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지문과 자료 이미지는 국사편찬위원회에 저작권이 있어 이 페이지에 싣지 않았습니다. 아래 글은 이 사이트에서 직접 작성한 해설이며, 문제 원문은 제73회 문제풀이 화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송국리형 집자리와 비파형 동검, 민무늬 토기가 나온 유적이므로 '이 시대'는 청동기 시대입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반달 돌칼로 곡식의 이삭을 수확했습니다.
- ①소를 이용한 깊이갈이가 일반화된 것은 고려 시대입니다.
- ②반달 돌칼로 벼를 수확한 것이 청동기 시대입니다.
- ③동굴이나 강가의 막집에 산 것은 구석기 시대입니다.
- ④주먹도끼·찍개 등 뗀석기를 처음 제작한 것은 구석기 시대입니다.
- ⑤가락바퀴와 뼈바늘로 옷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 시대입니다.
2번연개소문 집권과 고구려 부흥 운동 사이의 사실
정답 ④ · 3점(가)는 연개소문이 정변으로 권력을 잡은 642년, (나)는 검모잠 등이 고구려 부흥 운동을 일으킨 670년 무렵입니다. 그 사이인 648년 김춘추가 당으로 건너가 나당 동맹을 성사시켰습니다.
- ①을지문덕의 살수 대첩은 612년으로 (가) 이전입니다.
- ②기벌포에서 당의 수군을 격파한 것은 676년으로 (나) 이후입니다.
- ③관구검의 침입으로 환도성이 함락된 것은 3세기 중반입니다.
- ④김춘추가 당과 군사 동맹을 맺은 648년이 두 시기 사이입니다.
- ⑤장문휴가 당의 등주를 공격한 것은 732년 발해 무왕 때입니다.
시조 이진아시왕 전설이 전하고 고령 지산동 고분군을 남긴 (가)는 대가야입니다. 대가야는 562년 신라 진흥왕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습니다.
- ①진흥왕 때 신라에 복속된 것이 대가야입니다.
- ②집사부를 비롯한 14부를 설치한 나라는 신라입니다.
- ③욕살·처려근지 등 지방 장관을 둔 나라는 고구려입니다.
- ④여러 가(加)들이 사출도를 주관한 나라는 부여입니다.
- ⑤왕족 부여씨와 8성 귀족이 지배층을 이룬 나라는 백제입니다.
삼로라는 군장이 다스리고 소금·해산물이 풍부하며 가족 공동 목곽에 뼈를 안치한 (가)는 옥저, 신지·읍차가 있고 벼농사가 발달해 5월과 10월에 제사를 지낸 (나)는 삼한입니다. 삼한에는 천군이 다스리는 신성 지역 소도가 있었습니다.
- ①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연 나라는 부여입니다.
- ②범금 8조를 만든 나라는 고조선입니다.
- ③신성 지역인 소도가 존재한 것이 (나) 삼한입니다.
- ④제가 회의에서 중대사를 결정한 나라는 고구려입니다.
- ⑤도둑질한 자에게 12배를 배상하게 한 것은 부여와 고구려의 법입니다.
박사 고흥에게 서기를 편찬하게 하고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우위를 점한 '이 왕'은 근초고왕입니다. 근초고왕은 평양성을 공격해 고구려 고국원왕을 전사시켰습니다.
- ①금마저에 미륵사를 창건한 왕은 무왕입니다.
- ②윤충을 보내 대야성을 함락한 왕은 의자왕입니다.
- ③사비로 천도하고 국호를 남부여로 고친 왕은 성왕입니다.
- ④평양성을 공격해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것이 근초고왕입니다.
- ⑤동진에서 온 마라난타를 통해 불교를 수용한 왕은 침류왕입니다.
#근초고왕#고흥#서기#평양성 공격#고국원왕 전사 영락이라는 연호를 사용하고 만주 일대로 영토를 크게 넓힌 '이 왕'은 광개토 대왕입니다. ⑤ 경주 호우총에서 나온 호우명 그릇은 바닥에 '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이라는 시호가 새겨져 있어 이 왕과 직접 연결되는 유물입니다.
- ①받침 위에 세운 돌비석으로, 이 왕의 시호가 새겨진 유물은 아닙니다.
