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지문과 자료 이미지는 국사편찬위원회에 저작권이 있어 이 페이지에 싣지 않았습니다. 아래 글은 이 사이트에서 직접 작성한 해설이며, 문제 원문은 제74회 문제풀이 화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서울 암사동 유적에서 빗살무늬 토기와 갈돌·갈판, 움집터가 나왔다는 뉴스이므로 (가)는 신석기 시대입니다. 신석기 시대에는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어 사람들이 식량을 직접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 ①목책과 환호 등 방어 시설을 갖춘 마을은 청동기 시대에 나타납니다.
- ②소를 이용한 깊이갈이가 일반화된 것은 고려 시대입니다.
- ③농경과 목축으로 식량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 신석기 시대입니다.
- ④지배층의 무덤인 고인돌 축조는 계급이 발생한 청동기 시대입니다.
- ⑤거푸집으로 세형 동검을 제작한 것은 철기 시대입니다.
강화 참성단이 단군왕검의 제천 단으로 전해지고, 개천절이 건국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설명에서 '이 나라'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입니다. 고조선은 왕 아래에 상·대부·장군 등의 관직을 두었습니다.
- ①여러 가(加)들이 사출도를 다스린 나라는 부여입니다.
- ②동맹이라는 제천 행사를 연 나라는 고구려입니다.
- ③민며느리제라는 혼인 풍습이 있던 나라는 옥저입니다.
- ④읍락 간 경계를 중시한 책화가 있던 나라는 동예입니다.
- ⑤왕 아래 상·대부·장군 등의 관직을 둔 것이 고조선입니다.
다듬은 돌을 계단처럼 쌓아 올린 높이 13미터의 돌무지무덤인 장군총은 고구려의 대표적인 무덤입니다. 고구려에는 지방에 경당을 두어 청소년에게 글과 활쏘기를 가르쳤습니다.
- ①녹과전을 지급받는 관리는 고려 원종 때 이후의 모습입니다.
- ②경당에서 학문과 무예를 익히는 청년이 고구려의 모습입니다.
- ③팔만대장경판을 만드는 장인은 고려 시대입니다.
- ④지방의 22담로에 파견되는 왕족은 백제 무령왕 때의 모습입니다.
- ⑤황룡사 구층 목탑 축조를 건의한 것은 신라 선덕 여왕 때 자장입니다.
4번관산성 전투와 대야성 함락 사이의 사실
정답 ② · 3점(가)는 백제 성왕이 전사한 관산성 전투(554), (나)는 백제 의자왕이 윤충을 보내 신라 대야성을 함락한 사건(642)입니다. 그 사이인 562년에 신라 진흥왕은 대가야를 공격해 복속시켰습니다.
- ①백제가 국호를 남부여로 고친 것은 538년 성왕 때로 (가) 이전입니다.
- ②진흥왕이 대가야를 정복한 562년이 두 사건 사이입니다.
- ③계백의 결사대가 황산벌에서 패한 것은 660년으로 (나) 이후입니다.
- ④김춘추가 당과 군사 동맹을 맺은 것은 648년으로 (나) 이후입니다.
- ⑤신라가 한강 하류를 차지하고 신주를 설치한 것은 553년으로 (가) 이전입니다.
부여 능산리 고분군의 동하총과 공주 송산리 6호분은 모두 백제의 굴식 돌방무덤으로, 사신도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백제는 왕족인 부여씨와 여덟 성씨의 귀족이 지배층을 이루었습니다.
- ①일길찬·사찬 등의 관등이 있던 나라는 신라입니다.
- ②욕살·처려근지 등의 지방 장관을 둔 나라는 고구려입니다.
- ③단궁·과하마·반어피가 특산물로 유명한 나라는 동예입니다.
- ④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 범금 8조를 둔 나라는 고조선입니다.
- ⑤왕족 부여씨와 8성 귀족이 지배층을 이룬 것이 백제입니다.
#백제#능산리 고분군#송산리 6호분#사신도#부여씨·8성 귀족 삼국 통일을 이루고 왜구를 막고자 감은사를 짓기 시작했으며, 아들 신문왕이 절을 완성했고 수중릉인 대왕암에 묻힌 '이 왕'은 문무왕입니다. 문무왕은 지방관을 감찰하기 위해 외사정을 파견했습니다.
- ①이사부를 보내 우산국을 복속시킨 왕은 지증왕입니다.
- ②건원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한 왕은 법흥왕입니다.
- ③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한 왕은 신문왕입니다.
- ④거칠부에게 국사를 편찬하게 한 왕은 진흥왕입니다.
- ⑤지방관 감찰을 위해 외사정을 파견한 것이 문무왕입니다.
