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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삼동 패총에서 출토된 빗살무늬 토기, 농경과 목축의 시작, 식량 저장과 조리를 위한 토기 제작은 모두 신석기 시대의 특징입니다. 따라서 (가)는 신석기 시대입니다.
- ①반달 돌칼로 벼를 수확한 것은 청동기 시대입니다.
- ②동굴이나 강가의 막집 거주는 구석기 시대입니다.
- ③가락바퀴와 뼈바늘로 옷을 지어 입은 것이 신석기 시대의 모습입니다.
- ④고인돌 축조는 계급이 발생한 청동기 시대입니다.
- ⑤주먹도끼·찍개 등 뗀석기를 처음 만든 것은 구석기 시대입니다.
조선 후기 김정희가 금석과안록에서 순수비임을 고증한 비석은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이므로 '이 왕'은 진흥왕입니다. 진흥왕은 대아찬 거칠부에게 명하여 역사서인 국사를 편찬하게 했습니다.
- ①관료전 지급과 녹읍 폐지는 신문왕의 정책입니다.
- ②독서삼품과 실시는 원성왕입니다.
- ③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를 공인한 왕은 법흥왕입니다.
- ④지방관 감찰을 위한 외사정 파견은 문무왕입니다.
- ⑤거칠부에게 국사를 편찬하게 한 것이 진흥왕입니다.
후·읍군·삼로가 있고 10월에 무천을 연 (가)는 동예, 5월에 씨뿌리기를 마치고 제사를 지내며 천군이 소도를 주관한 (나)는 삼한입니다. ㄴ. 동예에는 읍락 간 경계를 중시한 책화가 있었고, ㄷ. 삼한에는 신지·읍차 등의 지배자가 있었습니다.
- ①ㄱ이 틀렸습니다. 민며느리제는 옥저의 혼인 풍습입니다.
- ②ㄱ이 틀렸습니다.
- ③ㄴ과 ㄷ이 옳습니다.
- ④ㄹ이 틀렸습니다. 사출도는 부여에서 여러 가(加)들이 주관한 것입니다.
- ⑤ㄹ이 틀렸습니다.
동성왕을 시해한 백가를 처단하고,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했으며, 공주 왕릉원에 안장된 (가)는 무령왕입니다. 무령왕은 중국 남조의 양에 사신을 보내 외교 관계를 강화했습니다.
- ①금마저에 미륵사를 창건한 왕은 무왕입니다.
- ②윤충을 보내 대야성을 함락한 왕은 의자왕입니다.
- ③평양성을 공격해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왕은 근초고왕입니다.
- ④진흥왕과 연합해 한강 하류를 되찾은 왕은 성왕입니다.
- ⑤남조의 양과 외교 관계를 강화한 것이 무령왕입니다.
5번살수 대첩과 안시성 싸움 사이의 사실
정답 ③ · 2점(가)는 을지문덕이 우중문에게 시를 보낸 살수 대첩(612), (나)는 당 태종의 공격을 막아 낸 안시성 싸움(645)입니다. 그 사이인 642년에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 ①관구검의 환도성 공격은 3세기 동천왕 때의 일입니다.
- ②계백의 황산벌 항전은 660년으로 (나) 이후입니다.
- ③연개소문의 정변(642)이 두 사건 사이의 일입니다.
- ④광개토 대왕의 왜 격퇴는 400년 무렵으로 (가) 이전입니다.
- ⑤미천왕의 낙랑군 축출은 313년으로 (가) 이전입니다.
6번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
정답 ② · 2점경상남도 의령에서 출토되어 1964년 국보로 지정되었고, 고구려 승려들이 만든 천불 중 하나이며 광배 뒷면에 '연가(延嘉)'라는 고구려 연호가 새겨진 문화유산은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입니다.
- ①화염 무늬 광배를 두른 금동 여래 좌상으로 연가 7년명 여래 입상이 아닙니다.
- ②광배에 연가 7년명이 새겨진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으로 고구려의 문화유산입니다.
- ③보관을 쓰고 선 금동 보살 입상으로 연가 7년명 여래 입상이 아닙니다.
- ④뚫새김 광배를 갖춘 금동 삼존 불상으로 연가 7년명 여래 입상이 아닙니다.