- ②네 발로 선 짐승 모양의 조형물로, 이 왕의 시호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 ③흙으로 빚은 인물 모양 유물(토우)로, 이 왕의 시호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 ④다리와 고리가 달린 청동 그릇으로, 이 왕의 시호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 ⑤경주 호우총에서 출토된 호우명 그릇으로, 광개토 대왕의 시호가 새겨져 있습니다.
혜공왕이 피살된 뒤 왕위 쟁탈전이 이어진 신라 하대의 상황입니다. 822년 웅천주 도독 김헌창이 아버지 김주원이 왕이 되지 못한 것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 ①김흠돌의 난을 진압하고 진골 귀족을 숙청한 것은 681년 신문왕 때입니다.
- ②웅천주 도독 김헌창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 신라 하대의 사실입니다.
- ③거칠부가 국사를 편찬한 것은 진흥왕 때입니다.
- ④복신과 도침이 부여풍을 왕으로 추대한 것은 백제 부흥 운동입니다.
- ⑤황룡사 구층 목탑을 세운 것은 선덕 여왕 때입니다.
8번발해 — 옳지 않은 것 고르기
정답 ⑤ · 2점상경 용천부 등 5경, 영광탑, 이불병좌상이 소개된 (가)는 발해입니다. ⑤ 내신좌평·내두좌평 등 6좌평의 관제를 마련한 나라는 백제이므로 발해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습니다.
- ①교육 기관으로 주자감을 설립한 것은 발해가 맞습니다.
- ②감찰 기구로 중정대를 둔 것은 발해가 맞습니다.
- ③인안·대흥 등 독자적 연호를 사용한 것은 발해가 맞습니다.
- ④거란도·영주도 등으로 주변국과 교역한 것은 발해가 맞습니다.
- ⑤6좌평의 관제를 마련한 나라는 백제이므로 발해와 맞지 않습니다.
풍월주·국선으로 불린 우두머리와 설원랑 등의 이야기는 신라 화랑도에 관한 것이므로 '이 나라'는 신라입니다. 신라에는 골품에 따라 관등 승진과 일상생활까지 제한한 골품제가 있었습니다.
- ①태학과 경당을 두어 인재를 양성한 나라는 고구려입니다.
- ②유랑민을 구휼하는 활인서를 설치한 나라는 조선입니다.
- ③정사암 회의에서 국가 중대사를 결정한 나라는 백제입니다.
- ④도병마사에서 변경의 군사 문제를 논의한 나라는 고려입니다.
- ⑤골품에 따라 관등 승진과 일상생활을 제한한 것이 신라입니다.
국호를 태봉으로 고치고 정개라는 연호를 사용한 (가)는 궁예입니다. 궁예는 국정을 총괄하는 광평성을 비롯한 여러 정치 기구를 마련했습니다.
- ①경순왕 김부를 경주의 사심관으로 삼은 인물은 왕건입니다.
- ②전국에 12목을 설치한 왕은 고려 성종입니다.
- ③정치도감을 두어 개혁을 시도한 왕은 고려 충목왕입니다.
- ④광평성 등 각종 정치 기구를 마련한 것이 궁예입니다.
- ⑤오월에 사신을 보내 검교태보의 직을 받은 인물은 견훤입니다.
고창 전투에서 승리한 뒤 그 지역을 안동부로 승격하고 김선평·권행·장길을 삼태사로 예우한 '왕'은 태조 왕건입니다. 태조는 관리의 규범을 제시하고자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었습니다.
- ①한양을 남경으로 승격한 것은 문종 때입니다.
- ②해동통보를 발행한 것은 숙종 때입니다.
- ③쌍기의 건의로 과거제를 도입한 왕은 광종입니다.
- ④청연각과 보문각을 두어 학문을 장려한 왕은 예종입니다.
- ⑤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의 규범을 제시한 것이 태조 왕건입니다.
호부와 삼사가 재해 보고를 처리하고 안찰사가 다시 조사하게 하는 행정 절차이므로 이 나라는 고려입니다. 고려 시대에는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했습니다.
- ①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한 것이 고려입니다.
- ②고추와 담배가 상품 작물로 재배된 것은 조선 후기입니다.
- ③시장을 감독하는 동시전이 설치된 것은 신라 지증왕 때입니다.
- ④광산을 전문적으로 경영하는 덕대가 활동한 것은 조선 후기입니다.
- ⑤농사직설이 보급된 것은 조선 세종 때입니다.