상경을 중심으로 거란도·영주도·일본도 등의 교통로를 운영하고 담비·인삼 등을 교역했으며 소그드 은화가 출토된 (가)는 발해입니다. 발해는 서적 관리와 문서 작성을 맡은 문적원을 두었습니다.
- ①왜에 칠지도를 만들어 보낸 나라는 백제입니다.
- ②9서당 10정의 군사 조직을 운영한 나라는 통일 신라입니다.
- ③광평성 등 각종 정치 기구를 마련한 나라는 궁예의 후고구려입니다.
- ④제사장인 천군과 신성 지역 소도가 있던 나라는 삼한입니다.
- ⑤서적 관리와 문서 작성을 위해 문적원을 둔 것이 발해입니다.
#발해#상경#거란도·영주도·일본도#소그드 은화#문적원 9산 선문 가운데 가지산문의 대표 사찰인 장흥 보림사, 9세기부터 유행한 철불과 승탑은 모두 선종과 관련된 것입니다. 선종은 경전 연구보다 참선과 수행을 통한 깨달음을 강조했습니다.
- ①하늘에 제사 지내는 초제를 거행한 것은 도교입니다.
- ②참선과 수행을 통한 깨달음을 강조한 것이 선종입니다.
- ③시경·서경·역경 등을 주요 경전으로 삼은 것은 유교입니다.
- ④신선 사상을 바탕으로 불로장생을 추구한 것은 도교입니다.
- ⑤인내천 사상을 내세워 인간 평등을 주장한 것은 동학입니다.
#선종#9산 선문#가지산문#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승탑 당으로 건너가 무령군 소장이 되었고, 청해진을 설치해 동아시아 무역을 주도했으며 왕위 쟁탈전에 휘말려 암살당한 인물은 장보고입니다. 장보고는 당의 산둥반도에 신라인을 위한 사찰인 적산 법화원을 세웠습니다.
- ①화왕계를 지어 국왕에게 바친 인물은 설총입니다.
- ②산둥반도에 적산 법화원을 창건한 것이 장보고입니다.
- ③외교 문서인 청방인문표를 작성한 인물은 강수입니다.
- ④격황소서를 지어 이름을 떨친 인물은 최치원입니다.
- ⑤구법 순례기인 왕오천축국전을 저술한 인물은 혜초입니다.
10번신라 항복 이후의 후삼국 통일 과정
정답 ④ · 2점신라 경순왕 김부가 고려에 항복하고 경주를 식읍으로 받은 것은 935년입니다. 그 뒤 936년 왕건은 일리천 전투에서 견훤의 아들 신검의 군대를 물리치고 후삼국을 통일했습니다.
- ①안승이 보덕국왕으로 임명된 것은 674년 신라 문무왕 때입니다.
- ②신숭겸이 전사한 공산 전투는 927년으로 이전의 일입니다.
- ③원종과 애노의 난은 889년 신라 진성 여왕 때입니다.
- ④왕건이 일리천에서 신검의 군대를 물리친 것이 이후의 사실입니다.
- ⑤견훤이 패한 고창 전투는 930년으로 이전의 일입니다.
호족 세력을 숙청하고 노비안검법을 실시했으며, 후주와 사신을 주고받고 제위보를 설치한 '이 왕'은 광종입니다. 광종은 광덕·준풍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해 황제국의 위상을 드러냈습니다.
- ①폐정 개혁을 위해 정치도감을 설치한 왕은 충목왕입니다.
- ②광덕·준풍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한 것이 광종입니다.
- ③예의상정소를 두어 의례를 정비한 것은 인종 때입니다.
- ④전국에 12목을 설치하고 지방관을 파견한 왕은 성종입니다.
- ⑤관리에게 전지와 시지를 지급하는 전시과를 처음 마련한 왕은 경종입니다.
12번만부교 사건과 거란 2차 침입 사이의 사실
정답 ③ · 2점(가)는 태조 왕건이 거란이 보낸 낙타를 만부교 아래에 매어 굶겨 죽인 만부교 사건(942), (나)는 거란의 2차 침입으로 현종이 나주까지 피난한 상황(1010~1011)입니다. 그 사이인 993년 거란의 1차 침입 때 서희가 외교 담판으로 강동 6주를 얻었습니다.
- ①묘청의 칭제 건원 주장은 1135년으로 (나) 이후입니다.
- ②강감찬이 흥화진에서 승리한 것은 거란의 3차 침입(1018)으로 (나) 이후입니다.
- ③서희의 외교 담판으로 강동 6주를 획득한 993년이 두 사건 사이입니다.
- ④최우의 강화도 천도는 1232년 몽골 침입 때로 (나) 이후입니다.
- ⑤윤관의 동북 9성 개척은 1107년으로 (나) 이후입니다.