- ⑤두 부처가 나란히 앉은 이불병좌상으로 발해의 문화유산입니다.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고구려#의령#연가#천불 7번백제·고구려 부흥 운동과 나당 전쟁의 순서
정답 ④ · 3점(나) 흑치상지가 복신과 호응한 백제 부흥 운동(660~661) → (다) 검모잠이 안승을 왕으로 세운 고구려 부흥 운동(670) → (가) 사찬 시득이 설인귀를 물리친 기벌포 전투(676) 순입니다.
- ①(가) 기벌포 전투가 가장 나중의 일이라 순서가 맞지 않습니다.
- ②(가)가 맨 앞에 올 수 없습니다.
- ③(가)는 (다)보다 나중의 일입니다.
- ④(나) 백제 부흥 운동 – (다) 고구려 부흥 운동 – (가) 기벌포 전투 순으로 맞습니다.
- ⑤(다)가 (나)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일본 도다이사 쇼소인에서 발견되었고 서원경 주변 4개 촌락의 인구와 토지를 기록한 문서는 신라 촌락 문서(민정문서)이므로 (가)는 통일 신라입니다. 통일 신라는 수도에 동시 외에 서시와 남시를 추가로 설치했습니다.
- ①경성과 경원의 무역소는 조선 세종 때 여진과의 교역을 위해 둔 것입니다.
- ②수도에 서시와 남시를 설치한 것이 통일 신라입니다.
- ③주전도감의 해동통보 발행은 고려 숙종 때입니다.
- ④독점적 도매상인인 도고의 출현은 조선 후기입니다.
- ⑤감자·고구마를 구황 작물로 재배한 것은 조선 후기입니다.
최치원의 사불허북국거상표에서 '북국'으로 표현되었고, 걸사비우·대조영이 세워 진국이라 칭한 (가)는 발해입니다. 발해는 서적 관리와 주요 문서 작성을 맡은 문적원을 두었습니다.
- ①정사암 회의에서 국가 중대사를 정한 나라는 백제입니다.
- ②욕살·처려근지 등의 지방관을 둔 나라는 고구려입니다.
- ③도병마사에서 국방 문제를 논의한 나라는 고려입니다.
- ④서적 관리와 문서 작성을 위해 문적원을 둔 나라가 발해입니다.
- ⑤골품에 따라 관등 승진과 일상생활을 제한한 나라는 신라입니다.
논산 개태사는 후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이 이를 기념해 세운 사찰이므로 (가)는 태조입니다. 태조는 후대 왕들이 지켜야 할 정책 방향을 담은 훈요 10조를 남겼습니다.
- ①관학 진흥을 위해 양현고를 설치한 왕은 예종입니다.
- ②쌍기의 건의로 과거제를 시행한 왕은 광종입니다.
- ③전국에 12목을 설치하고 지방관을 파견한 왕은 성종입니다.
- ④전시과를 처음 마련한 왕은 경종입니다.
- ⑤훈요 10조를 남긴 것이 태조 왕건입니다.
광종 때 서도로 고쳐 부르고, 목종 때 호경으로 개칭했으며, 조위총이 유수로서 반란을 일으키고, 원종 때 동녕부가 설치된 지역은 서경(평양)입니다. 서경에서는 묘청이 반란을 일으켜 국호를 대위라 했습니다.
- ①정몽주가 피살된 곳은 개경의 선죽교입니다.
- ②묘청이 국호를 대위라 하며 반란을 일으킨 곳이 서경입니다.
- ③몽골 침략으로 황룡사 구층 목탑이 소실된 곳은 경주입니다.
- ④직지심체요절이 간행된 흥덕사는 청주에 있었습니다.
- ⑤정서가 정과정을 지은 유배지는 동래입니다.
은 한 근으로 만든 화폐 은병(활구)과 도평의사사가 등장하는 자료의 국가는 고려입니다. 고려는 개경에 서적점·다점 등 관영 상점을 두어 운영했습니다.
- ①솔빈부의 말을 특산물로 수출한 나라는 발해입니다.
- ②서적점·다점 등 관영 상점을 운영한 나라가 고려입니다.
- ③청해진을 중심으로 해상 무역을 전개한 것은 통일 신라 장보고입니다.
- ④광산을 전문적으로 경영하는 덕대의 활동은 조선 후기입니다.
- ⑤기유약조를 맺어 일본과 교역을 재개한 것은 조선 광해군 때입니다.
