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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고인돌 유적, 사유 재산과 계급의 발생, 덮개돌을 캐던 채석장이라는 단서로 (가)는 청동기 시대입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청동 방울·청동 거울 같은 청동기를 지배층의 의례 도구로 사용했고, 농기구는 여전히 돌과 나무로 만들었습니다.
- ①청동 방울 등을 의례 도구로 사용한 것이 청동기 시대의 모습입니다.
- ②동굴이나 강가의 막집에 거주한 것은 구석기 시대입니다.
- ③오수전·화천 등 중국 화폐로 교역한 것은 철기 시대입니다.
- ④가락바퀴로 실을 뽑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 시대입니다.
- ⑤호미·쇠스랑 등 철제 농기구를 제작한 것은 철기 시대입니다.
대로와 패자, 왕족 대가에게 주어진 고추가 칭호, 연노부·절노부 등 5부의 이름이 나오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 기록은 고구려에 대한 것입니다. 고구려에는 혼인 뒤 신랑이 신부 집 뒤편의 서옥에 머물다 자식이 자라면 데려오는 서옥제라는 혼인 풍습이 있었습니다.
- ①신성 지역인 소도가 있었던 나라는 삼한입니다.
- ②서옥제라는 혼인 풍습이 있었던 것이 고구려입니다.
- ③10월에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를 연 나라는 동예입니다.
- ④범금 8조를 둔 나라는 고조선입니다.
- ⑤화백 회의에서 국가의 중대사를 논의한 나라는 신라입니다.
무령왕릉 석수가 출토된 무덤의 주인 무령왕은 백제 제25대 왕이므로 (가)는 백제입니다. 보기 가운데 백제의 문화유산은 익산 미륵사지 석탑으로, 목탑의 구조를 돌로 옮긴 현존 최고(最古)·최대의 석탑이며 2009년 해체 과정에서 사리봉영기가 발견되었습니다.
- ①경주 불국사 다보탑으로 통일 신라의 문화유산입니다.
- ②벽돌을 쌓아 올린 전탑으로 통일 신라 이후에 유행한 양식이며 백제의 문화유산이 아닙니다.
- ③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 석탑으로 고려의 문화유산입니다.
- ④익산 미륵사지 석탑으로 백제의 문화유산인 것이 맞습니다.
- ⑤경주 분황사 모전 석탑으로 신라 선덕 여왕 때 세워진 문화유산입니다.
신라 제22대 왕으로 국호를 '신라'로 확정하고 우경을 장려한 왕은 지증왕(500~514)입니다. 지증왕 때 이사부가 우산국(울릉도)을 복속시켰고, 순장이 금지되었으며 동시전이 설치되었습니다.
- ①이사부가 우산국을 복속시킨 것이 지증왕 때의 일입니다.
- ②불국사 삼층 석탑(석가탑)은 경덕왕 때 건립되었습니다.
- ③원광이 걸사표를 지은 것은 진평왕 때입니다.
- ④원종과 애노가 사벌주에서 봉기한 것은 진성 여왕 때입니다.
- ⑤집사부가 설치된 것은 진덕 여왕 때입니다.
이적이 평양성을 함락하고 보장왕과 남건을 사로잡았다는 내용은 668년 고구려 멸망 기사입니다. 멸망 뒤 고구려 유민들은 부흥 운동을 벌였는데, 670년 검모잠이 왕족 안승을 왕으로 세우고 한성(재령)에서 봉기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안승은 뒤에 신라에 투항해 보덕국왕에 봉해졌습니다.
- ①윤충의 대야성 함락(642)은 고구려 멸망 이전의 일입니다.
- ②검모잠이 안승을 왕으로 세운 것이 고구려 멸망 이후 일어난 부흥 운동입니다.
- ③흑치상지의 임존성 봉기는 백제 멸망(660) 직후의 백제 부흥 운동입니다.
- ④계백의 황산벌 항전(660)은 백제 멸망 때의 일로 고구려 멸망보다 앞섭니다.
- ⑤을지문덕의 살수 대첩(612)은 고구려 멸망보다 앞선 사건입니다.
즉위 원년에 김흠돌의 반역을 알고도 알리지 않은 병부령 김군관을 자결하게 한 교서는 신문왕(681~692)의 것입니다. 신문왕은 김흠돌의 난을 진압해 진골 귀족을 숙청한 뒤 국학을 세워 유학 교육을 진흥했고,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했으며 9주 5소경을 정비했습니다.
- ①대통력은 고려 말 공민왕 때 명에서 들여온 역법으로 신라와 무관합니다.
- ②국학을 설립해 유학 교육을 진흥한 것이 신문왕입니다.
- ③거칠부에게 국사를 편찬하게 한 왕은 진흥왕입니다.
- ④독서삼품과를 실시한 왕은 원성왕입니다.
- ⑤노비안검법으로 호족을 견제한 왕은 고려 광종입니다.
당에서 무관으로 활동하다 귀국한 장보고가 왕의 승인을 받아 청해진을 설치했다는 내용이므로 (가)는 통일 신라입니다. 통일 신라 성덕왕 때(722) 백성에게 정전을 지급해 국가가 토지와 농민을 직접 파악하려 했습니다.