13번고려의 문화유산 — 적절하지 않은 것 고르기
정답 ① · 3점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과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이 소재로 제시되었으므로 (가)는 고려입니다. ①은 신라의 무덤에서 나온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이므로 고려의 문화유산이 아닙니다.
- ①말을 탄 인물을 본떠 만든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로, 신라의 문화유산입니다.
- ②청자 투각 칠보무늬 뚜껑 향로로 고려 청자의 대표작입니다.
- ③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으로 고려의 금속 공예품입니다.
- ④자개를 붙여 무늬를 낸 나전 칠기 합으로 고려의 공예품입니다.
- ⑤개성 경천사지 십층 석탑으로 원의 영향을 받은 고려의 석탑입니다.
14번무신 집권기의 사건 순서
정답 ① · 3점(가)는 김보당의 난(1173), (나)는 최충헌의 봉사 10조(1196), (다)는 개경 환도 후 삼별초의 항쟁(1270)입니다. 따라서 (가) - (나) - (다) 순입니다.
- ①김보당의 난(1173) → 봉사 10조(1196) → 삼별초의 항쟁(1270) 순이 맞습니다.
- ②삼별초의 항쟁이 봉사 10조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 ③봉사 10조는 김보당의 난보다 뒤의 일입니다.
- ④봉사 10조가 가장 먼저 올 수 없습니다.
- ⑤삼별초의 항쟁은 셋 중 가장 나중의 일입니다.
15번고려 중기(예종~인종)의 사회 모습
정답 ④ · 2점국자감에 7재를 설치한 것은 예종, 무학재를 폐지한 것은 인종 때의 일이므로 고려 중기입니다. 고려는 예종 때 병자에게 약을 지급하는 혜민국을 설치했습니다.
- ①서얼의 통청 운동은 조선 후기의 일입니다.
- ②사창절목에 따른 사창제 시행은 조선 흥선 대원군 때입니다.
- ③왕조 교체를 예언한 정감록의 유포는 조선 후기의 일입니다.
- ④병자에게 약을 지급하는 혜민국이 설치된 것이 고려 예종 때입니다.
- ⑤향약집성방 간행은 조선 세종 때입니다.
시호가 불일보조국사이고 정혜결사를 조직해 「권수정혜결사문」을 지었으며, 송광산 길상사를 조계산 수선사로 삼은 (가)는 지눌입니다. 지눌은 단번에 깨달은 뒤에도 꾸준히 수행해야 한다는 돈오점수를 강조했습니다.
- ①법화 신앙에 중점을 둔 백련 결사를 이끈 인물은 요세입니다.
- ②돈오점수를 바탕으로 꾸준한 수행을 강조한 것이 지눌입니다.
- ③승려들의 전기를 기록한 해동고승전을 저술한 인물은 각훈입니다.
- ④선문염송집을 편찬하고 유불 일치설을 주장한 인물은 혜심입니다.
- ⑤성상융회를 제창해 교종 내 대립을 해소하려 한 인물은 균여입니다.
권문세족이 도평의사사를 장악하고 대농장을 경영했으며, 공녀가 끌려가고 변발·호복이 유행한 '이 시기'는 원 간섭기입니다. 이때 이암이 원의 농서인 농상집요를 들여와 소개했습니다.
- ①농상집요를 소개하는 관리가 원 간섭기의 모습입니다.
- ②흑창에서 곡식을 빌리는 농민은 고려 태조 때의 모습입니다.
- ③사섬서에서 저화를 발행하는 장인은 조선 태종 때입니다.
- ④선혜청에서 공가를 받는 상인은 대동법 시행 이후 조선 후기입니다.
- ⑤상평통보로 물건을 거래하는 보부상은 조선 후기의 모습입니다.
ㄴ. 중추원은 군사 기밀과 왕명 출납을 담당했고, ㄹ. 도병마사는 재신과 추밀(재추)이 모여 국방·군사 문제를 논의한 고려의 독자적 회의 기구입니다. 따라서 ㄴ, ㄹ이 옳습니다.
- ①ㄱ이 틀렸습니다. 좌·우사정이 6부를 나누어 관할한 것은 발해의 정당성입니다.
- ②ㄱ과 ㄷ이 모두 틀렸습니다.
- ③ㄷ이 틀렸습니다. 5품 이하 관원의 서경권은 어사대와 중서문하성 낭사, 즉 대간이 행사했습니다.
- ④ㄴ과 ㄹ이 옳습니다.
- ⑤ㄷ이 틀렸습니다. 고려의 삼사는 곡식과 화폐의 출납·회계를 맡았습니다.
조선 왕과 왕비, 대한 제국 황제와 황후의 신위 49위를 다시 모셔오는 환안제가 열린 (가)는 종묘입니다. ①은 신주를 모신 긴 건물과 신로가 놓인 종묘 정전의 모습입니다.