13번여진에 대한 고려의 대응
정답 ⑤ · 2점윤관을 원수, 오연총을 부원수로 삼아 출병한 대상이므로 (가)는 여진입니다. 윤관은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을 정벌한 뒤 동북 9성을 쌓고 경계를 알리는 비석을 세웠습니다.
- ①광군 창설은 거란의 침입에 대비한 정종 때의 조치입니다.
- ②박위를 파견해 근거지를 토벌한 것은 왜구(쓰시마섬)에 대한 대응입니다.
- ③강화도 천도는 몽골의 침입에 맞선 대응입니다.
- ④낙타를 만부교에서 굶어 죽게 한 것은 거란에 대한 태조의 강경책입니다.
- ⑤동북 9성을 설치하고 비석을 세운 것이 여진에 대한 대응입니다.
14번무신 집권기의 하층민 봉기
정답 ⑤ · 1점운문의 김사미와 초전의 효심이 일으킨 봉기, 이연년 형제의 봉기는 모두 무신 집권기에 일어난 하층민의 반란입니다. 따라서 그 배경을 파악하는 탐구 활동이 적절합니다.
- ①노비안검법은 고려 광종의 정책입니다.
- ②삼정이정청은 1862년 임술 농민 봉기의 수습책입니다.
- ③사심관 제도는 고려 태조의 호족 통제책입니다.
- ④집강소는 동학 농민 운동 때 설치된 자치 기구입니다.
- ⑤무신 집권기 하층민 반란의 배경을 파악하는 것이 알맞습니다.
조일신이 기철·기륜 등 부원 세력 제거를 모의하다 왕이 있던 궁궐을 포위한 사건은 1352년 공민왕 때의 조일신의 난입니다. 개경 환도(1270)와 고려 멸망(1392) 사이인 (마) 시기에 해당합니다.
- ①(가)는 918~1009년으로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 ②(나)는 1009~1126년으로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 ③(다)는 1126~1198년으로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 ④(라)는 1198~1270년으로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 ⑤1352년에 일어났으므로 (마) 시기가 맞습니다.
신안공 왕전이 몽골의 침략을 받던 시기에 발원한 법화경 서탑도는 고려의 문화유산이므로 '국가'는 고려입니다. 백제 금동 대향로는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된 백제의 문화유산이라 고려의 것이 아닙니다.
- ①백제 금동 대향로로 백제의 문화유산이라 고려의 것이 아닙니다.
- ②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으로 고려의 문화유산입니다.
- ③청자 투각 칠보 무늬 향로로 고려의 문화유산입니다.
- ④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 석탑으로 고려의 문화유산입니다.
- ⑤물가 풍경을 은으로 새긴 청동 은입사 정병으로 고려의 문화유산입니다.
17번몽골 침입과 원 간섭기 사이의 사실
정답 ③ · 3점(가)는 살리타가 무리한 공물을 요구한 몽골의 침입 시기(1231), (나)는 충렬왕 때 제국 대장 공주의 겁령구가 사패를 받아 문제가 된 원 간섭기입니다. 그 사이인 1273년에 김방경의 군대가 탐라에서 삼별초를 진압했습니다.
- ①신숭겸의 공산 전투 전사는 927년으로 (가) 이전입니다.
- ②최승로의 시무 28조는 982년으로 (가) 이전입니다.
- ③김방경의 삼별초 진압(1273)이 두 시기 사이의 일입니다.
- ④강감찬의 개경 나성 축조 건의는 거란 침입 직후로 (가) 이전입니다.
- ⑤경대승이 정중부를 제거한 것은 1179년으로 (가) 이전입니다.
명의 철령위 설치에 반발해 팔도도통사로서 요동 정벌을 추진했고,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잡은 이성계에게 죽임을 당한 (가)는 최영입니다. 최영은 홍산 전투에서 왜구를 크게 물리쳤습니다.
- ①홍산 전투에서 왜구를 물리친 것이 최영입니다.
- ②화통도감 설치를 건의한 인물은 최무선입니다.
- ③정변을 일으켜 목종을 폐위한 인물은 강조입니다.
- ④의종 복위를 도모해 군사를 일으킨 인물은 김보당입니다.
- ⑤교정별감이 되어 국정을 장악한 인물은 최충헌입니다.
양역의 2필을 1필로 줄인 뒤 부족한 재원을 메울 방법을 찾는 자료이므로 '대책'은 균역법 시행에 따른 재정 보충책입니다. 그 하나로 일부 상류층에게 선무군관이라는 칭호를 주고 선무군관포를 거두었습니다.