- ①백성에게 정전을 지급한 것이 통일 신라(성덕왕)의 경제 모습입니다.
- ②집집마다 부경이라는 창고를 둔 나라는 고구려입니다.
- ③삼한통보·해동통보를 발행한 것은 고려 숙종 때입니다.
- ④초량 왜관을 통해 일본과 교역한 것은 조선 후기입니다.
- ⑤담배·면화를 상품 작물로 재배한 것은 조선 후기입니다.
재상 오소도가 당의 빈공과 급제 서열에서 아들 오광찬을 신라 최언위 위에 올려 달라고 청한 일, 왕자 대봉예가 신라보다 윗자리를 요구한 쟁장 사건은 모두 발해와 신라의 경쟁을 보여 주는 기록이므로 (가)는 발해입니다. 발해는 선왕 때 전성기를 맞아 해동성국이라 불렸습니다.
- ①전성기에 해동성국이라 불린 것이 발해입니다.
- ②양계에 병마사를 파견한 나라는 고려입니다.
- ③수덕만세·정개 연호를 사용한 것은 궁예의 태봉입니다.
- ④골품제라는 신분제를 둔 나라는 신라입니다.
- ⑤정사암에 모여 중대사를 논의한 나라는 백제입니다.
선종 승려 보조선사 체징이 활동하며 장흥 보림사가 9산선문 가운데 가지산문의 중심 사찰이 된 시기는 9세기 신라 하대입니다. 이 시기에는 진골 귀족 사이의 왕위 쟁탈전이 거듭되어 150여 년 동안 20명의 왕이 바뀌었고, 지방에서는 호족이 성장했습니다.
- ①농상집요를 소개하는 관리는 고려 말(이암이 원에서 들여옴)의 모습입니다.
- ②팔만대장경을 조판하는 장인은 몽골 침입기 고려 고종 때의 모습입니다.
- ③안시성 전투에 참여하는 군인은 645년 고구려의 모습입니다.
- ④곤여만국전도를 열람하는 학자는 17세기 이후 조선 후기의 모습입니다.
- ⑤진골 귀족의 반란을 진압하는 국왕이 신라 하대에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신라 말 군인 출신으로 무진주(광주)를 근거로 세력을 키운 뒤 완산주(전주)에서 나라를 세운 인물은 후백제의 견훤(900)입니다. 견훤은 후당과 오월에 사신을 보내 외교 관계를 맺었고, 927년 경주를 공격해 경애왕을 죽였습니다.
- ①금마저(익산)에 미륵사를 창건한 왕은 백제 무왕입니다.
- ②후당과 오월에 사신을 파견한 것이 견훤입니다.
- ③정치도감을 설치한 것은 고려 충목왕 때입니다.
- ④광평성 등 정치 기구를 마련한 것은 궁예입니다.
- ⑤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은 것은 고려 태조 왕건입니다.
11번고려 성종의 통치 체제 정비
정답 ① · 3점최승로의 시무 28조를 받아들여 12목에 지방관을 파견하고 국자감을 세운 왕은 고려 성종(981~997)입니다. 성종은 태조 때의 빈민 구제 기구 흑창을 의창으로 확대 개편했고(986), 개경과 서경에 물가 조절 기구인 상평창을 두었습니다.
- ①흑창이 의창으로 개편된 것이 성종 때의 일입니다.
- ②양현고 설치는 예종의 관학 진흥책입니다.
- ③광덕·준풍 연호를 사용한 왕은 광종입니다.
- ④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한 것은 인종 때입니다.
- ⑤신돈을 중심으로 전민변정 사업을 추진한 왕은 공민왕입니다.
12번거란의 침입에 대한 고려의 대응
정답 ② · 2점강조가 목종을 시해한 죄를 묻겠다며 전쟁을 일으킨 나라, 개경을 함락해 서적을 불태운 나라는 거란입니다(제2차 침입, 1010). 이때 7대 실록이 불타 황주량이 7대 사적을 다시 편찬했습니다. 고려는 거란에 대비해 정종 때 광군을 조직했고(947), 침입 뒤에는 나성과 천리장성을 쌓았습니다.
- ①강화도로 도읍을 옮겨 항전한 것은 몽골 침입 때입니다.
- ②광군을 조직해 침입에 대비한 것이 거란에 대한 고려의 대응입니다.
- ③한성에 동평관을 둔 것은 조선이 일본 사신을 접대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 ④철령위 설치에 반발한 요동 정벌은 명에 대한 고려 우왕 때의 대응입니다.
- ⑤반전도감은 원 간섭기에 왕의 입조 비용을 마련하려고 설치한 기구입니다.
버드나무가 있는 물가 풍경을 청동 표면에 은실을 박아 넣는 은입사 기법으로 표현한 고려의 금속 공예품은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입니다. 정병은 승려가 쓰던 물병으로, 고려 은입사 공예의 대표작입니다.
- ①칠지도로 백제가 왜에 보낸 철제 칼입니다.