- ①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종묘 정전으로 (가)에 해당합니다.
- ②연못 위에 세운 육각 정자인 경복궁 향원정입니다.
- ③서양식 요소가 섞인 덕수궁 정관헌입니다.
- ④창덕궁 후원의 주합루로 1층에 규장각을 두었던 건물입니다.
- ⑤황제가 하늘에 제사 지내던 환구단의 부속 건물인 황궁우입니다.
호패법을 다시 시행해 지방 세력 통제를 강화하자 함길도에서 이시애가 난을 일으켰고, 이를 평정한 공으로 오자치가 적개공신에 책봉되었으므로 (가)는 세조입니다. 세조는 불경을 한글로 번역·간행하기 위해 간경도감을 설치했습니다.
- ①간경도감이 설치된 것이 세조 때입니다.
- ②조선경국전이 편찬된 것은 태조 때 정도전에 의해서입니다.
- ③국조오례의가 완성된 것은 성종 때입니다.
- ④부민고소금지법이 제정된 것은 세종 때입니다.
- ⑤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제작된 것은 태종 때입니다.
강화 교섭이 결렬된 뒤 일본이 다시 침입한 '이 전란'은 정유재란(1597)입니다. 전란이 끝난 뒤 조선은 1607년 포로 송환 등을 목적으로 회답겸쇄환사를 일본에 파견했습니다.
- ①신숙주가 해동제국기를 저술한 것은 조선 전기 성종 때입니다.
- ②나세 등이 화포로 왜구를 격퇴한 진포 대첩은 1380년 고려 말입니다.
- ③포로 송환을 위해 회답겸쇄환사가 파견된 것이 이후의 사실입니다.
- ④사량진 왜변은 1544년으로 임진왜란 이전입니다.
- ⑤비변사가 임시 기구로 설치된 것은 1510년 삼포왜란 무렵입니다.
22번갑인예송과 신임사화 사이의 사실
정답 ④ · 3점앞 장면은 자의 대비의 대공복을 두고 다툰 갑인예송(1674, 현종), 뒤 장면은 목호룡의 고변으로 연잉군과 노론이 곤경에 처한 신임사화(1721~1722, 경종)입니다. 그 사이인 1689년 기사환국으로 인현 왕후가 폐위되고 남인이 권력을 잡았습니다.
- ①인조반정으로 북인이 몰락한 것은 1623년으로 이전의 일입니다.
- ②기축옥사로 동인이 축출된 것은 1589년으로 이전의 일입니다.
- ③양재역 벽서 사건은 1547년 명종 때로 이전의 일입니다.
- ④인현 왕후가 폐위되고 남인이 권력을 잡은 기사환국이 두 시기 사이입니다.
- ⑤탕평비 건립은 1742년 영조 때로 이후의 일입니다.
도산 서원에 배향되었고 성학십도를 지어 군주의 수양을 강조했으며 기대승과 사단칠정 논쟁을 벌인 (가)는 이황입니다. 이황은 예안 향약을 시행해 향촌 교화에 힘썼습니다.
- ①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을 건립한 인물은 주세붕입니다.
- ②명에 대한 의리를 내세운 기축봉사를 올린 인물은 송시열입니다.
- ③동호문답을 통해 개혁 방안을 제시한 인물은 이이입니다.
- ④예안 향약을 시행해 향촌 교화에 힘쓴 것이 이황입니다.
- ⑤가례집람을 저술해 예학을 정리한 인물은 김장생입니다.
친위 부대인 장용영을 서울에 내영, 수원 화성에 외영으로 두고 규장각과 함께 왕권 강화에 활용한 (가)는 정조입니다. 정조는 젊은 문신을 다시 교육하는 초계문신제를 실시했습니다.
- ①나선 정벌에 조총 부대를 파견한 왕은 효종입니다.
- ②호포제를 시행해 양반에게도 군포를 걷은 것은 흥선 대원군입니다.
- ③문신을 재교육하는 초계문신제를 실시한 것이 정조입니다.
- ④삼정이정청을 설치한 것은 임술 농민 봉기 때 철종입니다.
- ⑤공노비 6만여 명을 해방한 것은 1801년 순조 때입니다.
순조 1년(1801)에 일어나 천주교인들이 탄압을 피해 교우촌을 이루었고, 황사영이 백서를 쓰다 은신했던 사건이므로 (가)는 신유박해입니다. 신유박해 때 이승훈이 처형되고 정약용·정약전 등이 유배되었습니다.
- ①한성 조약이 체결된 것은 갑신정변의 결과입니다.
- ②청군이 출병해 진압한 것은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입니다.
- ③박규수가 안핵사로 파견된 것은 임술 농민 봉기 때입니다.