- ①공인의 등장은 대동법 시행의 결과입니다.
- ②당백전 발행은 흥선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과 관련됩니다.
- ③선무군관포 징수가 균역법의 재정 보충책입니다.
- ④토산물을 쌀·동전 등으로 납부하게 한 것은 대동법입니다.
- ⑤전세를 풍흉에 따라 9등급으로 나눈 것은 세종의 연분 9등법입니다.
대사헌을 수장으로 하고 관리의 위법 사항을 규찰한 감찰이 소속된 (가)는 사헌부입니다. 사헌부는 사간원과 함께 5품 이하 관리의 임명 과정에서 서경권을 행사했습니다.
- ①수도의 행정과 치안을 담당한 기구는 한성부입니다.
- ②왕명 출납을 맡은 왕의 비서 기관은 승정원입니다.
- ③경연을 주관한 기구는 홍문관입니다.
- ④역사서를 편찬하고 사고에 보관한 기구는 춘추관입니다.
- ⑤5품 이하 관리 임명에 서경권을 행사한 것이 사헌부입니다.
호가 정암이고 소격서 폐지와 반정 공신의 위훈 삭제를 주장하다 사사되었으며 심곡 서원에 배향된 인물은 조광조입니다. 조광조는 소학 보급과 현량과 실시를 주장했습니다.
- ①성학집요를 지어 바친 인물은 이이입니다.
- ②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사초에 넣은 인물은 김일손입니다.
- ③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을 세운 인물은 주세붕입니다.
- ④소학 보급과 현량과 실시를 주장한 것이 조광조입니다.
- ⑤조선경국전을 저술한 인물은 정도전입니다.
영창 대군을 죽이고 인목 대비를 폐위했으며 후금과의 관계 악화를 피하려는 중립 외교를 편 '이 왕'은 광해군입니다. 광해군은 임진왜란의 피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허준의 동의보감을 간행했습니다.
- ①6조 직계제를 처음 실시한 왕은 태종입니다.
- ②학문 연구 기관으로 집현전을 둔 왕은 세종입니다.
- ③전란의 피해를 복구하며 동의보감을 간행한 것이 광해군입니다.
- ④동국문헌비고를 편찬한 왕은 영조입니다.
- ⑤신해통공을 단행한 왕은 정조입니다.
강화도가 함락되고 국왕이 삼전도에서 항복하며 끝난 '이 전쟁'은 병자호란입니다. 그 뒤 효종 때 이완 등을 중심으로 청을 정벌하자는 북벌이 추진되었습니다.
- ①이완 등을 중심으로 북벌이 추진된 것이 병자호란의 영향입니다.
- ②김종서의 6진 개척은 세종 때의 일입니다.
- ③이종무의 쓰시마섬 정벌은 세종 때 왜구에 대한 대응입니다.
- ④강홍립의 사르후 전투 참전은 광해군 때로 병자호란 이전입니다.
- ⑤비변사가 처음 설치된 것은 중종 때 삼포왜란을 계기로 한 일입니다.
수신전·휼양전을 없애고 현직 관리에게만 토지를 주는 직전법을 시행한 (가)는 세조입니다. 세조 때에는 불교 경전을 간행하는 간경도감이 설치되었습니다.
- ①간경도감이 설치된 것이 세조 때입니다.
- ②악학궤범이 완성된 것은 성종 때입니다.
- ③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제작된 것은 태종 때입니다.
- ④초계문신제가 실시된 것은 정조 때입니다.
- ⑤농사직설이 편찬된 것은 세종 때입니다.
탑평리 칠층 석탑, 김윤후의 대몽 항쟁, 다인철소와 완오리 제철 유적, 신립의 탄금대 전투가 모두 있었던 (가)는 충주입니다. 충주에서는 남한에서 유일한 고구려비가 발견되었습니다.
- ①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열린 곳은 서울 덕수궁입니다.
- ②명 신종을 기리는 만동묘가 세워진 곳은 괴산 화양동입니다.
- ③강주룡이 을밀대 지붕에서 고공 농성을 벌인 곳은 평양입니다.
- ④남한에서 유일하게 고구려비가 발견된 곳이 충주입니다.
- ⑤박재혁이 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곳은 부산입니다.