- ②청동으로 만든 장식 금구로, 자료에서 설명한 은입사 기법의 물가 풍경 무늬 정병이 아닙니다.
- ③경주 호우총에서 출토된 호우명 그릇으로 광개토 대왕의 이름이 새겨진 고구려의 청동 그릇입니다.
- ④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으로 고려 은입사 공예의 대표작인 것이 맞습니다.
- ⑤백제 금동 대향로로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된 백제의 문화유산입니다.
송의 사신 서긍이 방문해 기록을 남겼고(『고려도경』), 태안 마도 해역에서 청자와 죽찰이 대규모로 출수된 나라는 고려입니다. 고려는 개경에 서적점·다점·주점 같은 관영 상점을 운영했고, 벽란도를 통해 송·아라비아 상인과 교역했습니다.
- ①수도에 동시전을 설치한 것은 신라 지증왕 때입니다.
- ②서적점·다점 등 관영 상점을 운영한 것이 고려의 경제 모습입니다.
- ③당백전을 발행한 것은 흥선 대원군 집권기입니다.
- ④육의전을 제외한 시전 상인의 금난전권을 폐지한 것(신해통공)은 조선 정조 때입니다.
- ⑤거란도·영주도 등으로 주변국과 교역한 나라는 발해입니다.
(가)는 경대승이 사병 집단 도방을 설치한 일(1179), (나)는 최우가 자기 집에 인사 기구 정방을 설치한 일(1225)입니다. 그 사이인 1198년 최충헌 집권기에 사노비 만적이 개경에서 신분 해방을 내걸고 봉기를 모의했습니다.
- ①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1135)은 무신 정변 이전의 일입니다.
- ②최영의 홍산 대첩(1376)은 무신 정권이 무너진 뒤 고려 말의 일입니다.
- ③만적을 비롯한 노비들이 반란을 모의한 것(1198)이 두 사건 사이의 일입니다.
- ④김방경이 참여한 일본 원정(1274·1281)은 원 간섭기의 일입니다.
- ⑤이자겸이 금의 사대 요구를 수용하자고 한 것(1126)은 무신 정변 이전입니다.
고려 무신 집권기에 강진 만덕산 백련사에서 백련 결사를 조직해 신앙 결사 운동을 펼친 원묘국사는 요세입니다. 요세는 천태종 승려로 법화 사상을 바탕으로 참회(법화 참회)와 염불을 통한 정토 왕생을 강조해 지방민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 ①삼국유사를 저술한 승려는 일연입니다.
- ②해동고승전을 편찬한 승려는 각훈입니다.
- ③화엄일승법계도를 지은 승려는 의상입니다.
- ④보현십원가를 지은 승려는 균여입니다.
- ⑤법화 사상을 바탕으로 참회와 염불 수행을 강조한 것이 요세입니다.
많은 여성이 원에 공녀로 끌려가고 고려 복식이 원 궁궐에서 유행(고려양)하던 시기는 원 간섭기입니다. 이 시기 고려에는 원이 일본 원정을 위해 세웠다가 내정 간섭 기구로 남은 정동행성이 있었고, 몽골풍인 변발·호복이 지배층에 퍼졌습니다.
- ①주자감에서 공부하는 학생은 발해의 모습입니다.
- ②정동행성에서 회의하는 관리가 원 간섭기에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 ③전환국에서 백동화를 주조하는 기술자는 개항기(1892년 이후)의 모습입니다.
- ④척화비를 세우는 석공은 신미양요 직후(1871) 흥선 대원군 집권기의 모습입니다.
- ⑤별무반에 소속되어 여진 정벌에 나서는 군인은 고려 예종 때(1107)의 모습입니다.
18번화약 무기를 개발한 최무선
정답 ① · 2점중국인 이원에게 염초 제조법을 배워 화약을 만들고, 건의해 화통도감(1377)을 설치하게 한 인물은 최무선입니다. 최무선은 1380년 화포를 실은 전함으로 진포에서 왜구의 배 500여 척을 불태웠습니다(진포 대첩).
- ①진포에서 왜구를 격퇴한 것이 최무선입니다.
- ②훈련도감의 총포 제작은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일입니다.
- ③비격진천뢰를 개발한 인물은 선조 때의 이장손입니다.
- ④조총 부대를 이끌고 나선 정벌에 참여한 인물은 효종 때의 변급·신류입니다.
- ⑤광교산 전투에서 승리한 인물은 병자호란 때의 김준룡입니다.
도평의사사의 요청으로 제정되었고, 현직과 산직 관료를 18과로 나누어 경기 지역의 토지를 지급한 법은 과전법(1391)입니다. 과전은 원칙상 세습이 금지되었으나 관리가 죽은 뒤 아내에게 수신전, 어린 자녀에게 휼양전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세습되었습니다.
- ①풍흉에 관계없이 전세를 고정한 것은 인조 때의 영정법입니다.
- ②관청에서 전세를 거둬 관리에게 지급한 것은 성종 때의 관수관급제입니다.
- ③전지와 시지를 등급에 따라 지급한 것은 고려의 전시과입니다.