- ④이필제가 영해에서 난을 일으킨 것은 동학과 관련된 사건입니다.
- ⑤이승훈, 정약용 등이 연루되어 처벌된 것이 신유박해입니다.
26번조선 후기의 모습 — 적절하지 않은 것 고르기
정답 ② · 1점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고 서당 교육이 확대되던 시기에 봉산 탈춤, 송파 산대놀이 등 탈춤이 성행했으므로 '이 시기'는 조선 후기입니다. ②의 계미자는 조선 전기 태종 때 주자소에서 만든 금속 활자입니다.
- ①판소리 흥보가를 구경하는 농민은 조선 후기의 모습입니다.
- ②주자소에서 계미자를 만드는 장인은 조선 전기 태종 때의 모습입니다.
- ③옥계 시사에서 시를 낭송하는 중인은 조선 후기의 모습입니다.
- ④세책가에서 춘향전을 빌리는 부녀자는 조선 후기의 모습입니다.
- ⑤호랑이를 소재로 민화를 그리는 화가는 조선 후기의 모습입니다.
종로 시전 외에 이현과 칠패 같은 난전이 표기된 수선총도, 난전과 시전의 갈등은 조선 후기 사상(私商)의 성장을 보여 줍니다. 조선 후기에는 부산의 초량 왜관을 통해 일본과 교역했습니다.
- ①백성에게 정전이 지급된 것은 통일 신라 성덕왕 때입니다.
- ②초량 왜관을 통해 일본과 교역한 것이 조선 후기입니다.
- ③주전도감에서 해동통보가 발행된 것은 고려 숙종 때입니다.
- ④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한 것은 고려 시대입니다.
- ⑤시장을 관리하는 동시전이 설치된 것은 신라 지증왕 때입니다.
28번조미 수호 통상 조약과 관세 부과
정답 ④ · 2점묄렌도르프가 왕명을 받아 영국인 스트리플링을 인천 해관 초대 세무사로 임명한 자료로, 조선이 관세 부과 업무를 공식적으로 시작했음을 보여 줍니다. 관세 조항이 처음 규정된 것은 1882년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이므로 그 내용을 분석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 ①한일 의정서는 1904년 러일 전쟁 중 체결된 것으로 관세와 관련이 없습니다.
- ②미쓰야 협정은 1925년 만주 지역 독립군 탄압을 위한 협정입니다.
- ③강화도 조약은 무관세 조항이 문제가 된 조약으로, 체결 계기는 운요호 사건입니다.
- ④관세 부과의 근거가 된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의 내용을 분석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 ⑤헤이그 특사 파견은 1907년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29번개항기 인물의 활동 — 적절하지 않은 것 고르기
정답 ③ · 2점김홍집은 제2차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와 『조선책략』을 들여온 인물입니다. 보빙사로 미국에 다녀온 사람은 민영익·홍영식·유길준 등이므로 (다)에 들어갈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 ①박규수는 북학 사상을 바탕으로 통상 개화론을 주장했으므로 적절합니다.
- ②이만손은 영남 만인소를 주도해 개항과 통상에 반대했으므로 적절합니다.
- ③김홍집은 보빙사가 아니라 제2차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왔으므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 ④유길준은 서유견문을 집필해 서양 근대 문명을 소개했으므로 적절합니다.
- ⑤박성춘은 백정 출신으로 관민 공동회에서 연설했으므로 적절합니다.
고종이 황제 즉위 후 구본신참을 내세워 추진한 '개혁'은 광무개혁입니다. 광무개혁 때 정부는 양전 사업을 벌이고 지계아문을 설치해 토지 소유권 증서인 지계를 발급했습니다.
- ①지계아문을 설치해 지계를 발급한 것이 광무개혁입니다.
- ②건양이라는 연호를 채택한 것은 을미개혁입니다.
- ③박문국을 설치하고 한성순보를 발행한 것은 1883년입니다.
- ④근대식 무기 공장인 기기창 설립은 1883년의 일입니다.
- ⑤홍범 14조 반포는 제2차 갑오개혁 때입니다.
전봉준 등이 고부 군수 조병갑의 횡포에 맞서 사발통문을 작성했고 고부 농민 봉기를 시작으로 전개되었으므로 (가)는 동학 농민 운동입니다. 농민군은 전주성을 점령한 뒤 정부와 전주 화약을 맺었습니다.
- ①삼국 간섭은 1895년 청일 전쟁 후 열강의 개입입니다.
- ②척화비 건립은 신미양요 이후 흥선 대원군의 조치입니다.
- ③전주 화약이 체결되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 ④영국의 거문도 점령은 1885년 러시아 견제를 위한 것입니다.
- ⑤외규장각 도서 약탈은 1866년 병인양요 때의 일입니다.