26번기사환국과 갑술환국 사이
정답 ② · 3점앞 장면은 희빈 장씨의 아들을 원자로 삼은 1689년 기사환국의 배경이고, 뒤 장면은 장씨의 왕후 지위를 거둔 1694년 갑술환국입니다. 그 사이인 기사환국 과정에서 송시열이 유배된 뒤 사사되었습니다.
- ①이징옥의 난은 1453년으로 (가) 이전입니다.
- ②송시열이 유배된 뒤 사사된 것이 (가) 시기의 일입니다.
- ③자의 대비의 복상 문제로 일어난 예송은 현종 때로 (가) 이전입니다.
- ④정여립 모반 사건에서 비롯된 기축옥사는 1589년으로 (가) 이전입니다.
- ⑤탕평비 건립은 영조 때로 (가) 이후입니다.
청의 화가 나빙이 초상을 그려 주었고, 연행사의 일원으로 청을 오가며 북학의를 저술해 청의 문물 수용을 주장한 (가)는 박제가입니다. 박제가는 서얼 출신으로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에 기용되었습니다.
- ①세계 지리서인 지구전요를 저술한 인물은 최한기입니다.
- ②의산문답에서 무한 우주론을 주장한 인물은 홍대용입니다.
- ③기기도설을 참고해 거중기를 설계한 인물은 정약용입니다.
- ④서얼 출신으로 규장각 검서관에 기용된 것이 박제가입니다.
- ⑤양반전을 지어 양반을 풍자한 인물은 박지원입니다.
28번임술 농민 봉기 무렵의 사회
정답 ⑤ · 1점경상 우병사 백낙신의 탐학에 맞서 유계춘이 주도한 진주 농민 봉기는 1862년의 일입니다. 이 시기는 안동 김씨 등의 세도 정치로 매관매직이 성행하던 때였습니다.
- ①빈민 구제를 위한 흑창 설치는 고려 태조 때입니다.
- ②원종과 애노의 봉기는 신라 하대 진성 여왕 때입니다.
- ③홍건적의 침입으로 개경이 함락된 것은 고려 공민왕 때입니다.
- ④변발과 호복 유행은 고려 원 간섭기의 모습입니다.
- ⑤세도 정치로 매관매직이 성행한 것이 이 시기의 모습입니다.
강화도 전등사에 양헌수 장군의 승전비가 있는 것에서 (가)는 1866년 병인양요임을 알 수 있습니다. 프랑스군은 물러가면서 외규장각의 의궤 등 도서를 약탈해 갔습니다.
- ①운요호 사건을 빌미로 일어난 것은 강화도 조약 체결 과정입니다.
- ②왕이 공산성으로 피란한 것은 인조 때 이괄의 난입니다.
- ③전개 과정에서 외규장각 도서가 약탈된 것이 병인양요입니다.
- ④이용태가 안핵사로 파견된 것은 고부 농민 봉기 때입니다.
- ⑤황사영이 외국 군대의 출병을 요청한 것은 신유박해 때입니다.
봉급을 받지 못한 훈국(훈련도감) 군인들이 난을 일으켜 민겸호 등을 죽이고 중전이 장호원으로 피란한 사건은 1882년 임오군란입니다. 그 결과 제물포 조약이 맺어져 일본 공사관 경비를 명목으로 일본군이 주둔하게 되었습니다.
- ①강화도 조약 체결은 1876년으로 이전의 일입니다.
- ②김기수의 수신사 파견은 1876년으로 이전의 일입니다.
- ③척화비 건립은 1871년으로 이전의 일입니다.
- ④제물포 조약으로 일본군이 주둔한 것이 임오군란의 영향입니다.
- ⑤통리기무아문 설치는 1880년으로 이전의 일입니다.
김홍집을 총재로 하여 국정 전반의 개혁을 담당한 군국기무처는 제1차 갑오개혁을 추진한 기구입니다. 이 기구는 신분제의 근간인 공사 노비법 혁파를 의결했습니다.
- ①공사 노비법 혁파가 군국기무처에서 의결한 내용입니다.
- ②5군영을 2영으로 통합한 것은 1881년 개화 정책의 일환입니다.
- ③건양 연호 제정은 을미개혁 때입니다.
- ④한성 사범 학교 관제 반포는 군국기무처 폐지 뒤 제2차 갑오개혁 때입니다.