- ④지주에게 결작을 부과한 것은 영조 때의 균역법입니다.
- ⑤수신전·휼양전 명목으로 세습이 가능했던 것이 과전법입니다.
권근의 「상대별곡」에 나오는 '상대'는 사헌부의 별칭으로, 사간원·홍문관과 함께 3사로 불렸고 대사헌·집의·장령 등의 관직을 두었습니다. 사헌부는 관리의 비리를 감찰하고 탄핵하는 기구이며, 사간원과 함께 대간으로서 서경권을 행사했습니다.
- ①왕명 출납을 관장한 기구는 승정원입니다.
- ②수도의 행정과 치안을 담당한 기구는 한성부입니다.
- ③실록 보관·관리는 춘추관과 사고의 업무입니다.
- ④백관을 규찰하고 탄핵한 것이 사헌부입니다.
- ⑤반역죄·강상죄 등 중죄인을 다스린 기구는 의금부입니다.
『국조오례의』를 반포하고 예악 질서 확립을 위해 『악학궤범』을 편찬하게 한 왕은 조선 성종(1469~1494)입니다. 성종은 세조 때 편찬을 시작한 『경국대전』을 완성·반포했고(1485), 홍문관을 설치하고 경연을 활성화했습니다.
- ①훈민정음을 창제한 왕은 세종입니다.
- ②무예도보통지를 간행한 왕은 정조입니다.
- ③경국대전을 완성한 것이 성종입니다.
- ④구황촬요를 배포한 것은 명종 때입니다.
- ⑤탕평비를 세운 왕은 영조입니다.
22번임진왜란 이후 일본과의 국교 재개
정답 ④ · 2점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가문을 대신해 정권을 잡고 화친을 청하며 선왕의 능을 파헤친 범인까지 잡아 보내자 비변사가 사신 파견을 건의하는 내용입니다. 조선은 회답 겸 쇄환사를 보내 포로를 데려오고 1609년 기유약조를 맺어 일본과 국교를 재개했습니다.
- ①삼별초의 이동 경로는 고려 대몽 항쟁과 관련된 탐구 주제입니다.
- ②위화도 회군은 고려 말 이성계의 집권 과정과 관련된 주제입니다.
- ③영선사 파견(1881)은 개항기 청에 보낸 근대 무기 기술 유학생과 관련된 주제입니다.
- ④기유약조 체결의 배경을 파악하는 것이 이 자료에 알맞은 탐구 활동입니다.
- ⑤삼정이정청 설치(1862)는 임술 농민 봉기와 관련된 주제입니다.
원자(뒷날의 경종)의 명호를 정한 데 반대하는 상소를 올린 송시열을 처벌하자는 논의는 1689년 기사환국 때의 일이므로 왕은 숙종입니다. 숙종 때는 세 차례 환국이 있었는데, 1680년 경신환국으로 허적·윤휴 등 남인이 대거 축출되고 서인이 집권했습니다.
- ①허적·윤휴 등 남인이 축출된 경신환국(1680)이 숙종 때의 일입니다.
- ②조광조가 사사된 기묘사화(1519)는 중종 때입니다.
- ③윤임이 제거된 을사사화(1545)는 명종 때입니다.
- ④이발 등 동인이 화를 입은 기축옥사(1589)는 선조 때입니다.
- ⑤정약용 등이 처벌된 신유박해(1801)는 순조 때입니다.
동궐도에 그려진 궁궐로 효명세자가 지은 연경당과 규장각이 있던 주합루가 있는 곳은 창덕궁입니다. 창덕궁은 태종이 개경에서 한양으로 다시 도읍을 옮기며 1405년 창건한 이궁으로, 임진왜란 뒤 가장 먼저 중건되어 조선 후기 정궁 역할을 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입니다.
- ①근정전을 정전으로 한 궁궐은 경복궁입니다.
- ②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1946)가 열린 곳은 덕수궁 석조전입니다.
- ③인목 대비가 광해군에 의해 유폐된 곳은 경운궁(덕수궁)입니다.
- ④정도전이 궁궐과 전각의 이름을 정한 곳은 경복궁입니다.
- ⑤태종이 한양으로 다시 도읍을 옮기며 창건한 것이 창덕궁입니다.
송파장에서 산대놀이(탈춤)를 구경하고 고추 값을 묻는 장면은 장시와 서민 문화가 발달한 조선 후기의 모습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물주의 자금을 받아 광산을 전문적으로 경영하는 덕대가 등장했습니다.
- ①벽란도에서 인삼을 사는 송 상인은 고려의 모습입니다.
- ②물주의 자금으로 광산을 경영하는 덕대가 조선 후기의 모습입니다.
- ③낙랑군과 교역할 덩이쇠를 만드는 장인은 삼국 시대 가야의 모습입니다.
- ④경시서는 고려부터 조선 전기까지 시전을 감독한 기구로 세조 때 평시서로 바뀌었습니다.
- ⑤경성·경원에 무역소를 둔 것은 조선 초 태종 때 여진과의 교역을 위한 조치입니다.