이자겸의 난 이후 척준경이 유배되고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한 시기이므로 '이 왕'은 인종입니다. 인종 때 서경 천도를 주장하던 묘청 등이 국호를 대위, 연호를 천개로 하며 난을 일으켰습니다.
- ①최충헌이 봉사 10조를 올린 것은 무신 집권기입니다.
- ②동북 9성을 여진에 반환한 것은 예종 때입니다.
- ③국자감이 성균관으로 개칭된 것은 고려 후기입니다.
- ④묘청 등이 서경에서 난을 일으킨 것이 인종 때입니다.
- ⑤광덕·준풍 등 독자적 연호를 사용한 것은 광종 때입니다.
공주 명학소에서 망이·망소이가 봉기한 사건입니다. 소는 국가에 특정 물품을 바치던 특수 행정 구역으로 일반 군현보다 무거운 부담을 졌고, 그 차별에 저항한 것이 봉기의 배경입니다.
- ①안동도호부는 고구려 멸망 후 당이 설치한 기구로 이 사건과 무관합니다.
- ②특수 행정 구역인 소에 대한 차별을 조사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 ③신라 말 호족의 성장은 이 사건보다 훨씬 앞선 시기의 일입니다.
- ④통청 운동으로 청요직에 진출한 것은 조선 후기 서얼의 일입니다.
- ⑤경기에 한하여 지급된 과전은 조선 과전법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야별초에서 비롯되어 좌별초·우별초와 신의군으로 이루어진 (가)는 삼별초입니다. 삼별초는 최씨 무신 정권의 군사적 기반 역할을 했고, 개경 환도에 반발해 진도와 제주도로 옮겨 가며 항쟁했습니다.
- ①거란의 침입에 대비해 조직된 군대는 광군입니다.
- ②최씨 무신 정권의 군사적 기반이 된 것이 삼별초입니다.
- ③원의 요청에 따른 일본 원정에 동원된 것은 김방경이 이끈 고려 정규군입니다.
- ④신기군·신보군·항마군으로 편성된 것은 별무반입니다.
- ⑤홍산 대첩에서 왜구를 물리친 것은 최영의 부대입니다.
고려 후기에 이승휴가 중국과 우리 역사를 칠언시·오언시의 운문으로 엮은 책은 제왕운기입니다. 제왕운기 하권에는 단군의 고조선 건국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 ①남북국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책은 유득공의 발해고입니다.
- ②불교사를 중심으로 민간 설화를 담은 책은 삼국유사입니다.
- ③단군의 고조선 건국 이야기가 수록된 것이 제왕운기입니다.
- ④왕명으로 고승들의 전기를 기록한 책은 해동고승전입니다.
- ⑤본기·열전 등 기전체로 서술된 책은 삼국사기입니다.
#제왕운기#이승휴#고려 후기#동국군왕개국연대#단군 기철 등 친원 세력을 숙청하고 쌍성총관부를 공격해 철령 이북의 땅을 되찾은 '왕'은 공민왕입니다. 공민왕은 신돈을 등용해 전민변정도감을 두고 권문세족이 빼앗은 토지와 노비를 바로잡게 했습니다.
- ①대각국사 의천이 천태종을 개창한 것은 고려 중기입니다.
- ②신돈을 중심으로 전민변정 사업이 추진된 것이 공민왕 때입니다.
- ③만적이 개경에서 반란을 모의한 것은 최충헌 집권기입니다.
- ④최충이 문헌공도를 설립한 것은 문종 때입니다.
- ⑤이규보가 동명왕편을 지은 것은 무신 집권기입니다.
최무선이 나세·심덕부 등과 함께 화포로 물리친 (가)는 왜구입니다. 고려는 1389년 박위를 파견해 왜구의 근거지인 쓰시마(대마도)를 토벌했습니다.
- ①광군을 조직해 대비한 상대는 거란입니다.
- ②경성과 경원에 무역소를 설치한 것은 조선이 여진을 상대로 한 조치입니다.
- ③박위를 파견해 근거지인 쓰시마를 토벌한 것이 왜구에 대한 대응입니다.
- ④어영청을 중심으로 북벌을 추진한 것은 조선 효종 때 청에 대한 것입니다.
- ⑤대장도감을 설치해 팔만대장경을 간행한 것은 몽골 침입 때입니다.