- ⑤지계아문을 두어 지계를 발급한 것은 광무개혁 때입니다.
자립과 자수를 내세우며 독립문을 세우고 황상의 지위를 높이려 한 (가)는 독립 협회입니다. 독립 협회는 중추원 개편을 통해 의회 설립을 추진했습니다.
- ①만세보를 발행한 단체는 천도교입니다.
- ②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저지한 단체는 보안회입니다.
- ③105인 사건으로 와해된 단체는 신민회입니다.
- ④중추원 개편을 통해 의회 설립을 추진한 것이 독립 협회입니다.
- ⑤독립 공채를 발행한 것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입니다.
1,300만 원의 외채를 갚기 위해 영남(대구)에서 시작되어 서울까지 확산된 이 운동은 1907년 국채 보상 운동입니다.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의 지원을 받아 전국으로 퍼졌습니다.
- ①조선 총독부의 탄압으로 실패한 것은 1910년대 이후의 운동입니다.
- ②대한매일신보 등의 지원을 받아 확산된 것이 국채 보상 운동입니다.
- ③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의 계기가 된 것은 3·1 운동입니다.
- ④백정에 대한 차별 철폐를 목적으로 한 것은 형평 운동입니다.
- ⑤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가 모금한 것은 민립 대학 설립 운동입니다.
34번고종 강제 퇴위 이후의 사실
정답 ④ · 3점황제가 황태자에게 대리를 명한 조칙 다음 날 양위식이 거행되어 사실상 퇴위당한 사건은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한 고종의 강제 퇴위입니다. 그 이후인 1909년 기유각서가 체결되어 사법권을 빼앗겼습니다.
- ①별기군 창설은 1881년으로 이전의 일입니다.
- ②묄렌도르프의 외교 고문 파견은 1882년으로 이전의 일입니다.
- ③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부임은 1906년으로 이전의 일입니다.
- ④기유각서로 사법권을 박탈당한 것이 이후의 일입니다.
- ⑤관민 공동회 개최는 1898년으로 이전의 일입니다.
'조선 사람의 자본과 기술로 된 광목'이라는 문구가 쓰인 경성 방직 주식회사의 광고에서 '이 운동'은 물산 장려 운동임을 알 수 있습니다. ㄱ. 회사령 폐지로 일본 자본의 침투가 우려된 것이 배경이 되었고, ㄷ. 1920년 평양에서 조만식 등이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 ①ㄴ이 틀렸습니다. 황국 중앙 총상회는 1898년 시전 상인들이 만든 단체입니다.
- ②ㄱ과 ㄷ이 옳습니다.
- ③ㄴ이 틀렸습니다.
- ④ㄴ과 ㄹ이 모두 틀렸습니다.
- ⑤ㄹ이 틀렸습니다. 대동 상회 등 근대적 상회사는 1880년대에 세워졌습니다.
1919년 11월 김원봉 등과 함께 조직해 일제 기관 파괴와 요인 암살을 꾀한 (가)는 의열단입니다. 의열단은 신채호가 쓴 조선 혁명 선언을 활동 지침으로 삼았습니다.
- ①조선 혁명 선언을 활동 지침으로 삼은 단체가 의열단입니다.
- ②삼균주의에 기초한 건국 강령을 발표한 것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입니다.
- ③잡지 개벽을 발행한 단체는 천도교입니다.
- ④훙커우 공원 윤봉길 의거를 계획한 단체는 한인 애국단입니다.
- ⑤조선 총독부에 국권 반환 요구서를 제출하려 한 단체는 독립 의군부입니다.
37번1920년대 민족 운동의 순서
정답 ① · 3점(가) 순종의 죽음을 계기로 한 6·10 만세 운동 격문(1926) → (나) 신간회 발기인의 강령 발표(1927) → (다) 광주 학생 항일 운동 관련 격문(1929) 순입니다.
- ①(가) 6·10 만세 운동 – (나) 신간회 – (다) 광주 학생 항일 운동 순으로 맞습니다.
- ②(다)는 (나)보다 나중의 일입니다.
- ③(나)는 (가)보다 나중의 일입니다.
- ④(나)가 가장 앞설 수 없습니다.
- ⑤(다)가 맨 앞에 올 수 없습니다.
38번민족 말살 통치기의 모습
정답 ③ · 1점국가 총동원법이 시행되던 시기는 1938년 이후의 민족 말살 통치기입니다. 이 시기 학생들은 황국 신민 서사를 암송해야 했습니다.