옥계시사처럼 기술관 등 중인이 시사(詩社)를 결성해 위항 문학을 꽃피운 것은 조선 후기의 일입니다. 중인은 19세기에 역관·의관 등 기술직의 승진 제한을 없애 달라는 대규모 소청 운동(통청 운동)을 벌였습니다.
- ①장례원의 관리를 받은 것은 노비입니다.
- ②당에 유학해 빈공과에 급제한 것은 신라의 6두품입니다.
- ③사자·조의·선인을 거느린 것은 고구려의 대가입니다.
- ④소(所)에 살며 특정 물품을 생산한 것은 고려의 소민입니다.
- ⑤관직 진출 제한 철폐를 요구하는 소청 운동을 전개한 것이 중인입니다.
마지막 황제가 숭정제이고 삼학사 윤집이 끝까지 의리를 지키려 한 나라, 멸망 뒤에도 조선 사대부가 기린 나라는 명입니다. 조선은 명에 정기적으로 하정사·성절사·천추사 등을 보냈는데, 이들을 조천사라 불렀습니다(청에 보낸 사신은 연행사).
- ①검교태보 직을 받은 것은 고려 태조가 후당에 사신을 보내 책봉받은 일입니다.
- ②백두산정계비(1712)는 청과 국경을 정한 것입니다.
- ③보빙사(1883)는 미국 공사 부임에 답례로 보낸 사절입니다.
- ④조천사라 불린 하정사·천추사 등을 보낸 것이 조선의 대명 외교입니다.
- ⑤회답 겸 쇄환사는 임진왜란 뒤 일본에 보내 포로를 송환받은 사절입니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미군이 강화도를 침입해 덕진진을 점령한 사건은 1871년 신미양요입니다. 어재연이 이끄는 조선군이 광성보에서 결사 항전했으나 패했고, 미군은 통상 요구가 거부되자 물러갔습니다. 이후 흥선 대원군은 전국에 척화비를 세웠습니다.
- ①청군의 개입으로 끝난 사건은 임오군란·갑신정변입니다.
- ②외규장각 도서가 약탈된 것은 병인양요(1866)입니다.
- ③이용태가 안핵사로 파견된 것은 고부 농민 봉기(1894) 뒤의 일입니다.
- ④흥선 대원군이 톈진으로 압송된 것은 임오군란(1882) 때입니다.
- ⑤어재연 부대가 광성보에서 항전한 것이 신미양요입니다.
조선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으로, 체결 뒤 김기수가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되는 계기가 된 조약은 1876년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입니다. 이 조약으로 부산 외에 원산(1880)·인천(1883)이 개항되었고, 해안 측량권과 영사 재판권이 일본에 허용되었습니다.
- ①최혜국 대우를 처음 규정한 조약은 조미 수호 통상 조약(1882)입니다.
- ②통감부 설치의 계기가 된 조약은 을사늑약(1905)입니다.
- ③천주교 포교 허용 조항이 들어간 것은 조프 수호 통상 조약(1886)입니다.
- ④방곡령 선포의 근거를 명시한 것은 조일 통상 장정(1883)입니다.
- ⑤부산 외 2곳(원산·인천)에 개항장이 설치된 것이 강화도 조약의 결과입니다.
정부가 세운 학교로 좌원(젊은 현직 관리)과 우원(양반 자제)을 두고 영어·지리 등 근대 과목을 가르친 (가)는 1886년 설립된 육영 공원입니다. 미국인 헐버트·길모어·벙커를 교사로 초빙했으며, 재정난으로 1894년 문을 닫았습니다.
- ①7재라는 전문 강좌를 둔 것은 고려 예종 때의 국자감입니다.
- ②최초의 근대적 여성 교육 기관은 이화 학당(1886)입니다.
- ③교육입국 조서(1895) 이후 세워진 학교는 한성 사범 학교 등입니다.
- ④헐버트·길모어 등을 교사로 초빙한 것이 육영 공원입니다.
- ⑤사관 양성을 위해 서양식 군사 훈련을 한 곳은 연무 공원(1888)입니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미사변) 이후 김홍집 내각이 추진했고 태양력 채택을 포함한 개혁은 1895년 을미개혁입니다. 을미개혁에서는 '건양' 연호 제정, 단발령 시행, 종두법 실시, 소학교 설립, 우편 사무 재개 등이 이루어졌습니다.
- ①건양 연호를 제정한 것이 을미개혁의 내용입니다.
- ②한성 사범 학교 관제 반포는 제2차 갑오개혁(교육입국 조서 이후)의 내용입니다.
- ③통리기무아문과 12사 설치(1880)는 개항 직후의 개화 정책입니다.
- ④양전 사업과 지계 발급은 대한 제국의 광무개혁입니다.
- ⑤공사 노비법 혁파와 과부 재가 허용은 제1차 갑오개혁(1894)의 내용입니다.
32번독립 협회의 이권 수호 운동
정답 ③ · 2점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에 반대하고 한러 은행과의 거래에 이의를 제기하라고 정부에 촉구한 단체는 독립 협회(1896~1898)입니다. 독립 협회는 1898년 만민 공동회를 열어 러시아의 이권 요구를 저지했고, 관민 공동회에서 헌의 6조를 결의했습니다.