군대 해산 명령에 맞서 시위대 대대장 박승환이 자결하고 시가전이 벌어진 것은 1907년입니다. 해산 군인이 합류해 전투력이 강화된 의병들은 이듬해 13도 창의군을 결성해 서울 진공 작전을 폈습니다.
- ①최익현의 태인 의병은 1906년으로 이전의 일입니다.
- ②일본의 독도 불법 편입은 1905년으로 이전의 일입니다.
- ③스티븐스의 외교 고문 부임은 1904년 제1차 한일 협약 때입니다.
- ④13도 창의군이 서울 진공 작전을 전개한 것이 이후의 사실입니다.
- ⑤유인석 부대의 충주성 점령은 1896년 을미의병 때입니다.
33번하와이 지역의 민족 운동
정답 ⑤ · 2점1903년 첫 공식 이민으로 사탕수수 농장 노동에 종사했고 1905년까지 약 7,000명이 이주한 '이곳'은 하와이입니다. 하와이에서는 박용만이 대조선 국민군단을 결성해 군사 훈련을 실시했습니다.
- ①한인 자치 기구인 경학사가 설립된 곳은 서간도입니다.
- ②권업신문이 발간된 곳은 연해주입니다.
- ③2·8 독립 선언이 발표된 곳은 일본 도쿄입니다.
- ④신한 청년당이 파리 강화 회의에 대표를 파견한 곳은 상하이입니다.
- ⑤대조선 국민군단을 결성해 군사 훈련을 실시한 곳이 하와이입니다.
그해 1월 경부선이 개통되고 8개월 뒤 부관 연락선 잇키마루가 운항을 시작했다는 기사이므로 1905년입니다. 이때는 1904년 창간된 대한매일신보가 발행되고 있었습니다.
- ①대한매일신보를 읽고 있는 청년이 1905년 무렵의 모습입니다.
- ②경성 제국 대학 입학은 1924년 이후의 모습입니다.
- ③원각사에서 은세계 공연을 보는 것은 1908년의 모습입니다.
- ④통리기무아문에서 개화 정책을 논의하는 것은 1880년대 초입니다.
- ⑤천도교 소년회의 어린이날 행사는 1920년대의 모습입니다.
러시아가 용천군 용암포의 삼림 회사를 위해 전신주를 가설하려 하고, 일본·영국·미국이 용암포 개항을 요구한 것은 1903년 용암포 사건입니다. 이는 아관 파천(1896)과 러일 전쟁 발발(1904) 사이인 (라) 시기에 해당합니다.
- ①(가)는 신미양요(1871)와 갑신정변(1884) 사이입니다.
- ②(나)는 갑신정변과 청일 전쟁(1894) 사이입니다.
- ③(다)는 청일 전쟁과 아관 파천(1896) 사이입니다.
- ④(라)는 아관 파천과 러일 전쟁(1904) 사이로, 1903년 용암포 사건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 ⑤(마)는 러일 전쟁과 국권 피탈(1910) 사이입니다.
보성고등보통학교 학생이 탑골 공원과 종로 일대에 독립 선언서를 배포하고 국민 대회 취지서를 전달했다는 판결문이므로 (가)는 3·1 운동입니다. 일제는 3·1 운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제암리 학살 등을 자행했습니다.
- ①정우회 선언의 영향을 받아 창립된 단체는 신간회입니다.
- ②통감부의 탄압으로 중단된 것은 국채 보상 운동입니다.
- ③순종의 인산일을 기회로 삼은 것은 6·10 만세 운동입니다.
- ④전개 과정에서 일제가 제암리 학살을 자행한 것이 3·1 운동입니다.
- ⑤성진회와 학교 독서회를 통해 확산된 것은 광주 학생 항일 운동입니다.
안희제가 세운 백산 상회가 연통제 조직을 통해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고 독립신문을 보급했으므로 (가)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입니다. 임시 정부는 자금 마련을 위해 독립 공채를 발행했습니다.
- ①고종 강제 퇴위 반대 운동을 전개한 단체는 대한 자강회입니다.
- ②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저지한 단체는 보안회입니다.
- ③영은문 자리 부근에 독립문을 건립한 단체는 독립 협회입니다.
- ④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해 독립 공채를 발행한 것이 대한민국 임시 정부입니다.
- ⑤조선 총독부에 국권 반환 요구서를 제출하려 한 단체는 독립 의군부입니다.
김원봉이 조직했고 박재혁이 고서상으로 위장해 부산 경찰서에 폭탄을 던졌으므로 '이 단체'는 의열단입니다. 의열단에서는 김익상(조선 총독부), 김상옥(종로 경찰서) 등이 의거를 일으켰습니다.
- ①원산 노동자 총파업을 지원한 단체는 신간회입니다.
- ②신흥 강습소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한 단체는 신민회입니다.