19번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 — 옳지 않은 것 고르기
정답 ⑤ · 3점일성록은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쓴 일기에서 비롯되어 국왕의 국정 운영을 정리한 기록입니다. 국왕의 비서 기관이 발행한 관보가 아니므로 (마)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습니다.
- ①조선왕조실록이 사초와 시정기 등을 종합해 편찬된 것은 맞습니다.
- ②직지심체요절이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 활자로 간행된 것은 맞습니다.
- ③조선왕조의궤 일부가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게 약탈된 것은 맞습니다.
- ④동의보감을 허준이 우리나라와 중국의 의서를 집대성해 지은 것은 맞습니다.
- ⑤일성록은 국왕의 비서 기관이 발행한 관보가 아니므로 옳지 않습니다.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을 주도하고 『조선경국전』을 지어 재상 중심의 정치를 강조한 (가)는 정도전입니다. 정도전은 불씨잡변을 지어 불교의 폐단을 비판했습니다.
- ①불씨잡변을 지어 불교를 비판한 것이 정도전입니다.
- ②계유정난을 계기로 정계에서 축출된 인물은 김종서 등입니다.
- ③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을 건립한 인물은 주세붕입니다.
- ④일본에 다녀와 해동제국기를 편찬한 인물은 신숙주입니다.
- ⑤성리학의 개념을 도식으로 설명한 성학십도를 지은 인물은 이황입니다.
훈민정음 창제 3년 뒤 소헌 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석보상절을 짓게 하고, 그 내용을 한글 노랫말로 옮긴 월인천강지곡을 지은 (가)는 세종입니다. 세종 때 한양을 기준으로 한 역법서 칠정산이 간행되었습니다.
- ①수도 방어를 위해 금위영을 설치한 왕은 숙종입니다.
- ②악학궤범을 완성한 것은 성종 때입니다.
- ③한양을 기준으로 한 역법서 칠정산을 간행한 것이 세종입니다.
- ④동국문헌비고를 편찬한 것은 영조 때입니다.
- ⑤현직 관리에게만 수조지를 지급하는 직전법을 실시한 왕은 세조입니다.
임진왜란 때 원군을 보낸 황제를 기리고자 숙종 대에 창덕궁에 대보단을 세워 제사를 지냈으므로 (가)는 명입니다. 조선은 명에 하정사·천추사 등의 사절단을 정기적으로 보냈습니다.
- ①나선 정벌에 조총 부대를 파견한 것은 청의 요청에 따른 것입니다.
- ②하정사·천추사 등 사절단을 보낸 상대가 명입니다.
- ③백두산정계비를 세워 국경을 획정한 상대는 청입니다.
- ④한성에 동평관을 두어 무역을 허용한 상대는 일본입니다.
- ⑤공녀를 보내기 위해 결혼도감을 설치한 것은 원 간섭기입니다.
#명#대보단#숙종#임진왜란 원군#하정사·천추사
삼사와 대립하고 조의제문을 구실로 사림을 탄압(무오사화)했으며 반정으로 폐위된 왕은 연산군입니다. 연산군은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을 빌미로 다시 신하들을 숙청했습니다(갑자사화).
- ①이괄의 난으로 공주로 피란한 왕은 인조입니다.
- ②단종 복위를 꾀한 성삼문 등을 처형한 왕은 세조입니다.
- ③영창 대군을 죽이고 인목 대비를 유폐한 왕은 광해군입니다.
- ④위훈 삭제를 주장한 조광조 일파를 제거한 왕은 중종입니다.
- ⑤폐비 윤씨 사사 사건을 빌미로 신하들을 숙청한 것이 연산군입니다.
병자호란 때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란해 45일간 항전하다 삼전도에서 항복했습니다. 따라서 (라) 남한산성에 대한 설명이 옳습니다.
- ①정봉수가 후금과 싸운 곳은 정묘호란 때의 용골산성입니다.
- ②김준룡이 적장을 사살한 곳은 병자호란 때의 광교산입니다.
- ③신립이 배수의 진을 친 곳은 충주 탄금대입니다.
- ④병자호란 때 인조가 피란해 항전한 곳이 남한산성입니다.
- ⑤권율이 일본군을 크게 물리친 곳은 행주산성입니다.
서울에 살면서 벼슬하는 그 고을 출신 관인들의 모임으로, 향리의 범법을 살피고 지방 풍속을 유지한 (가)는 경재소입니다. 경재소는 관할 지역 유향소 임원의 임명권을 행사했습니다.