- ①태형을 집행하는 헌병 경찰은 1910년대 무단 통치기의 모습입니다.
- ②원산 총파업은 1929년의 일입니다.
- ③황국 신민 서사를 암송하는 학생이 이 시기의 모습입니다.
- ④경성 제국 대학 설립은 1924년의 일입니다.
- ⑤13도 창의군의 서울 진공 작전은 1908년의 일입니다.
39번신한공사 설립과 농지 개혁법 사이
정답 ④ · 3점(가)는 1946년 미군정이 세운 신한공사 관련 법령, (나)는 1949년 제정된 농지 개혁법입니다. 그 사이인 1948년 5·10 총선거로 제헌 국회가 구성되었습니다.
- ①조선 건국 동맹 결성은 1944년으로 (가) 이전입니다.
- ②한미 상호 방위 조약 체결은 1953년으로 (나) 이후입니다.
- ③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 공포는 1941년으로 (가) 이전입니다.
- ④5·10 총선거로 제헌 국회가 구성된 것이 두 시기 사이의 일입니다.
- ⑤경향신문 폐간은 1959년으로 (나) 이후입니다.
조선사회경제사를 지어 우리 역사를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 법칙에 따라 원시 씨족 사회, 삼국 정립기의 노예제 사회 등 네 단계로 파악한 인물은 백남운입니다. 이는 식민 사학의 정체성론을 반박한 것입니다.
- ①진단 학회를 조직한 인물은 이병도·손진태 등입니다.
- ②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저술한 인물은 박은식입니다.
- ③식민 사학의 정체성론을 반박한 것이 백남운입니다.
- ④우리말 큰 사전 편찬 사업을 추진한 것은 조선어 학회입니다.
- ⑤민족의 얼을 강조하며 조선학 운동을 주도한 인물은 정인보 등입니다.
#백남운#조선사회경제사#유물 사관#정체성론
중국 국민당 군사 위원회가 조선 의용대를 개편해 편입시켰고 총사령부를 충칭에 둔 (가)는 한국광복군입니다. 한국광복군은 미국 전략 정보국(OSS)과 함께 국내 정진군을 편성해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습니다.
- ①자유시 참변으로 세력이 약화된 부대는 대한 독립 군단입니다.
- ②영릉가 전투에서 승리한 부대는 조선 혁명군입니다.
- ③쌍성보 전투에서 한중 연합 작전을 편 부대는 한국 독립군입니다.
- ④국내 정진군을 편성해 국내 진공 작전을 추진한 것이 한국광복군입니다.
- ⑤청산리에서 일본군을 격퇴한 부대는 북로 군정서와 대한 독립군입니다.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되어 중국군을 상대로 장진호 전투가 벌어진 '전쟁'은 6·25 전쟁입니다. 중국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불리해지자 1950년 12월 흥남에서 대규모 철수 작전이 이루어졌습니다.
- ①애치슨 라인 발표는 1950년 1월로 전쟁 이전입니다.
- ②가쓰라·태프트 밀약은 1905년의 일입니다.
- ③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는 1945년의 일입니다.
- ④흥남 철수 작전이 이 전쟁 중의 일입니다.
- ⑤김구·김규식의 남북 협상은 1948년의 일입니다.
내각 책임제와 3·15 부정 선거 원흉 처단을 말하는 성명이므로 4·19 혁명 이후 들어선 장면 내각 시기입니다. 제2공화국은 민의원과 참의원으로 이루어진 양원제 국회를 두었습니다.
- ①국민 교육 헌장 선포는 1968년 박정희 정부 때입니다.
- ②서울 올림픽 개최는 1988년 노태우 정부 때입니다.
- ③개성 공단 착공은 2003년 노무현 정부 때입니다.
- ④함평 고구마 피해 보상 투쟁은 1976년 박정희 정부 때입니다.
- ⑤민의원과 참의원의 양원제 운영이 장면 내각 시기의 모습입니다.
44번사사오입 개헌 이후의 사실
정답 ② · 2점재적 203명의 3분의 2를 사사오입으로 135명이라 우긴 '개헌'은 1954년 사사오입 개헌입니다. 그 이후인 1959년 진보당의 당수였던 조봉암이 처형되었습니다.
- ①여수·순천 10·19 사건은 1948년으로 이전의 일입니다.
