년의 일입니다.
- ③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은 1962년에 시작되었습니다.
- ④삼백 산업 발달은 1950년대 원조 경제의 모습입니다.
- ⑤청계 피복 노동 조합 결성이 전태일 분신의 영향으로 이루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