- ①사헌부·사간원과 함께 3사로 불린 기구는 홍문관입니다.
- ②소속 관원을 은대 학사라고도 부른 기구는 승정원입니다.
- ③서얼 출신 학자들이 검서관에 등용된 기구는 규장각입니다.
- ④관할 유향소 임원의 임명권을 행사한 것이 경재소입니다.
- ⑤대사성 이하 좨주·직강 등의 관직을 둔 기구는 성균관입니다.
철원 삼부연 폭포를 그리고 우리 산천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진경산수화의 대가 (가)는 겸재 정선입니다. ①은 정선이 금강산을 그린 진경산수화입니다.
- ①금강산을 그린 정선의 진경산수화로 (가)의 작품입니다.
- ②강가의 배와 나무를 그린 조선 후기 산수화로 정선의 작품이 아닙니다.
- ③달밤에 만난 남녀를 그린 신윤복의 월하정인입니다.
- ④송도 일대를 그린 강세황의 영통동구도입니다.
- ⑤안견이 안평 대군의 꿈을 그린 몽유도원도입니다.
강화 도령으로 불렸고 안동 김씨 순원 왕후의 명으로 왕위에 올랐으며 임술 농민 봉기가 일어난 시기에 재위한 (가)는 철종입니다. 철종은 박규수의 건의로 삼정이정청을 설치했습니다.
- ①윤지충 등이 처형된 신해박해는 1791년 정조 때입니다.
- ②오페르트의 남연군 묘 도굴 시도는 1868년 고종 때입니다.
- ③국왕의 친위 부대 장용영 창설은 정조 때입니다.
- ④경신환국 등 여러 차례의 환국은 숙종 때입니다.
- ⑤박규수의 건의로 삼정이정청이 설치된 것이 철종 때입니다.
선무군관 직책을 주고 평시에 베 1필을 받는 제도는 균역법 시행으로 군포를 1필로 줄이면서 부족해진 재정을 메우기 위한 보충책이었습니다.
- ①토산물을 쌀·동전 등으로 납부하게 한 것은 대동법입니다.
- ②균역법 실시로 인한 세입 감소분의 보충 방안이 선무군관포입니다.
- ③시전 상인의 특권을 축소한 것은 신해통공입니다.
- ④전세를 풍흉에 따라 9등급으로 부과한 것은 연분 9등법입니다.
- ⑤설점수세제는 민간의 광산 개발과 관련된 제도입니다.
김옥균·홍영식 등이 연회를 틈타 정변을 일으키고 일본의 힘을 빌려 재상들을 죽였다는 상소이므로 갑신정변(1884)입니다. 갑신정변은 청군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했습니다.
- ①청군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한 것이 갑신정변입니다.
- ②홍범 14조가 반포된 것은 제2차 갑오개혁 때입니다.
- ③통리기무아문이 설치된 계기는 개화 정책 추진(1880)입니다.
- ④조일 통상 장정 체결을 초래한 사건은 아닙니다.
- ⑤구식 군인에 대한 차별 대우가 발단이 된 것은 임오군란입니다.
30번조선 후기의 모습 — 적절하지 않은 것 고르기
정답 ① · 1점사노비가 면천되고 후손들이 유학 직역을 얻는 등 신분 질서가 동요하며 향전이 일어난 '이 시기'는 조선 후기입니다. ① 제위보는 고려 광종 때 설치된 빈민 구제 기관이므로 조선 후기의 모습이 아닙니다.
- ①빈민을 구휼하는 제위보는 고려의 기구이므로 맞지 않습니다.
- ②시사에서 시를 낭송하는 중인은 조선 후기의 모습입니다.
- ③상평통보로 물건을 거래하는 보부상은 조선 후기의 모습입니다.
- ④세책가에서 홍길동전을 빌리는 부녀자는 조선 후기의 모습입니다.
- ⑤송파장에서 산대놀이를 하는 광대는 조선 후기의 모습입니다.
31번고부 봉기와 전주성 점령 사이의 사실
정답 ④ · 2점(가)는 조병갑의 학정에 맞선 고부 봉기(1894. 1.), (나)는 농민군의 전주성 점령(1894. 4.)입니다. 그 사이에 농민군은 황룡촌 전투에서 관군을 물리쳤습니다.
- ①남접과 북접이 논산에서 연합한 것은 제2차 봉기 때입니다.