- ③김익상, 김상옥 등이 단원으로 활동한 것이 의열단입니다.
- ④상덕태상회를 통해 군자금을 모집한 단체는 대한 광복회입니다.
- ⑤이봉창 의거를 계획한 단체는 한인 애국단입니다.
사적 유물론을 바탕으로 『조선사회경제사』를 저술하고 한국사가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 법칙에 따라 발전했다고 주장한 (가)는 백남운입니다. 이 주장은 한국사가 정체되었다는 식민 사학의 정체성론을 반박한 것입니다.
- ①조선불교유신론을 주장한 인물은 한용운입니다.
- ②식민 사학의 정체성론을 반박한 것이 백남운입니다.
- ③조선사 편수회에 들어가 조선사 편찬에 참여한 인물은 이병도·신석호 등입니다.
- ④진단 학회를 설립해 실증주의 사학을 발전시킨 인물은 이병도·손진태 등입니다.
- ⑤민족을 역사 서술의 중심에 둔 독사신론을 집필한 인물은 신채호입니다.
#백남운#조선사회경제사#사적 유물론#정체성론 반박#사회 경제 사학
40번일제 강점기 조선인의 삶 — 적절하지 않은 것 고르기
정답 ⑤ · 1점영화 아리랑, 몸뻬, 노래 목포의 눈물은 모두 일제 강점기의 소재입니다. ⑤ 새마을 운동은 1970년대 박정희 정부 때 전개된 것이므로 '식민지 조선인의 삶'에 들어갈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 ①잡지 신여성의 여권 신장 주장은 1920년대의 일입니다.
- ②조선 형평사의 사회적 차별 철폐 운동은 1923년 이후의 일입니다.
- ③소설 상록수와 브나로드 운동은 1930년대의 일입니다.
- ④경성 방직 주식회사의 광목 광고는 물산 장려 운동 무렵의 일입니다.
- ⑤새마을 운동은 1970년대의 일이므로 일제 강점기와 맞지 않습니다.
41번국외 동포의 시련 — 적절하지 않은 것 고르기
정답 ③ · 2점에네켄(애니깽) 농장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린 동포들은 멕시코로 이주한 사람들입니다. 연해주 동포와 관련된 내용이 아니므로 (다)에 들어갈 제목으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 ①만주에서 일본군의 보복으로 간도 참변이 일어났으므로 적절합니다.
- ②일본에서 관동 대지진 당시 자경단에게 학살당했으므로 적절합니다.
- ③에네켄 농장의 고된 노동은 멕시코 이주 동포의 일이므로 연해주와 맞지 않습니다.
- ④중앙아시아 동포는 1937년 소련 당국에 의해 강제 이주되었으므로 적절합니다.
- ⑤미국에서는 교민들을 중심으로 흥사단이 창립되었으므로 적절합니다.
만주 사변 이후 총사령관 지청천과 함께 중국군과 연합해 1933년 대전자령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므로 (가)는 한국 독립군입니다. 한국 독립군은 북만주에서 활동한 한국 독립당의 군사 조직입니다.
- ①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파한 부대는 홍범도의 대한 독립군입니다.
- ②미국(OSS)과 연계해 국내 진공 작전을 계획한 부대는 한국광복군입니다.
- ③중국 의용군과 연합해 영릉가 전투에서 승리한 부대는 양세봉의 조선 혁명군입니다.
- ④조선 민족 전선 연맹 산하 군사 조직으로 결성된 부대는 조선 의용대입니다.
- ⑤한국 독립당의 군사 조직으로 북만주에서 활약한 것이 한국 독립군입니다.
43번민족 말살 통치기(국가 총동원법 시행기)
정답 ④ · 1점국가 총동원법이 시행되던 시기(1938년 이후)에 일제는 조선어 학회 회원들을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검거했습니다(조선어 학회 사건, 1942). 이 시기에는 황국 신민 서사 암송이 강요되었습니다.
- ①조선 태형령 반포는 1912년 무단 통치기입니다.
- ②조선 노농 총동맹 결성은 1924년입니다.
- ③임시 토지 조사국 설립은 1910년입니다.
- ④황국 신민 서사 암송이 강요된 것이 민족 말살 통치기입니다.
- ⑤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 창립은 1923년입니다.
남한만의 단독 선거에 반대하는 무장대와 토벌대의 충돌, 그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된 (가)는 제주 4·3 사건입니다. 2000년에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습니다.
- ①대통령이 하야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4·19 혁명입니다.
- ②호헌 철폐와 독재 타도를 내세운 것은 6월 민주 항쟁입니다.
- ③통일 주체 국민 회의 구성의 배경이 된 것은 유신 체제 성립입니다.
- ④6·3 시위와 비상계엄 선포의 계기가 된 것은 한일 국교 정상화 추진입니다.