- ②진보당 당수 조봉암의 처형이 이후의 일입니다.
- ③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 설치는 1948년으로 이전의 일입니다.
- ④국회 프락치 사건은 1949년으로 이전의 일입니다.
- ⑤좌우 합작 위원회 구성은 1946년으로 이전의 일입니다.
긴급 조치를 발동할 수 있게 한 (가)는 유신 헌법이므로 1972년부터 1979년까지의 시기입니다. 1973년에는 유신 헌법을 고치자는 개헌 청원 백만인 서명 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 ①김주열의 죽음은 1960년 3·15 부정 선거 규탄 시위 때입니다.
- ②부천 경찰서 성 고문 사건은 1986년의 일입니다.
- ③개헌 청원 백만인 서명 운동이 이 시기의 일입니다.
- ④국민 보도 연맹원 학살은 1950년 6·25 전쟁 중의 일입니다.
- ⑤대학생 강경대의 희생은 1991년의 일입니다.
경부 고속 도로 개통(1970)과 포항 제철소 1기 준공(1973)은 박정희 정부의 대표적 사업입니다. 박정희 정부는 1972년부터 제3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 ①제3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추진이 박정희 정부 때입니다.
- ②미국과 자유 무역 협정(FTA)을 체결한 것은 노무현 정부입니다.
- ③대통령 긴급 명령으로 금융 실명제를 실시한 것은 김영삼 정부입니다.
- ④국제 통화 기금(IMF) 지원금을 조기 상환한 것은 김대중 정부입니다.
- ⑤최저 임금법을 제정한 것은 전두환 정부입니다.
47번군사 조직이 만들어진 순서
정답 ② · 3점(가) 적금서당·청금서당은 통일 신라 신문왕의 9서당, (나) 응양군과 상장군이 나오는 것은 고려의 2군 6위, (라) 별대와 정초군을 합쳐 만든 것은 조선 숙종 때의 금위영, (다) 무위영은 1881년 개화 정책기의 군영입니다. 따라서 (가) – (나) – (라) – (다) 순입니다.
- ①(다) 무위영이 (라) 금위영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 ②(가) 9서당 – (나) 2군 6위 – (라) 금위영 – (다) 무위영 순으로 맞습니다.
- ③(나) 2군 6위가 (가) 9서당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 ④(나)가 맨 앞에 올 수 없습니다.
- ⑤(다) 무위영이 가장 나중의 일이라 순서가 맞지 않습니다.
'왕 6년에 보덕국 사람들로 당을 만들었다'는 기록에서 9서당을 완성한 신문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신문왕은 즉위 직후 장인 김흠돌의 난을 진압하고 진골 귀족을 숙청했습니다.
- ①김흠돌의 난을 진압한 것이 신문왕입니다.
- ②병부와 상대등을 설치한 왕은 법흥왕입니다.
- ③나선 정벌에 조총 부대를 보낸 왕은 조선 효종입니다.
- ④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은 인물은 고려 태조 왕건입니다.
- ⑤쌍성총관부를 공격해 철령 이북을 되찾은 왕은 고려 공민왕입니다.
옛 전남도청 본관에서 시민군이 계엄군에 맞서 항쟁한 (가)는 1980년 5·18 민주화 운동입니다. 관련 기록물은 2011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 ①3·1 민주 구국 선언은 1976년 유신 체제에 맞선 선언입니다.
- ②이한열이 희생된 것은 1987년 6월 민주 항쟁 때입니다.
- ③'호헌 철폐, 독재 타도'는 6월 민주 항쟁의 구호입니다.
- ④허정 과도 정부가 출범한 계기는 4·19 혁명입니다.
- ⑤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된 것이 5·18 민주화 운동입니다.
군 내부의 사조직(하나회)을 해체하려는 '문민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인사 조치라는 뉴스에서 김영삼 정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김영삼 정부는 '역사 바로 세우기'를 내세워 1995년 옛 조선 총독부 건물을 철거했습니다.
- ①6·3 시위는 1964년 박정희 정부 때입니다.
- ②북방 외교로 소련과 수교한 것은 노태우 정부입니다.
- ③남북 조절 위원회 설치는 1972년 박정희 정부 때입니다.
- ④국민 기초 생활 보장법 시행은 김대중 정부 때입니다.
- ⑤옛 조선 총독부 건물을 철거한 것이 김영삼 정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