- ②최제우가 처형된 것은 1864년으로 훨씬 이전입니다.
- ③일본이 경복궁을 점령한 것은 1894년 6월로 이후입니다.
- ④농민군이 황룡촌 전투에서 관군에 승리한 것이 두 시기 사이입니다.
- ⑤우금치 전투는 1894년 11월로 이후입니다.
32번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정답 ③ · 3점시전 상인들이 외국 상인의 한성 침투를 이유로 철시하고 퇴거를 요구한 배경은 청 상인의 내지 통상을 허용한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1882)의 체결입니다.
- ①동양 척식 주식회사 설립은 1908년의 일입니다.
- ②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는 1904년의 일입니다.
- ③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체결이 이 상황의 배경입니다.
- ④메가타의 화폐 정리 사업은 1905년의 일입니다.
- ⑤회사령 공포는 1910년의 일입니다.
일본에서 들여온 차관을 갚기 위해 일어났고 양기탁이 의연금 횡령 혐의로 기소되었다가 무죄를 선고받은 (가)는 국채 보상 운동(1907)입니다. 이 운동은 대한매일신보의 지원을 받아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 ①대한매일신보의 지원을 받아 확산된 것이 국채 보상 운동입니다.
- ②조선 총독부의 탄압으로 실패한 것은 1920년대의 운동들입니다.
- ③백정에 대한 차별 철폐를 요구한 것은 형평 운동입니다.
- ④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가 모금을 주도한 것은 민립 대학 설립 운동입니다.
- ⑤일본·프랑스 노동 단체의 격려 전문을 받은 것은 원산 총파업입니다.
주미 대한 제국 공사관이 외교권 박탈로 기능을 잃게 만든 (가)는 을사늑약(1905)입니다. 을사늑약으로 통감부가 설치되고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통감으로 부임했습니다.
- ①러일 전쟁 중에 체결된 것은 한일 의정서와 제1차 한일 협약입니다.
- ②최혜국 대우를 최초로 규정한 조약은 조미 수호 통상 조약입니다.
- ③천주교 포교 허용의 근거가 된 것은 조프 수호 통상 조약입니다.
- ④통감부가 설치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 을사늑약입니다.
- ⑤스티븐스가 외교 고문으로 파견된 근거는 제1차 한일 협약입니다.
35번한성 전기 회사 전차 개통 이후의 모습
정답 ⑤ · 2점한성 전기 회사가 전차를 개통한 것은 1899년입니다. 그 이후인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었으므로 개통식을 취재하는 기자가 이후에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 ①척화비 건립은 1871년 신미양요 직후입니다.
- ②영국의 거문도 불법 점령은 1885~1887년입니다.
- ③연무당에서 일본과 조약을 체결한 것은 1876년 강화도 조약입니다.
- ④보빙사의 미국 파견은 1883년입니다.
- ⑤경부선 철도 개통식 취재는 1905년으로 이후의 모습입니다.
36번서간도(남만주)의 민족 운동
정답 ① · 2점신흥 강습소와 그 구성원이 만든 신흥교우보가 발간된 (가)는 서간도(남만주 삼원보)입니다. 이곳에서 이회영 등은 한인 자치 기구인 경학사를 조직했습니다.
- ①한인 자치 기구인 경학사를 조직한 곳이 서간도입니다.
- ②유학생 중심으로 2·8 독립 선언서를 발표한 곳은 일본 도쿄입니다.
- ③대조선 국민군단을 조직한 곳은 하와이입니다.
- ④대한 광복군 정부를 수립한 곳은 연해주입니다.
- ⑤한인 비행 학교를 설립한 곳은 미국 윌로스입니다.
교원이 제복을 입고 칼을 찼으며 헌병이 재판 없이 체포·구금하고 태형에 처하던 '시기'는 1910년대 무단 통치기입니다. 이 시기에 일제는 토지 조사 사업을 실시했습니다.
- ①국가 총동원법 공포는 1938년입니다.
- ②산미 증식 계획 시행은 1920년입니다.
- ③토지 조사 사업을 실시한 것이 무단 통치기입니다.
- ④황국 신민 서사 암송 강요는 1930년대 후반입니다.
- ⑤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 제정은 1941년입니다.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하고 소년 운동을 처음 시작한 (가)는 천도교 소년회입니다. 천도교 소년회는 김기전·방정환 등이 주축이 되어 활동했습니다.