- ①치안 유지법(1925)은 일제가 사회주의와 독립운동을 탄압하려고 제정한 법입니다.
- ②헤이그 특사 파견(1907)은 고종이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려 한 일입니다.
- ③만민 공동회의 토의 내용을 조사하는 것이 독립 협회에 알맞은 탐구 활동입니다.
- ④산미 증식 계획(1920~)은 일제의 식민지 경제 정책입니다.
- ⑤국민 대표 회의(1923)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진로를 논의한 회의입니다.
33번경인선 개통 이후의 모습
정답 ⑤ · 3점인천과 영등포(노량진) 사이를 화륜차가 달린 경인 철도 개통식 기사는 1899년 9월의 일입니다. 그 이후의 모습을 골라야 하므로 1900년에 착공해 1910년 완공된 덕수궁 석조전 공사 현장이 답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1880년대의 일입니다.
- ①박문국에서 한성순보를 인쇄한 것은 1883~1884년의 일입니다.
- ②군국기무처에서 개혁안을 논의한 것은 1894년 제1차 갑오개혁 때입니다.
- ③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은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난 자리입니다.
- ④교련병대(별기군)에서 군사 훈련을 받은 것은 1881~1882년의 일입니다.
- ⑤덕수궁 석조전 공사(1900~1910)를 감독하는 건축가가 경인선 개통 이후의 모습입니다.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1907)을 계기로 일어났고 의병장 허위가 활약한 의병은 정미의병입니다. 해산 군인이 합류해 전투력이 강해진 의병은 13도 창의군을 결성해 이인영을 총대장, 허위를 군사장으로 삼고 1908년 서울 진공 작전을 펼쳤습니다.
- ①활빈당의 대한사민논설 발표(1900년경)는 정미의병 이전의 일입니다.
- ②이만손의 영남 만인소(1881)는 조선책략 유포에 반발한 위정척사 운동입니다.
- ③13도 창의군의 서울 진공 작전이 정미의병 시기의 활동입니다.
- ④민종식의 홍주성 점령(1906)은 을사의병의 활동입니다.
- ⑤홍범도의 봉오동 전투(1920)는 독립군의 무장 투쟁입니다.
헌병 경찰 제도가 실시되고 경복궁에서 조선 물산 공진회(1915)가 열린 시기는 1910년대 무단 통치기입니다. 이 시기 일제는 회사령(1910)으로 회사 설립을 허가제로 하여 민족 자본의 성장을 억제했고, 토지 조사 사업과 조선 태형령을 시행했습니다.
- ①애국반 편성(1938~)은 민족 말살 통치기의 일입니다.
- ②회사령 공포(1910)가 무단 통치기의 일입니다.
- ③미쓰야 협정 체결(1925)은 1920년대의 일입니다.
- ④미곡 공출제 시행은 1940년대 전시 동원 체제의 일입니다.
- ⑤경성 제국 대학 설립(1924)은 1920년대 문화 통치기의 일입니다.
'내 살림 내 것으로', '입어라 조선 사람이 짠 것을'이라는 구호는 1920년대 물산 장려 운동의 선전문입니다. 평양에서 조만식 등이 시작해 조선 물산 장려회가 결성되었고, 1923년 일본 상품에 대한 관세 철폐(조선 관세령 폐지)를 앞두고 민족 자본을 지키자는 위기감 속에 확산되었습니다.
- ①폐정 개혁을 위한 집강소 설치는 동학 농민 운동의 일입니다.
- ②대한매일신보의 후원을 받은 것은 국채 보상 운동(1907)입니다.
- ③조선 관세령 폐지 등을 배경으로 확산된 것이 물산 장려 운동입니다.
- ④황국 중앙 총상회(1898)는 시전 상인이 외국 상인의 침투에 맞서 세운 단체입니다.
- ⑤국문 연구소(1907)는 대한 제국 학부가 세운 한글 연구 기관입니다.
37번1920년대 독립군의 재편
정답 ③ · 3점(가)는 북로 군정서가 청산리 일대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찌른 청산리 전투(1920), (나)는 지청천의 한국 독립군이 중국군과 연합해 승리한 쌍성보 전투(1932)입니다. 그 사이인 1923년 임시 정부 직할 부대로 육군 주만 참의부가 편성되었고, 이어 정의부·신민부가 결성되어 3부가 성립했습니다.
- ①대한 광복회 결성(1915)은 청산리 전투 이전의 일입니다.
- ②독립 의군부 조직(1912)은 청산리 전투 이전의 일입니다.
- ③육군 주만 참의부 편성(1923)이 두 전투 사이의 일입니다.
- ④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1909)은 청산리 전투 이전의 일입니다.
- ⑤조선 의용대 창설(1938)은 쌍성보 전투 이후의 일입니다.
38번6·10 만세 운동 이후의 사실
정답 ① · 1점순종의 국장일에 격문을 뿌리며 만세를 부른 운동은 1926년 6·10 만세 운동입니다. 이 운동을 준비하며 사회주의 세력과 민족주의 세력이 연대한 경험이 민족 유일당 운동으로 이어져 1927년 신간회가 창립되었습니다.