- ⑤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것이 제주 4·3 사건입니다.
45번6·25 전쟁 중의 사실
정답 ① · 2점부산이 임시 수도였고 피난 학교의 천막 교실에서 수업이 이루어졌으므로 '이 전쟁'은 6·25 전쟁입니다. 전쟁 중인 1952년 부산에서 대통령 직선제를 담은 발췌 개헌안이 통과되었습니다.
- ①발췌 개헌안이 통과된 1952년이 전쟁 중의 사실입니다.
- ②삼청 교육대 설치는 1980년 신군부 때입니다.
- ③한미 상호 방위 조약 체결은 정전 협정 이후인 1953년 10월입니다.
- ④여수·순천 10·19 사건은 1948년으로 전쟁 이전입니다.
- ⑤국가 보위 비상 대책 위원회 구성은 1980년입니다.
대구의 2·28 민주 운동, 대전 3·8 민주 의거, 마산 3·15 의거가 도화선이 된 (가)는 4·19 혁명입니다. 4·19 혁명으로 이승만이 하야하고 허정 과도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 ①시위 도중 대학생 이한열이 희생된 것은 6월 민주 항쟁입니다.
- ②시민군이 조직되어 계엄군에 저항한 것은 5·18 민주화 운동입니다.
- ③허정 과도 정부가 출범하는 계기가 된 것이 4·19 혁명입니다.
- ④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낸 것은 6월 민주 항쟁입니다.
- ⑤야당 총재의 국회의원직 제명으로 촉발된 것은 부마 민주 항쟁입니다.
47번3·1 민주 구국 선언 이후의 사실
정답 ③ · 3점긴급 조치 철폐와 유신 헌법 폐지를 요구한 3·1 민주 구국 선언은 1976년 명동 성당에서 발표되었습니다. 그 이후인 1979년 YH 무역 노동자들이 신민당 당사에서 농성을 벌였습니다.
- ①3선 개헌안 통과는 1969년으로 이전의 일입니다.
- ②경향신문 폐간은 1959년 이승만 정부 때입니다.
- ③YH 무역 노동자들의 야당 당사 농성이 1979년으로 이후의 사실입니다.
- ④국가 재건 최고 회의 구성은 1961년 5·16 군사 정변 직후입니다.
- ⑤진보당 조봉암의 처형은 1959년의 일입니다.
외환 위기 때 빌린 IMF 구제 금융을 3년 8개월 만에 조기 상환한 것은 2001년 김대중 정부 때입니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 위기 극복을 위해 대통령 직속 자문 기구로 노사정 위원회를 출범시켰습니다.
- ①경제 기획원 발족은 1961년 장면 내각 말~박정희 정부 초입니다.
- ②제4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추진은 1970년대 박정희 정부입니다.
- ③미국과 자유 무역 협정(FTA)을 체결한 것은 노무현 정부입니다.
- ④3저 호황은 1980년대 중반 전두환 정부 때입니다.
- ⑤대통령 직속 자문 기구로 노사정 위원회가 출범한 것이 김대중 정부입니다.
49번노무현 정부의 통일 노력
정답 ⑤ · 2점6·15 남북 공동 선언과 햇볕 정책을 계승·발전시킨 '평화 번영 정책'을 추진한다는 연설이므로 참여정부, 즉 노무현 정부입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개성 공단 착공식이 열렸습니다.
- ①판문점에서 남북 정상 회담을 개최한 것은 문재인 정부(2018)입니다.
- ②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것은 노태우 정부(1991)입니다.
- ③남북 이산가족의 고향 방문을 최초로 성사시킨 것은 전두환 정부(1985)입니다.
- ④6·23 평화 통일 외교 정책 선언은 박정희 정부(1973)입니다.
- ⑤개성 공단 착공식을 연 것이 노무현 정부입니다.
50번역사 속 관리 선발 제도 — 적절하지 않은 것 고르기
정답 ⑤ · 3점선거조례는 1894년 군국기무처가 과거제를 폐지하면서 제정한 것으로, 제1차 갑오개혁 때의 일입니다. 대한 제국 수립(1897) 이후가 아니므로 ⑤가 적절하지 않습니다.
- ①독서삼품과는 신라 원성왕 때 시행되었으므로 옳습니다.
- ②고려의 과거제는 쌍기의 건의를 수용해 광종 때 실시되었으므로 옳습니다.
- ③조선의 문과는 식년시, 알성시, 증광시 등으로 운영되었으므로 옳습니다.
- ④현량과는 중종 때 조광조 등 사림이 실시를 주장했으므로 옳습니다.
- ⑤선거조례는 대한 제국 수립 이전인 1894년 제1차 갑오개혁 때 제정되었으므로 적절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