- ①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한 단체는 조선어 학회입니다.
- ②기관지로 진단 학보를 발행한 단체는 진단 학회입니다.
- ③오산 학교를 설립한 인물은 신민회의 이승훈입니다.
- ④김기전, 방정환 등이 주축이 되어 활동한 것이 천도교 소년회입니다.
- ⑤여권통문을 발표한 단체는 찬양회입니다.
대공황 이후 농촌 진흥 운동이 추진되고 남면북양 정책이 시행된 '시기'는 1930년대입니다. 이 시기 농민들은 혁명적 농민 조합을 결성해 일제에 저항했습니다.
- ①근우회 창립총회는 1927년입니다.
- ②경성 제국 대학 설립은 1924년입니다.
- ③원각사의 은세계 공연은 1908년입니다.
- ④13도 창의군의 서울 진공 작전은 1908년입니다.
- ⑤혁명적 농민 조합을 결성해 저항한 것이 1930년대의 모습입니다.
1929년 광주에서 일어난 한일 학생 충돌에 신간회가 조사단을 파견한 '사건'은 광주 학생 항일 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전국적인 시위와 동맹 휴학으로 확산되었습니다.
- ①순종의 인산일을 기회로 삼은 것은 6·10 만세 운동입니다.
- ②조선어 학회가 해산된 것은 조선어 학회 사건의 결과입니다.
- ③정우회 선언은 1926년으로 이 사건 이전입니다.
- ④전국적인 시위와 동맹 휴학으로 확산된 것이 광주 학생 항일 운동입니다.
- ⑤문화 통치 실시의 계기가 된 것은 3·1 운동입니다.
41번일제 강점기의 대중문화 — 적절하지 않은 것 고르기
정답 ① · 3점'아침 이슬'은 1970년대에 발표되어 유신 체제에서 금지곡으로 지정된 노래입니다. 일제 강점기의 가요 주제로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 ①아침 이슬의 금지곡 지정은 1970년대의 일이므로 맞지 않습니다.
- ②군국 가요가 징병제를 미화한 것은 일제 강점기의 일이므로 적절합니다.
- ③경성 방송국의 우리말 방송 검열은 일제 강점기의 일이므로 적절합니다.
- ④미쓰코시 백화점과 소비문화 이식은 일제 강점기의 일이므로 적절합니다.
- ⑤잡지 신여성의 여권 신장 계몽은 일제 강점기의 일이므로 적절합니다.
김구가 일제 요인 제거와 주요 기관 파괴를 목적으로 상하이에서 조직한 (가)는 한인 애국단입니다. 한인 애국단 단원 윤봉길이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의거를 실행했습니다.
- ①105인 사건으로 와해된 단체는 신민회입니다.
- ②파리 강화 회의에 독립 청원서를 제출한 단체는 신한 청년당입니다.
- ③단원 윤봉길이 훙커우 공원 의거를 실행한 것이 한인 애국단입니다.
- ④조선 혁명 선언을 지침으로 삼은 단체는 의열단입니다.
- ⑤조선 혁명 간부 학교를 설립한 단체는 의열단입니다.
1938년 10월 우한에서 김원봉의 지도로 창설되었고 뒷날 일부가 한국광복군 제1지대로 편입된 (가)는 조선 의용대입니다. 조선 의용대는 조선 민족 전선 연맹 산하의 군사 조직으로 결성되었습니다.
- ①동북 항일 연군으로 개편되어 유격전을 전개한 것은 만주의 항일 유격대입니다.
- ②간도 참변 이후 자유시로 이동한 것은 대한 독립 군단입니다.
- ③쌍성보·대전자령 전투에서 승리한 부대는 한국 독립군입니다.
- ④조선 민족 전선 연맹 산하의 군사 조직으로 결성된 것이 조선 의용대입니다.
- ⑤홍범도 부대와 연합해 청산리에서 싸운 부대는 북로 군정서입니다.
'조선 사람 조선 것'을 내세워 조선 물산의 생산과 소비를 장려한 '운동'은 물산 장려 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일제가 조선 관세령을 폐지하려는 움직임 등을 배경으로 확산되었습니다.
- ①조선 노동 총동맹을 중심으로 전개된 것은 노동 운동입니다.
- ②보국안민·제폭구민을 구호로 삼은 것은 동학 농민 운동입니다.