- ①신간회 창립(1927)이 6·10 만세 운동 이후의 일입니다.
- ②만세보 창간(1906)은 천도교 기관지 발행으로 이전의 일입니다.
- ③의열단 조직(1919)은 이전의 일입니다.
- ④태극 서관 설립(1908)은 신민회의 활동으로 이전의 일입니다.
- ⑤대한 광복군 정부 수립(1914)은 이전의 일입니다.
39번국가 총동원법 시행기의 일제 정책
정답 ⑤ · 2점일제가 국가 총동원법(1938)을 시행해 인력과 물자를 수탈하던 시기는 민족 말살 통치기입니다. 이 시기 일제는 1941년 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을 만들어 독립운동가를 재판 없이 구금했고, 징용·징병·여자 정신 근로령으로 조선인을 강제 동원했습니다.
- ①신문지법 제정(1907)은 통감부 시기의 언론 탄압입니다.
- ②메가타의 화폐 정리 사업(1905)은 러일 전쟁 직후의 일입니다.
- ③조선 광업령 공포(1915)는 1910년대 무단 통치기의 일입니다.
- ④조선 태형령 시행(1912)은 1910년대 무단 통치기의 일입니다.
- ⑤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1941)으로 독립운동을 탄압한 것이 이 시기의 정책입니다.
40번충칭 시기 대한민국 임시 정부
정답 ⑤ · 2점중일 전쟁 이후 충칭으로 근거지를 옮겼고 산하에 한국광복군을 둔 (가)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입니다. 임시 정부는 1941년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바탕으로 한 대한민국 건국 강령을 발표해 광복 후 국가 건설의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 ①영릉가 전투에서 승리한 것은 양세봉의 조선 혁명군입니다.
- ②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저지한 단체는 보안회(1904)입니다.
- ③서전서숙을 세운 인물은 북간도의 이상설(1906)입니다.
- ④신흥 강습소를 세운 것은 서간도의 신민회 인사들(1911)입니다.
- ⑤삼균주의에 기초한 건국 강령을 발표한 것이 대한민국 임시 정부입니다.
41번일제 강점기 사회 문화의 변화
정답 ④ · 1점경평 축구 대항전, 모던 걸의 등장, 백화점의 출현은 모두 일제 강점기 도시의 새로운 생활 모습입니다. 같은 시기 경성 등 도시에는 문화 주택과 개량 한옥 같은 새로운 주택 양식이 나타났습니다.
- ①금지곡 지정은 1970년대 유신 체제 박정희 정부 시기의 일입니다.
- ②컬러 방송 시작(1980)은 전두환 정부 시기의 일입니다.
- ③경부 고속 철도 개통(2004)은 노무현 정부 시기의 일입니다.
- ④문화 주택·개량 한옥 등 새 주택 양식이 등장한 것이 일제 강점기의 변화입니다.
- ⑤새마을 운동(1970~)은 박정희 정부 시기의 일입니다.
'포와'라 불리던 곳으로 1904년 몽골리아호를 타고 이주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했다는 내용이므로 (가)는 하와이입니다. 하와이에서는 1914년 박용만이 대조선 국민군단을 조직해 군사 훈련을 실시했고, 대한인 국민회 하와이 지방 총회가 활동했습니다.
- ①경학사를 설립한 곳은 서간도 삼원보입니다.
- ②권업회를 조직하고 권업신문을 발간한 곳은 연해주입니다.
- ③중광단을 결성한 곳은 북간도입니다.
- ④대조선 국민군단을 결성해 군사 훈련을 한 것이 하와이의 민족 운동입니다.
- ⑤2·8 독립 선언서를 발표한 곳은 일본 도쿄입니다.
신한청년당 대표로 파리 강화 회의에 파견되었고, 임시 정부 부주석을 지냈으며, 광복 후 여운형과 좌우 합작 위원회를 결성한 인물은 김규식입니다. 김규식은 1948년 김구와 함께 평양을 방문해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 협상을 추진했습니다.
- ①통일 정부 수립을 위해 남북 협상을 추진한 것이 김규식입니다.
- ②백산 상회를 세워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한 인물은 안희제입니다.
- ③서유견문을 집필한 인물은 유길준입니다.
- ④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저술한 인물은 박은식입니다.
- ⑤대한인 국민회 중앙 총회장으로 독립선언 포고문을 공포한 인물은 안창호입니다.
44번6·25 전쟁 중의 사실
정답 ① · 1점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은 6·25 전쟁(1950~1953)이며, 전쟁 중의 사실이 아닌 것을 골라야 합니다. 미국이 태평양 방위선에서 한반도를 제외한 애치슨 라인 발표는 1950년 1월, 즉 전쟁 발발 이전의 일입니다.
- ①애치슨 라인 발표(1950.1)는 전쟁 이전의 일이므로 옳지 않은 설명입니다.
- ②부산이 임시 수도가 된 것은 전쟁 중의 일입니다.