- ③조선 관세령 폐지 등을 배경으로 확산된 것이 물산 장려 운동입니다.
- ④황국 중앙 총상회 설립은 1898년 시전 상인의 활동입니다.
- ⑤일본 제일은행권 유통의 계기가 된 것은 화폐 정리 사업입니다.
45번아시아·태평양 전쟁 말기의 사실
정답 ③ · 1점연합군의 상륙에 대비해 한반도 남서 해안에 일본군 방어 시설이 구축된 것은 아시아·태평양 전쟁 말기입니다. 이 시기에 일제는 여자 정신 근로령(1944)으로 여성을 강제 동원했습니다.
- ①독립 의군부 결성은 1912년입니다.
- ②미쓰야 협정 체결은 1925년입니다.
- ③여자 정신 근로령으로 여성이 강제 동원된 것이 이 시기입니다.
- ④대동단결 선언 발표는 1917년입니다.
- ⑤국민 대표 회의 개최는 1923년입니다.
김규식과 여운형이 좌우 합작 예비 회담을 연 것은 1946년 7월입니다. 이는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1945. 12.)와 5·10 총선거(1948. 5.) 사이인 (나) 시기에 해당합니다.
- ①(가)는 8·15 광복과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사이입니다.
- ②(나)는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와 5·10 총선거 사이로, 좌우 합작 운동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 ③(다)는 5·10 총선거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사이입니다.
- ④(라)는 정부 수립과 6·25 전쟁 발발 사이입니다.
- ⑤(마)는 6·25 전쟁 발발과 한미 상호 방위 조약 체결 사이입니다.
3·1 운동의 정신을 전문에 담고 민주 공화국과 주권 재민을 천명했으며 경자유전을 규정한 것은 제헌 헌법(1948)입니다. 제헌 헌법은 반민족 행위자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을 두었습니다.
- ①양원제 국회와 내각 책임제 정부는 4·19 혁명 후 제3차 개헌의 내용입니다.
- ②반민족 행위자를 처벌할 근거를 마련한 것이 제헌 헌법입니다.
- ③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는 1987년 제9차 개헌의 내용입니다.
- ④초대 대통령의 중임 제한 철폐는 사사오입 개헌(제2차)의 내용입니다.
- ⑤긴급 조치로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게 한 것은 유신 헌법입니다.
계엄 당국이 공수 부대를 투입해 무차별 살상을 자행하자 시민들이 총을 들었다는 연설이므로 5·18 민주화 운동(1980)입니다. 광주 시민들은 시민군을 조직해 계엄군에 맞섰습니다.
- ①4·13 호헌 조치 철폐를 요구한 것은 6월 민주 항쟁입니다.
- ②시민군을 조직해 계엄군에 대항한 것이 5·18 민주화 운동입니다.
- ③김주열이 최루탄을 맞고 사망한 것은 3·15 의거와 4·19 혁명 때입니다.
- ④6·29 민주화 선언을 이끌어 낸 것은 6월 민주 항쟁입니다.
- ⑤대통령이 하야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4·19 혁명입니다.
49번유신 체제기 박정희 정부
정답 ① · 2점통일 주체 국민 회의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도록 헌법을 고친 (가)는 유신 체제기의 박정희 정부입니다. 이 시기에는 경찰이 거리에서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했습니다.
- ①거리에서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하는 경찰이 이 시기의 모습입니다.
- ②교복 자율화 조치는 1983년 전두환 정부 때입니다.
- ③금융 실명제 실시는 1993년 김영삼 정부 때입니다.
- ④칠레와의 자유 무역 협정 비준은 2004년 노무현 정부 때입니다.
- ⑤전국 민주 노동조합 총연맹 창립은 1995년입니다.
50번10·4 남북 정상 선언과 판문점 선언 사이의 사실
정답 ⑤ · 3점(가)는 2007년 10·4 남북 정상 선언, (나)는 2018년 4월 판문점 선언입니다. 그 사이인 2018년 2월 평창 동계 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 선수단이 공동 입장했습니다.
- ①7·4 남북 공동 성명은 1972년으로 이전입니다.
- ②개성 공업 지구 조성 합의는 2000년으로 이전입니다.
- ③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은 1991년으로 이전입니다.
- ④이산가족 고향 방문단 최초 교환은 1985년으로 이전입니다.
- ⑤평창 동계 올림픽 남북 공동 입장이 두 선언 사이의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