- ③인천 상륙 작전(1950.9)은 전쟁 중의 일입니다.
- ④국민 방위군 설치법 제정(1950.12)은 전쟁 중의 일입니다.
- ⑤다부동 전투(1950.8)는 낙동강 방어선에서 벌어진 전쟁 중의 일입니다.
45번박정희 정부 시기의 사실
정답 ② · 2점베트남 전쟁에 국군을 파병하고 그 홍보를 위해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같은 노래가 발표된 시기는 박정희 정부(1963~1979)입니다. 박정희 정부는 1967~1971년 제2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했고, 베트남 특수와 브라운 각서를 통한 미국의 지원으로 경제 성장을 뒷받침했습니다.
- ①3당 합당으로 민주 자유당이 창당된 것(1990)은 노태우 정부 때입니다.
- ②제2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추진된 것이 박정희 정부 때입니다.
- ③국가 보위 비상 대책 위원회 설치(1980)는 신군부 집권기입니다.
- ④호주제 폐지(2005)는 노무현 정부 때입니다.
- ⑤농지 개혁법 제정(1949)은 이승만 정부 때입니다.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와 폭력 진압에 맞서 일어난 (가)는 1980년 5·18 민주화 운동입니다. 계엄군의 발포에 맞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시민군을 조직해 저항했으며, 관련 기록물은 2011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 ①장면 내각 출범의 배경이 된 것은 4·19 혁명입니다.
- ②김주열이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것은 4·19 혁명(3·15 부정 선거 규탄 시위)입니다.
- ③시민군이 자발적으로 조직된 것이 5·18 민주화 운동입니다.
- ④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한 것은 6월 민주 항쟁입니다.
- ⑤3·1 민주 구국 선언(1976)은 유신 체제에 저항한 재야 인사들의 선언입니다.
47번김영삼 정부 시기의 사실
정답 ③ · 2점옛 조선 총독부 건물 철거(1995)를 식민 잔재 청산과 민족정기 회복으로 설명한 연설은 역사 바로 세우기를 내세운 김영삼 정부(1993~1998)의 것입니다. 김영삼 정부는 1996년 국민학교의 명칭을 초등학교로 바꾸었고, 금융 실명제 실시와 OECD 가입을 이루었습니다.
- ①국민 교육 헌장 제정(1968)은 박정희 정부 때입니다.
- ②서울 아시안 게임 개최(1986)는 전두환 정부 때입니다.
- ③국민학교 명칭이 초등학교로 바뀐 것(1996)이 김영삼 정부 때입니다.
- ④친일 반민족 행위 진상 규명 위원회 출범(2005)은 노무현 정부 때입니다.
- ⑤삼청 교육대 설치(1980)는 신군부 집권기입니다.
48번노무현 정부의 통일 노력
정답 ③ · 2점대통령이 국가 원수로는 처음으로 군사 분계선을 걸어서 넘어 남북 정상 회담에 간 것은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이 제2차 남북 정상 회담에서 10·4 남북 정상 선언(남북 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이 발표되었습니다.
- ①남북 조절 위원회 구성(1972)은 박정희 정부 때입니다.
- ②남북 기본 합의서 채택(1991)은 노태우 정부 때입니다.
- ③10·4 남북 정상 선언 발표가 노무현 정부의 통일 노력입니다.
- ④최초의 남북 이산가족 고향 방문(1985)은 전두환 정부 때입니다.
- ⑤평창 동계 올림픽 남북 단일팀(2018)은 문재인 정부 때입니다.
국제 통화 기금(IMF)의 구제 금융을 받던 시기는 1997년 12월부터 2001년 8월 조기 상환까지로, 김대중 정부 시기와 겹칩니다. 김대중 정부는 대량 실업과 빈곤에 대응해 국민 기초 생활 보장법을 제정하고 2000년 10월부터 시행했습니다.
- ①야간 통행 금지 해제(1982)는 전두환 정부 때입니다.
- ②신한 공사 설립(1946)은 미군정 시기의 일입니다.
- ③다문화 가족 지원법 제정(2008)은 이명박 정부 때입니다.
- ④국민 기초 생활 보장법 시행(2000)이 외환 위기 시기의 일입니다.
- ⑤부산 APEC 정상 회의 개최(2005)는 노무현 정부 때입니다.
남강을 끼고 있으며 대평리 청동기 유적, 김시민 장군 전공비(임진왜란 진주 대첩), 형평 운동 기념탑이 있는 (가)는 진주입니다. 1862년 진주에서는 경상 우병사 백낙신의 수탈에 맞서 유계춘 등이 봉기했고, 이것이 임술 농민 봉기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 ①김헌창이 반란을 일으킨 근거지는 웅천주(공주)입니다.
- ②강주룡이 고공 시위를 벌인 곳은 평양 을밀대입니다.
- ③공민왕이 홍건적 침입 때 피란한 곳은 복주(안동)입니다.
- ④전태일이 분신한 곳은 서울 평화 시장입니다.
- ⑤유계춘이 경상 우병사의 수탈에 맞서 봉기한 곳이 진주입니다.